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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마일한문샘 Oct 11. 2022

박희병의 『연암과 선귤당의 대화』(2010)

우정에 대하여 : 박지원과 이덕무의 콜라보

읽은 날 : 2016.9.13(화)~9.22(목) 

쓴 날 : 2016.10.29(토)

면수 : 311쪽

* 6년 전 글을 다듬었습니다.


#1 이덕무 때문에


끝났다. 어렵다. 잘썼다.

마지막 장을 넘기며 밀려온 생각입니다.

박희병 선생님 책 다 읽긴 처음입니다. 정민, 안대회 선생님의 간결한 문체에 익숙한 제게 박선생님 책은 새롭고 어렵습니다. (언뜻언뜻 본 번역서는 훨씬 쉽습니다.) 열흘 중 아흐레는 굳은 머리 부여잡고 투덜대며 읽었지만, 선생님 인터뷰 중 "대중서는 여러 사람들이 하고 있으니 조금 더 깊이 들어가서 나만의 것을 하자고 결심했다."를 읽으니 '아, 그랬구나' 싶습니다.


딱딱한 책을 못 놓은 건 이덕무 때문입니다. 스물 한 살부터 이덕무 팬이라 그에 관한 책은 무조건 찾아봅니다. 『연암과 선귤당의 대화』는 『종북소선(鐘北小選)』 평점비평 연구서입니다. 연암은 박지원, 선귤당은 이덕무의 호입니다. 『종북소선』은 박지원의 산문 10편을 이덕무가 옮겨 쓰고 비평한 책입니다. 제목은 '종북(鐘北)에서 엮은 작은 선집'이란 뜻입니다. 종북은 종각의 북쪽, 이덕무가 살던 대사동이니 『종북소선』은 '이덕무가 엮은 작은 책'이겠습니다.


#2 우정의 콜라보


책의 초점은 이덕무의 산문비평입니다. 그래서 비평 관련 다양한 해설이 나오지만, 저는 그 부분보다 박지원과 이덕무의 끈끈한 우정에 좀더 눈이 갑니다. 스승이자 벗이었던 박지원의 글에 하나하나 애정어린 평점을 붙인 이덕무. 그 비평을 보면서 뿌듯하고 행복했을 박지원. 두 사람의 콜라보에 동조하며 한편으론 부러웠을 다른 벗들. 박지원의 글이 이덕무의 평점 때문에 더 빛나고, 이덕무의 평점은 박지원의 글 덕분에 생기와 발랄함이 묻어납니다. 호방함과 섬세함의 절묘한 조화!


아울러, 『종북소선』의 글씨는 매우 단정하고 아담합니다. 이덕무가 없는 돈에 최고급 종이와 먹으로 한 자 한 자 공들여 쓴 책. 50~51쪽에 실린 도판을 보면 저절로 마음을 가다듬게 됩니다. "『종북소선』을 마주하면 단순히 책이 아니라 마치 서첩을 대한 듯한 느낌이 든다. 이는 비단 박지원의 작품을 옮겨 적어 놓은 부분만 그런 것이 아니라, 작은 글씨로 기재된 평어도 똑같이 그러하다."(55쪽) 가장 자기다운 방법으로 우정을 표현하는 사람. 참 멋집니다.


#3 <꿈의 대화> + α


며칠 전 페이스북에 맑은 하늘 사진을 올렸습니다. 24년 친구 댓글, "기억나? 학교 옥상에서 너랑 하늘 보면서 난 하늘색을 좋아한다고 했는데" <꿈의 대화> 가사처럼 어스름 지는 저녁마다 옥상에서 청춘을 이야기하던 벗. 아주 오랜 기억에 <꿈의 대화>를 듣습니다. 노래에 그 친구, 오랜 벗들, 그리고 박지원과 이덕무가 겹칩니다. 고단한 나날을 글과 우정으로 견뎌낸 두 사람.


"두 세기 반 전에 박지원과 이덕무가 우리 눈 앞에 환하게 구현해 보인 그런 최고 심급(審級)의 대화와 사랑의 가능성이 이 부박하고 야만적인 세계에 아직도 희미한 빛으로라도 열려 있는 것일까.”(259쪽)" 책 마지막의 물음을 되새기며 벗들에게 마음을 보냅니다. 여리고 예민한 저를 넉넉한 우정으로 품어 주는, 다정하고 따스하며 그리운 친구들.


<마음에 남은 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참된 문학이란 참된 정에서 발원한다. 억지로 신음하고 억지로 슬퍼하고 억지로 호들갑을 떠는 것은 진짜가 아니다. 진짜가 아니니 깊은 감동을 주기 어렵다. 진짜란 마음 깊은 곳에서 우러나오고 온 몸에서 말미암는다. 27쪽


그런데 홍대용 이하 이들 동인들에 대해, 이들이 『종북소선』에 적힌 이덕무의 글을 읽는다고 함은 그리 적확한 표현이 아닐지 모른다. 이덕무의 글을 읽는다고 하기보다 박지원과 이덕무의 대화, 박지원과 이덕무의 앙상블을 듣는다고 말함이 더 적절치 않을까. 107쪽


이덕무는 현재적 존재, 유일무이한 존재로서의 '나'가 그 존재의의를 확인하고, 그 덧없음을 넘어서며, 생의 의미를 확보하는 길은, 글을 쓰는 것, 그리고 이를 통해 사랑하는 벗과 깊고 그윽한 교감을 지금 당장 나누는 것 이상의 것은 없다고 보고 있다. 이덕무에게 있어 '글을 쓴다'는 행위는 곧 현재적 행위이며, 바로 이 현재성 속에서 자신의 실존이 확인된다. 그러므로 글쓰기는 즐거운 행위일 수밖에 없으며, 자신이 현재 살아 있다는 사실, 즉 자신의 궁극적 존재성을 확인시켜 주는 가장 유력한 방편이 된다. 이런 의미를 띠는 이덕무의 글쓰기-정확히 말한다면 비평적 글쓰기-는 단지 자기만족을 위한 것만은 아니며, 벗을 향해 활짝 열려 있다. 123쪽


그(이덕무)가 벗을 소중히 여긴 것은, 벗에게서 자기를 발견하고, 또 자기에게서 벗을 발견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134쪽


진정한 의미에서의 대화란 본질적으로 평등한 정신의 소유자 사이에서만, 서로 독립적이고 자유로운 정신을 지닌 사람들 사이에서만, 가능하다. 158쪽


존재는 자신의 경계를 허물고 다른 존재에게 손을 내밀 때 생의 근원적 외로움과 생 그 자체에서 유래하는 고단함과 서글픔을 위로받게 된다. 231쪽


<함께 읽으면 좋은 책>


『비슷한 것은 가짜다』 (정민) : 박지원의 산문 25편을 해설한 책. 미학적 접근이 돋보입니다. 읽는 데 제법 시간이 걸렸지만, 밑줄 그을 부분이 많았습니다.


『연암을 읽는다』 (박희병) : 박지원의 산문 20편을 번역하고 주해와 평설, 총평을 덧붙인 책. 정갈한 번역과 꼼꼼한 주해가 인상깊었습니다.


『책만 보는 바보』 (안소영) : 이덕무와 그의 벗들 이야기. 문학적 상상력으로 역사의 행간을 따뜻하게 풀어내는 힘이 긴 여운으로 남습니다.


『책에 미친 바보』 (권정원) : 이덕무의 산문을 간추려 뽑아 번역한 책. 문체가 자연스럽고, 부록의 연표와 인명, 서명 해설이 자세합니다.    


* <꿈의 대화>(이범용, 한명훈 : 1980.11.8. MBC 제 4회 대학가요제)

https://youtu.be/wG73vYKmye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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