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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마일한문샘 Oct 11. 2022

전호근의 『한국 철학사』(2015)

두고두고 볼 책

읽은 날 : 2016.2.9(화)~5.31(화) 

쓴 날 : 2016.10.20(목)

면수 : 896쪽

* 6년 전 글을 다듬었습니다.


어마무시한 책입니다. 두께도, 내용도. 꽤 오래 읽었고 그만큼 배울 게 많습니다. 어려운 내용을 쉬운 문체로 풀어내는 힘에 놀랍니다. 두고두고 볼 책입니다. 메모하고 싶은 글이 많아 336쪽부터 북 인덱스를 붙였습니다. (처음부터 붙일 걸......) 한국문학통사다 보면 다시 찬찬히 읽으며 정리하고 싶습니다.

정약용의 목민심서 서문이 가장 기억에 남습니다. "이 책을 일러 심서라고 한 것은 어째서인가. 목민하고자 하는 마음은 있지만 내 몸에 시행할 수 없기 때문에 이렇게 이름을 붙인 것이다."(593쪽) 늦둥이 셋째 덕분에 휴직하면서 학교 계신 선생님들이 부러울 때 이 부분 읽다 울컥했습니다. 옛사람의 글에 마음을 다잡으며 책 뒤편에 실린 원문을 손글씨로 옮깁니다. ( http://blog.naver.com/hanmunlove/220725778959 )


원효부터 장일순까지 35명을 다룬 책이지만 박지원과 정약용에 대한 설명이 압도적으로 많습니다. 글 쓰신 선생님께서 두 분을 특별히 아끼시는 듯합니다. 한문학이 문사철(문학, 역사, 철학)을 아울러선지 한국문학통사와 같이 읽으면 더 재미있습니다. 현대 철학자들에 대한 설명은 낯설어서 어려웠습니다.


<마음에 남은 글>


한국에서 철학을 공부하는 자로서 한국 철학사를 펴내는 일은 동아시아 고전을 연구하는 이가 논어를 주해하고 기독교 신학자가 성서를 주해하는 것만큼이나 학문적으로 뜻 깊은 일이다. 하지만 이 책을 펴내게 된 동기는 이런 학문적 의미 때문만이 아니다. 원효 이래 1300년에 걸친 한국 철학의 거장들이 추구하고 실천했던 삶의 문법이 아직도 한국인의 의식 저변에 깔려 있을 뿐만 아니라 우리의 삶 곳곳에서 힘을 발휘하고 있다는 사실을 드러내고 싶었던 바람이 이 책을 펴내는 데 더 큰 동기로 작용했다. 7쪽  

인간은 자신의 삶을 누리기 위해서만 살지 않습니다. 더 나은 것을 추구하고 자기를 넘어서려고 노력하죠. 408쪽

똑같은 이야기를 해도 누가 하느냐에 따라 다르게 받아들여지는 것은 말하는 사람의 인격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431쪽

아무리 암흑의 시대라 하더라도 올바른 도리를 실천하는 사람이 있다면 도가 사라지지 않는다 457쪽

대문 없는 집을 짓고 문을 잠그지 않고 살 수 있는 조건은 백성들의 신뢰 없이 그냥 만들어지지 않습니다. 472쪽


정제두는 가까운 사람들에게 오랫동안 비난을 당하는 험난한 삶을 살았습니다. 하지만 88세까지 장수하면서 청렴한 생활 태도와 탁월한 학문으로 집안 사람들과 제자들에게 존경을 받았을 뿐 아니라 뛰어난 행정 능력으로 당대의 임금 영조에게 중용되었습니다. 490쪽


벼슬에 나아가서는 영화를 가까이하지 않았고, 물러나서는 명예를 가까이하지 않았다. 497쪽


(연암은) 그 하찮은 것을 설명하는 데 온 우주의 사물을 다 동원합니다. 그다지 유명하지도 않은 개인의 사소한 일상을 남다른 눈으로 보고, 또 그것을 즐길 줄 아는 거죠. 뭔가 거창한 일을 해서 영웅이 되기를 바라다 보면 작지만 소중한 것을 놓치기 쉽죠. 그런 면에서 연암은 눈이 참 밝았던 사람이다 싶습니다. 566쪽


다산은 폐족의 신분이어서 세상에 참여할 수 없는데도 당시의 목민관이 어떻게 해야 조선의 백성들을 잘 다스릴 수 있는지 고민하고, 구체적인 항목을 일일이 기록하여 지금까지 글을 읽는 사람들에게 지식인의 책임이 무엇인지 되묻게 합니다. 585쪽


다산이 육경고문을 철저히 연구한 이유는 자신의 시대가 당면한 어려움을 고전을 통해 돌파하기 위해서였습니다. 603쪽


한 분야의 대가는 다른 분야에 대해서도 늘 열린 태도를 지니죠. 639쪽


추운 겨울날 저잣거리에서

군고구마를 파는 사람이 써 붙인

서툴지만 정성이 가득한

군고구마라는 글씨를 보게 되잖아.

그게 진짜야.

그 절박함에 비하면 내 글씨는 장난이지.

못 미쳐. 809쪽 (장일순, <군고구마 장수의 큰 기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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