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승으로 산다는 것

by 스마일한문샘

스무 살. 과에서 처음 뵈었습니다. 선생님 네 분 중 가장 무서워 보입니다. 술 권하는 자리에서 신앙적인 이유로 어렵다고 정중하게 말씀드니 "강적이야, 강적!" 웃으면서 봐 주시기까지 3년 걸렸습니다. 통감절요 외울 때는 "통(通)!" "불통(不通)!" 칼이셨고 다른 과목도 학점이 짰습니다.


3학년 2학기. 남들 다 공부할 때 가로늦게 앓았습니다. 교육심리 F 맞고 학점이 3점 초반까지 떨어졌습니다. 기관지염까지 겹쳐 하루하루 내려앉을 때 선생님께서 따로 부르셨습니다. 어떤 이야기를 듣고 나누었는지 가물가물하나, 오랜 방황에 마침표를 찍은 건 확실합니다.


졸업할 때 물으셨습니다. "평생에 다섯 번 더 만나겠냐?" 멀리 와서 자주 못 뵙지만 선생님 책이나 신문기사 보면 꼬박꼬박 챙깁니다. 학과 옛님맞이날 한 번, 강화도 답사 한 번, 정독도서관 강의 때 또 한 번. 감사하게도 요즘은 SNS로 선생님 글 읽고 안부인사 드립니다. 아이들이 더 자라면 찾아고 싶습니다.


선생님 책과 글 읽으면서 나이 들어서도 배울 부분 많은 스승으로 남고 싶단 소원이 생겼습니다. 처음 뵐 때 30대 후반이셨는데 지금도 늘 가열차게 읽고 쓰며 공부하십니다. 한문학사 종강날 "슬기로운 사람은 암울한 시대에 미래를 준비하는 사람이다."와 선생님 최고의 명언 "청춘을 낭비하지 말라(勿費靑春)!"도 종종 생각합니다.


선생님과 꼭 닮은 글을 다시 읽습니다. 제 안에도 이런 갈망이 있기를, 읽고 쓰는 대로 살아가기를!


"맹자는 왕정(王政), 곧 인정에 대해 묻는 제나라 선왕에게 정치가 맨 먼저 고려해야 할 대상은 늙어서 아내가 없는 홀아비, 늙어서 남편이 없는 과부, 늙어 의탁할 자식이 없는 노인, 어려서 부모를 잃은 고아 등 천하의 하소연할 곳 없는 가장 외로운 사람들인 바, 주나라 문왕은 바로 이 네 부류를 가장 우선적으로 돌보아야 할 사람으로 여겼다고 답했다. 맹자는 이렇게 말하면서 『시경』의 해당 부분을 증거로 인용했던 것이다.


​나는 맹자의 이 부분이 유가(儒家) 사상의 가장 빛나는 부분이라 생각한다. 성인의 예법 운운하면서 번문욕례(繁文縟禮)를 지껄이고, 왈리왈기(曰理曰氣) 따위의 애매한 언사를 늘어놓는 것은 유가가 아니다. 유가는 곧 정치고, 그 정치가 우선 배려해야 하는 대상은 사회적 약자다. 늙어서 아내가 없는 삶, 늙어서 남편이 없는 삶, 늙어서 자식 하나 없는 삶, 어려서 부모가 없는 삶을 상상해보라."


- 강명관, 이 외로운 사람들아, 2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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