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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마일한문샘 Jan 06. 2023

박동욱의 『처음 만나는 한시, 마흔여섯 가지 즐거움』

2023년 첫 책

읽은 날 : 2022.12.30(금)~2023.1.6(금)

면수 : 319쪽


브런치에서 아껴 읽던 글이 책으로 나왔습니다. 30년 전 두보의 <강촌>에 푹 빠져들면서 한시는 저에게 단순한 옛글 이상의 그 무엇이었습니다. 어떤 시는 어렵지만 읽다 보면 훅 찾아오는 구절이 있습니다. 그게 좋아 한문선생이 되었고, 눈 맑은 아이들에게 한시를 어떻게 풀어낼지 해마다 깊이 생각합니다.


『처음 만나는 한시, 마흔여섯 가지 즐거움』은 깔끔하고 다정한 책입니다. 옛글을 오늘날에 비추어 읽는 일을 사랑하는데, 익숙한 시보다 낯선 작품이 많아 찬찬히 담았습니다. 글뜻을 살리면서 요즘 정서 담은 번역, 행간에 묻어나는 따듯함을 새깁니다. 여린 이의 숨은 그늘을 읽고 나누는 시선까지.


1장 제목 '우리를 닮은 하루를 만나다'를 오래 읽었습니다. <참새의 하루>마냥 바쁜 나날, 그래도 어떤 날은 그 바쁨이 고마움인 날이 있지요. "달력에 관한 생각의 끝에는 언제나 미래에 펼칠 다짐이 있다."(144쪽), "흰머리는 내게 지상에서의 남은 시간들을 수시로 알려주는 훌륭한 알람이다."(149쪽)에 그윽이 머물렀습니다.


옛사람도 비 맞고 더운 날 추운 날 지나며 한 해를 마무리하면서 흘러가는 세월을 맞이합니다. 경험치가 쌓이면서 한 편 두 편 남은 한시, 오랜 글에서 찾아낸 기쁨과 울림이 읽는 분들께 오롯이 전해지면 좋겠습니다. "삶이란 못 견디게 힘들다가도 참다 보면 거짓말처럼 좋은 일이 하나씩 생기곤 한다."(25쪽)는 언제 봐도 반갑습니다.


<마음에 남은 글>


글 쓰는 즐거움을 깊이 느끼면서 작업했기 때문에 그 기쁨이 독자에게 온전히 전해지길 바란다. 9쪽


따순 방, 좋은 햇살, 읽고 싶은 책. 32쪽


한시 속에서 병아리는, 아주 미약한 존재라도 다양한 주제를 담는 의미 있는 그릇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알려준다. 88쪽


때로는 실패가 성공보다 더 많은 것을 가르쳐 줄 때가 있다. 자신의 부족한 점을 다시 점검하게 되고, 실패에도 외면치 않는 가족의 사랑을 깊이 깨달아 더욱 분발하게 되며, 세상에서 자신이 얼마나 변변찮은 존재인가를 다시금 알게 되어 겸손해진다. 157쪽


첩은 아내의 의무는 졌지만 아내의 권리는 거세된 존재였고, 수많은 여인이 첩이란 이름으로 살다 조용히 스러졌다. 179쪽


작업을 하다 얻은 품속 과일과, 집에서 기다릴 노모가 차려놓았을 따뜻한 밥상은 어둡고 늦은 귀갓길의 랜턴 불빛같이 환하게 그들을 비추어주는 희망이 되었다. 208쪽


할아버지는 유년기를 보다 밝고 환한 색으로 기억하게 만들어준다. 내 곁에 잠시 있었지만 언제나 남아 있는 따스한 숨결 같은 존재이다. 232쪽


해로(偕老)는 함께 늙어간다는 말이니, 그 표현을 쓸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그들의 성실과 인내가 증명된다. 264쪽


오랜 세월 희로애락을 함께 지나고 견디는 가운데 생겨나는 연대 의식과 동지애는 그 어떤 사랑보다 서로를 끈끈하게 만들어준다. 269쪽


복잡한 일들은 접어놓고서 낮잠에 잠시 몸을 기대면, 나머지 하루를 살아갈 힘이 생기곤 한다. 292쪽

새해 첫날! (2023.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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