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이 되겠다'보다 그저 하루하루를 열심히 살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가장 오랜 기억은 열여덟 살 1월입니다. 집에만 있으면 공부 안 될 것 같아 신정이나 보충수업 없는 날이면 빈 교실에서 책을 펼쳤습니다. 가끔은 한문시간에 배운 글을 칠판에 또박또박 써 보고, 남몰래 읽고 설명하며 선생님이 된 듯 설레었습니다.
스무 살 여름에도 비슷한 경험을 했습니다. 방학 두 달간 교회, 동아리 수련회 갈 때 빼고는 거의 매일 학교 도서관에서 『통감절요』 예습하고 『이야기 중국사』와 김구용 번역판 『동주 열국지』를 읽었습니다. 과 학회에서 『통감절요』 공부한 게 가장 큰 이유였지만, 자전 찾아가며 해석하고 책 읽으면 하루를 제대로 산 것 같았습니다.
한문과 협동학습에 푹 빠진 스물 아홉, 『대학』, 『중용』 읽으며 한국사능력검정시험 준비하던 마흔에도 열여덟, 스물만큼은 아니지만 나름 가열차게 지냈습니다. 시행착오가 있었고 남모를 편두통에 시달렸으나 하고 싶은 공부를 마음껏 할 수 있어 행복했습니다. 무엇보다 최선을 다해 하루하루를 채우면서 자신감이 붙었습니다.
"미래에 대한 뚜렷한 청사진이 있었다기보다 그저 닥친 일에 성실하고 도전적으로 임하며,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긍정적인 자극은 겸손하게 수용하면서 지냈다."(나카지마 다카시, 김윤희 옮김, 『아침시간 2배로 쪼개 쓰기』, 37쪽) 16년 전 읽은 글을 다시 봅니다. 그때보다 바쁘지만 최선의 힘을 알기에, 오늘도 웃으며 시간 아껴 읽고 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