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해 여름, 병원 57시

by 스마일한문샘

고등학교 2학년 여름, 대학병원 안과에 시력 교정 상담받으러 갔다 뜻밖의 말을 들었습니다.

"외사시인데 수술하면 조금 나아질 수 있어요."

지금이야 사시는 어릴 때 수술하거나 교정하면 낫지만 그때는 그런 지식이 드물었습니다. 그러고 보니 친구들이 가끔 "너 어디 보고 있니?" 부모님도 그 누구도 몰랐던 제 눈의 비밀.


개학 직전에 수술 일정을 잡았습니다. 입원비며 수술비가 만만치 않았건만 부모님께서 어렵게 구해 주셨습니다. 전날 입원해서 다음날 수술 받고 하루 정도 회복해서 그 다음날 퇴원. 전신마취하면 못 깰 수도 있겠다 싶어 초긴장했습니다. 퇴원해서도 한동안 통원치료 받고 두 눈 다 빨개 학교 친구들이 'R(red)' 아니냐 했습니다. 심은하 주연 공포드라마 <M>이 인기 있던 1994년 8월입니다.


그때 그 병원 이야기를 글로 썼습니다. 망설이다 교지에 투고했는데 실렸습니다. 제 글이 활자로 남은 건 신기했지만 다시 열어 보려니 쑥스러워 오래 감추었습니다. 그래도 교지 정리할 때 살짝 오려 보관했던 글을 어제 책장 정리하다 찾았습니다. 다시 보니 부모님 마음이 보입니다. 사흘 내내 제 곁에서 마음졸이셨을 엄마, 수술 전날 병실에 들렀다가 저녁 7시 넘어 가신 아빠. 어린 글의 행간으로 흐르는 마음, 마음들.


어느새 저도 부모님처럼 세 아이를 키우는 엄마가 되었습니다. 아이들이 이런저런 이유로 아플 때마다 꽤 많은 밤을 지새웁니다. "부모는 오직 자식이 병들까 걱정한다[父母唯其疾之憂(부모유기질지우)]." 『논어』 <위정(爲政)> 편에 담긴 글자 하나하나가 삶으로 다가오는 순간이 있습니다. 그해 여름, 57시간 30분을 생각합니다.

『크로바』(고등학교 교지) 47호 18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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