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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마일한문샘 Jul 24. 2023

김재욱의 『그래도 인생 별거 있다』(2023)

소소한 일상, 옛글의 위로

읽은 날 : 2023.7.21(금)~7.24(월)

면수 : 278쪽


제목만 보면 에세이 같은데 한시 이야기입니다. "나는 책에 들어 있는 서른여덟 꼭지 중 아주 많은 지면을 나의 옛날이야기로 채워 두었다. 내 말만 하면 일기처럼 될까 봐 내 생각을 뒷받침해 줄 수 있는 옛사람의 한시를 섞으며 글을 풀어 나갔다."(6쪽) 한글로 풀어낸 한시, 원문과 해설을 붙여 담아낸 일상은 한 줄로 모입니다. "신기하게도 고려와 조선 시대 사람들의 마음도 나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6쪽)


중학생 때부터 한시를 좋아합니다. 짧은 말에 담은 생각, 옛글이 오늘과 만날 때 화안한 정취를 사랑합니다. 두보의 <강촌(江村)>을 외우면 고등학교 1학년 한문 시간, 긴긴 여름 평화로운 어느 날로 돌아갑니다. 『그래도 인생 별거 있다』에서 만나는 옛 시는 대부분 처음 보는 글입니다. 한글 읽고 원문 읽고 해설에 담은 뜻에 잦아들다 보니 나흘이 훌쩍. 공부하는 사람, 오랜 글이 지금 이 순간과 맞닿도록 돕는 사람의 숙명을 느낍니다.


다른 사람 이야기에서 공통분모를 찾을 때가 있습니다. 마당 있는 옛집, 고마운 사람들, 별이 된 친구에 대한 기억까지. 비슷한 시대를 조금 빨리 살아온 어른의 소소한 일상이 옛글과 맞물려 푸근하게 다가오는 순간을 아껴 읽었습니다. 어떤 글은 따듯하고 어떤 글은 묵직합니다. "끊임없이 문제를 제기하고 약한 사람을 지지하는 일이 손바닥이며, 이것이 정의이고 하늘의 뜻이라고 믿는다."(157쪽)를 가벼이 읽지 못했습니다.


방학 직전 뜻밖의 소식에 길을 잃었습니다. 먹먹하고 막막할 때 틈틈이 읽고 어떤 글은 공책에 옮겨 쓰면서 위로를 얻었습니다. 바쁘고 뜨겁고 애타던 시간 지나 다시 새로운 하루를 맞는 오늘, 읽고 쓰며 마음에 새긴 글이 스스로를 다잡으며 살아가는 힘이기를 바랍니다. "저자는 때로는 옛 추억을 떠올리고, 때로는 일상에서 벌어지는 사건을 통해 산다는 게 무엇인지 생각하며 삶의 지혜를 얻는다." 뒤표지 글을 가만히 담아 봅니다.


<마음에 남은 글>


옛 모습은 이젠 없지만 옛 기억은 이제라도 남아 있으니 됐다. 어떤 때는 이런 아련함이 살아가는 힘이 되기도 한다. 19쪽


'우음(偶吟)'에서 '우(偶)'는 '우연히'라는 뜻이다. '음(吟)'은 소리 내어 읊는다는 뜻인데 '시를 쓰다'는 의미로 이해하면 된다. 정리해 보면 어떤 생각을 '우연히' 하게 되어 그걸 빠르게 시로 옮겼다는 말이다. 144쪽


결실하고 노력하여 한 번에 그만둬라

이상한 맛이지 좋은 맛 아니거든

發憤一止去(발분일지거) 邪味非所珍(사미비소진)


- 임영(林泳), <영남초(詠南草)>, 186쪽

- 지금 금연 캠페인으로 써도 괜찮겠습니다. '남초'는 담배입니다.


작은 죄는 금방 들통이 나고 큰 죄는 그 죄의 크기만큼 늦게 들통이 난다. 이후엔 큰 벌이 따라온다. 200쪽


사람을 살아가게 해 주는 힘에 내일에 대한 희망만 있지는 않다. 과거의 추억을 떠올리며 힘을 얻기도 한다. 게다가 그 추억의 친구가 지금 이 시간에도 어디에선가 나와 함께 살아가고, 가끔 만날 수도 있으니 얼마나 든든한가. 218쪽


사람은 누구나 일상에서 벗어나고 싶고, 지친 몸을 쉬게 해 주고 싶고, 실타래처럼 얽혀 있는 생각을 정리하거나 잊고 싶어서 여행을 가는 것이다. (중략) 여행하면서 이런저런 다짐을 하며 마음을 잡았고 살아갈 힘을 얻었다. 231쪽


가장 즐거운 때는 어제도 내일도 아닌 오늘이다. 234쪽


이십 대는 분명 어른이기는 하다. 그러나 사회적으로 한 사람의 몫을 완벽하게 해내는 어른이라고 하기는 어렵다. 그런 어른이 되어 가는 과정에서 필요한 사람이 바로 부모다. 반드시 현실적으로 무언가를 도와주지 않아도 된다. 부모는 존재 자체로 힘이 되어 주는 사람이다. 243쪽


옛날이 그립다 하더라도 그 시절로 돌아갈 수는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옛날을 그리워하고 옛날의 일을 떠올리는 것은 그 안에서 편안함을 얻고, 내일을 살아가는 방법을 찾을 수 있기 때문이 아닐까. 25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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