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멱산 아래 어리석은 사람이 있었다.
입이 어눌하여 말을 잘하지 못했고
성품은 게으르고 졸렬해 세상일을 알지 못했으며, 바둑이나 장기는 더더욱 몰랐다.
남들이 욕해도 변명하지 않고 칭찬해도 잘난 척하지 않았으며
오직 책 보는 일만 즐거움으로 삼아
춥거나 덥거나 배고프거나 병들어도 전혀 아랑곳하지 않았다.
- 이덕무, <간서치전(看書痴傳)>
木覓山下, 有痴人. 口訥不善言, 性懶拙, 不識時務, 奕棋尤不知也.
목멱산하, 유치인. 구눌불선언, 성나졸, 불식시무, 혁기우부지야.
人辱之不辨, 譽之不矜, 惟看書爲樂, 寒暑飢病, 殊不知.
인욕지불변, 예지불긍, 유간서위락, 한서기병, 수부지.
木覓山 : 남산.
不善言 : 말을 잘하지 못하다. 여기서 善은 ‘잘하다’로 새깁니다.
人 : 남.
殊 : 이 글에서는 ‘전혀’로 풀이합니다.
* 『청장관전서』(한국고전번역원)를 참고하여 다시 번역했습니다.
책읽기 빼고는 잘하는 게 많지 않은 저에게 스물 한 살에 만난 이덕무는 특별한 사람입니다. 저와 같은 나이에 자신의 삶을 돌아보며 쓴 <간서치전> 읽다 '이런 사람 또 있을까!' 간서치(看書痴)는 책만 보는 바보라는 말입니다. 남들이 놀리는 말을 기쁘게 받아들여 별명으로 삼은 그가 어린 마음에 얼마나 커 보이던지요.
자기를 어리석고 책만 볼 줄 아는 사람이라 소개하나 사실 이덕무는 할 줄 아는 게 많습니다. 글 잘 쓰고 공부 잘하며 손재주가 좋아 그림 그리기와 밀랍으로 매화 만들기도 잘했습니다. 그런데 왜 자서전에 책 읽는 이야기만 썼을까요. 일반적인 '남자다움'과는 거리가 멀어 보여도 가장 좋아하고 잘하는 것으로 열심히 살고 있다는 자부심이 아니었을까 짐작합니다.
요즘 책을 잘 못 읽었습니다. 일이 늘고 마음쓸 일 많기도 했지만 무엇보다 한곳에 집중하기 어려웠습니다. 맘놓고 책 좀 읽으면 좋겠다 싶으면서도 틈만 나면 스마트폰 여는 저를 봅니다. 밤에 비행기 탑승 모드로 바꾸면 조금 나은데 낮에도 그래야 할까요. '여러 상황상 어렵다면 마음이라도 차분하게 하자. 읽고 싶은 책부터 하나하나 열어 보자.' 글 쓰면서 스스로를 다독입니다.
"방학하면 뭐 하고 싶으세요?"
"도서관에서 읽고 싶은 책 마음껏 빌려 아이들 잘 때 오래오래 읽고 싶어요."
재작년에 학교 연수에서 선생님들과 토의할 때 주고받은 말입니다. 여행 가거나 평소에 못한 취미생활 하고 싶단 말씀 많으신데 책이라니! 말수가 적고 책만 볼 줄 알지만 가장 자기다운 방식으로 기쁘고 가열찼던 옛사람을 닮고 싶습니다.
사진은 한국고전종합db( http://db.itkc.or.kr )에서 가져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