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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마일한문샘 Dec 10. 2023

정민 역주, 『서양 선비, 우정을 논하다』(2023)

어느 연구자의 여정

읽은 날 : 2023.12.1(금)~12.5(화)

면수 : 424쪽


"이 책은 16세기 후반과 17세기 중반 중국에 온 이탈리아 출신의 예수회 선교사 마테오 리치가 1599년에 한문으로 출판한 《교우론》과, 마르티노 마르티니가 1661년에 출간한 《구우편》 등 우정에 관한 두 권의 책을 하나로 묶어 번역한 것이다. 우정론은 이미 국내에 수십 편의 논문이 보고되었을 만큼 뜨거운 주제의 하나다. 하지만 정작 그것의 근원이 된 원전 텍스트에 대한 깊이 있는 정리는 이루어지지 않아 아쉽다는 생각이 늘 있었다."(18쪽, 서언)


겨울 첫 주를 낯선 책으로 열었습니다. '정민 역주(譯註)'와 아는 선생님 독후감에 이끌려 찾은 책은 쉬운 듯하면서도 어렵고 어려운 듯하면서도 빨리 읽혔습니다. 책 뒤의 원전 영인본과 번역문, 주석을 같이 보니 '이렇게 번역하고 주석을 달려면 얼마나 품이 많이 들었을까!' 정통 한문과 다른 서양식 한문, 같은 책 안에서도 한자 표기가 다양한 서양 인명과 지명 사이에서 길을 잃다 찾아가는 과정이 진하고 뭉클하게 다가왔습니다.


마테오 리치의 《교우론》 첫 글은 "나의 벗은 남이 아니라 나의 절반인, 바로 제2의 나이다[吾友非他, 卽我之半, 乃第二吾也]."(33쪽)입니다. 연암 박지원의 "옛날에 벗을 말하는 사람은 혹 제2의 나라고 한다[古之言朋友者, 或稱第二吾]."와 비슷해 술술 읽었습니다. 출전을 보니 성 아우구스티누스가  《고백록》 에서 "벗은 영혼의 절반이다.", 아리스토텔레스도 《니코마코스 윤리학》에서 "대개 벗은 제2의 나다."라고 말했다고 합니다.(33~35쪽)


새벽부터 밤까지 번역하고 연구하며 혼자 해결할 수 없는 부분은 여러 사람의 도움을 받으면서 담아낸 책에는 어떤 의미가 있을까요. "이 책이 두 책 자체에 대한 흥미를 넘어, 18세기 조선에서 불었던 우정론 열풍의 배경을 좀 더 깊이 있게 이해하는 자료로 활용될 수 있기를 바란다."(24쪽) 해제(234~293쪽)에서 《교우론》과 《구우편》의 성격, 연암과 친구들을 통해 우정론이 확장되는 과정을 읽으니 기나긴 여정이 더 따뜻해 보입니다.


<마음에 남은 글>


열람실에서 글을 쓰다 말고, 바로 서고로 내려가 참고서목에 적힌 새로운 책을 직접 들고 와 실물로 살펴보는 경험은 참 신선한 것이었다. 20쪽, 서언


나이를 먹어가니 섣부른 주장을 내세우기보다는 주장을 견인해낼 수 있는 기초적인 작업의 중요성에 자꾸 눈길이 간다. 24쪽, 서언


영원한 덕은 영원한 벗의 훌륭한 양식이다. 무릇 사물은 시간이 오래되면 사람들이 싫증 내지 않음이 없다. 오직 덕만은 오래되면 될수록 더욱 사람의 마음을 감동시킨다. 덕이 원수에게 있더라도 오히려 아낄 만한데, 하물며 벗에게 있음에랴! 83쪽, 《교우론》

永德永友之美餌矣. 凡物無不以時久爲人所厭. 惟德彌久, 彌感人情也. 德在仇人猶可愛, 況在友者歟!


지혜로운 사람은 마땅히 어리석은 혀를 놀리지 않으니, 혀는 스스로 매끄럽고 빨라도, 손은 스스로 무겁고 느리기 때문이다. 202쪽, 《구우편》

知手, 不當行愚舌收發, 舌自滑捷, 手自重遲.


사람이 능히 혼자 힘을 얻거나 혼자 공을 이룰 수 없어서 힘이 많고 공이 많은 사람을 주는 것임을 알아야 한다. 229쪽, 유응, 《교구합록》 서문

知人不能獨爲力, 獨爲功, 予之以多力多功者也.

* 《교구합록》은 《교우론》과 《구우편》을 합하여 편집한 책입니다. 지금은 남아 있지 않습니다.


마테오 리치의 《교우론》은 짧은 100개의 단락을 편집한 소책자였지만, 그것이 결과적으로 추동해낸 파장은 크고도 깊었다. 중국 지식인들의 환호에 화답하여 마르티노 마르티니는 《구우편》을 선보였다. 이것이 조선으로 건너와 18세기 후반 연암 그룹의 우정론 열풍을 선도했고, 한 걸음 더 나아가 동아시아의 문예공화국을 꿈꾸는 병세의식으로 확장되었다. 292~293쪽

* 병세의식(幷世意識) : 동시대를 함께 살아가는 존재임을 공유하는 의식.(290쪽)


* 정민 선생님 책에서 겹화살괄호(《》)를 써서 이 글에서는 책 표시를 겹화살괄호로 통일합니다. 단, 제목은 다른 브런치 글과 맞추는 차원에서 예외로 합니다.


* 정민 선생님 책에서 겹화살괄호(《》)를 써서 이 글에서는 책 표시를 겹화살괄호로 통일합니다. 단, 제목은 다른 브런치 글과 맞추는 차원에서 예외로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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