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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마일한문샘 Jan 12. 2024

박희병의 『한국고전문학사 강의 2』(2023)

2024년 첫 책

읽은 날 : 2023.12.10(주)~2024.1.8(월)

면수 : 515쪽


1권보다 2권이 어려웠습니다. 학년말 업무와 낯선 내용이 겹치기도 했지만, 글의 흐름을 읽어내는 데 시간이 꽤 걸렸습니다. 2권은 조선 전기 훈구파와 사림파부터 18세기 초반 단호그룹까지 다룬 책입니다. 단호그룹은 단릉 이윤영과 능호관 이인상을 중심으로 한 문인 지식인 집단(469쪽 참고)입니다. 조선 후기와 그 이후를 담은 3권은 쉬이 읽힐까요. 연말연시 출퇴근길에 마음의 쉼터 같았던 책을 다시 열었습니다.


2권의 가장 큰 장점 중 하나는 개념 정리가 잘 된 것입니다. 훈구파와 사림파(16~18쪽), 천기론(397~398쪽), 성령론(412쪽)에 대한 설명을 읽으니 알던 부분은 새롭게, 낯선 개념은 명료하게 이해하게 됩니다. 특히 훈구파 중 몇몇 작가에게는 백성에 대한 친근함이 보이고(55쪽) 훈구파와 사림파의 문학적 대립은 지배계급 내부의 주도권 싸움과 관련되어 있다는(56쪽) 관점은 역사의 이면, 다양한 안목의 가능성을 일깨우는 글입니다.


2권의 변곡점은 세조의 왕위 찬탈과 임진왜란,  병자호란입니다. 비운의 천재 김시습과 남효온이 태평성대에 살았다면 글과 삶이 달라지지 않았을까요. 임진왜란은 난중일기』뿐만 아니라 주생전』과 최척전』 같은 소설의 배경이 되었고, 병자호란을 배경으로 한 소설도 여러 편 창작되었습니다. 한편 16세기에는 황진이와 허난설헌 같은 여성 작가들이 새로운 물결을 만들고, 조선 후기에는 문학 담당층이 서얼, 중인 서리층, 여성, 평민, 천민으로 확대됩니다(393쪽). 국문시가와 국문소설, 판소리와 판소리계 소설도 문학사의 한 축을 이룹니다.


어렵지만 큰 산을 넘으면서 넓고 깊은 공부의 힘, 아는 것을 듣는 이의 언어로 풀어내는 배려를 배웁니다. 흩어져 있던 이야기와 작가들이 종횡으로 만나 또 다른 흐름으로 이어지는 축복을 누리면서, 아껴 읽는 3권을 기다립니다.


<마음에 남은 글>


우리는 문학사에서, 누구에 의해 어떤 '창안'이 이루어지는지를 계속 주시해야 합니다. 22쪽


흥미로운 점은 20세기 일제강점기의 시인인 만해 한용운이 1925년 설악산 오세암五歲庵에서 우연히 김시습의 『십현담요해』를 읽고 『십현담주해』十玄談註解를 썼다는 사실입니다. 만해는 이 책을 쓴 뒤 그 힘으로 백담사에서 이해 8월 시집 『님의 침묵』을 탈고합니다. 115쪽

- '그 힘으로' 네 글자가 따스하고 묵직합니다. 


실학은 사상적 포용성이라든지 개방성 위에서 성립됩니다. 384쪽


'천기'란 가식이나 수식이 없는 참된 마음의 상태를 이르는 말입니다. 천기는 작위作爲나 인위人爲와 반대되므로 '자연' 혹은 천진天眞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여기서 '자연'은 '절로 그러함'이라는 뜻이니, 수식修飾의 배제를 의미합니다. 397~398쪽


'성령'은 일반적으로 규범과 법도가 아니라 자유로운 개성, 영묘靈妙한 마음, 창의적인 상상력, 발랄한 감수성과 관련됩니다. 그래서 성령을 강조하는 시론인 '성령론'은 사상적으로 양명학과 연결됩니다. 412쪽


판소리에 담지된 시선은 저 높은 데서 내려다보는 시선도 아니고, 낮은 데서 올려다보는 시선도 아닙니다. 판소리 사설은 대체로 화자가 수평적으로 등장인물들을 바라보면서 발화發話하고 있다는 느낌을 강하게 줍니다. 다시 말해 '수평적 시선'이 특징적이라고 할 수 있을 듯합니다. 442쪽

새해 첫날. (2024.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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