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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마일한문샘 Aug 04. 2024

방향성

가끔 30년 전으로 돌아가고 싶습니다. 창 넓은 교실에서 햇빛과 바다를 벗하고, 집에 오면 길보드* 테이프로 <아침이슬> 듣던 시간. 플라타너스 잎마냥 반짝이는 친구들과 어린 날의 미숙함을 너른 마음으로 품어 주시는 선생님들 사이에서 꿈을 꾸고 꿈을 이루려 잰걸음으로 1994년을 보냈습니다.

한문교사라는 오랜 꿈이 일상으로 맺히면서 종종 그때를 돌아봅니다. 첫마음이 바래거나 마른 풀 같은 날 십대 후반을 떠올리면 잔잔한 설렘이 찾아옵니다. 학생 때 한문 교과서를 한 장 두 장 넘겨 보고, 조금 더 시간 있으면 해묵은 수첩과 일기도 열어 봅니다. 그러다 보면 오늘 이곳에서 다시 걷는 힘을 얻습니다.

도연명의 <잡시(雜)>를 좋아합니다. 마지막 줄 '세월부대인(歲月不待人)'을 아끼는데, 오늘은 그 앞줄 '급시당면려(及時當勉勵)'를 더 찬찬히 봅니다. "머리 속에 생각하는 방향성이 현실에서 열매맺으려면 성실함이 필요하다." 올해 1월에 겨울방학 맞이하며 쓴 글과 옛사람의 다섯 글자가 한곳으로 모입니다.

지난 주에 친구 문병 다녀오면서 모교에 들렀습니다. 하얀 2월 아침 8시부터 <잡시> 쓰던 게시판은 없지만, 가장 순수했고 가장 많이 앓았으며 청춘의 고뇌만큼 열매도 깊던 그곳을 다시 걸으면서 한동안 진하게 묻고 답하던 무언가를 찾아갑니다. 눈부신 여름날 뜻밖의 선물을 받았습니다.

* 길보드 : 길 + 빌보드. 1990년대에 가수들의 대표곡을 카세트테이프나 CD에 불법으로 복제하여 길거리에서 파는 것입니다.

2014.11.8(토), 독서공책.
2024.7.30(화), 햇빛 쏟아지는 그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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