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빼고 오세요."
금요일 오후, 동료 선생님들께 응원받으며 치과에 갔습니다. '이가 깨졌나?' 병원 갔다 "사랑니니 빼는 게 좋겠네요." 신경치료는 해 봤지만 생니를 뺀다는 건 어떤 느낌일까요. 고3 때 단짝친구가 사랑니 네 개 빼고 한참 고생하는 걸 봐선지 진단 받고부터 은근히 마음이 묵직했습니다.
엑스레이 찍고 "얼마나 걸릴까요?"
"마취하는 데 5~10분, 빼는 건 빠르면 5분인데 이가 깨져 빼는 데 시간이 걸릴 수 있어요."
신경치료 때보단 마취가 덜 뜨끔. 10분 뒤에 "자, 뺍니다." 몇 번 기구가 움직이나 했더니 "다 하셨어요. 월요일에 소독하러 오세요." 생각보다 큰 이 하나가 덩그라니 보입니다.
감사하게도 많이 붓거나 아프지는 않은데, 약이 독한지 이틀 내내 헤롱헤롱했습니다. 어린 날 하나둘 돋아나던 이가 하나 빠지니 '인생의 절반을 달려온 건가...' 몇 년 전 본 <낙치설(落齒說)>을 다시 찾아 읽습니다. 이가 깨지기만 해도 먹고 말하기 불편한데, 임플란트 안 되는 17세기에 갑자기 앞니가 빠졌다면 얼마나 황망하고 서글플까요.
그래도 김창흡은 시린 마음 다독이며 이 빠진 이야기를 제법 길게 씁니다. "늙음을 잊는 것은 망령되고 늙음을 한탄하는 일은 천박하다. 망령되지도 천박하지도 않게 되는 길은 오직 늙음을 편안하게 여기는 것뿐이리라! 편안하게 여긴다는 말은 쉼을 누리며 마음 가는 대로 사는 것이다." 늦은 밤 옛글에 제 마음도 따스해집니다.
* 원문은 다음과 같습니다.
"蓋忘老者妄(개망로자망), 嘆老者卑(탄로자비). 不妄不卑(불망불비), 其惟安老乎(기유안로호)! 安之爲言(안지위언), 休也適也(휴야적야)."
<낙치설> 마지막 부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