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석모(장유승 역해)의 『동국세시기』(2016)
기록과 번역의 가치
읽은 날 : 2024.9.16(월)~9.17(화) 오후 8:55
면수 : 286쪽
고등학교 2학년 봄에 최대림 번역본 『동국세시기』를 읽었습니다. 김매순의 『열양세시기』와 유득공의 『경도잡지』까지 한 권에 담은 책이었고, 제 기억이 맞다면 용돈 모아 문우당서점에서 샀습니다. 아끼던 책이 이사 몇 번 다니다 없어져 작년에 다른 번역본을 찾았습니다. 틈틈이 보다 이번 추석 연휴에 처음부터 찬찬히 읽었습니다.
새 번역과 해설로 읽는 『동국세시기』는 어린 날 만난 책과 같으면서도 달랐습니다. 우리나라 세시풍속 중 절반 이상의 기원을 중국에서 찾고(16쪽) 19세기 중반 한양 풍속을 주로 반영했으나(27쪽), 다른 문헌에서 찾아보기 어려운 풍속을 소개하여(27쪽) 일찍부터 '민족 고전'으로 자리잡은(12쪽) 책. 원문도 반갑지만 번역과 해설에 먼저 눈이 갑니다.
"가까운 서울부터 먼 시골에 이르기까지 평범한 한 가지 일이라도 명절에 해당하는 것이라면 비록 비속하더라도 남김없이 기록하였다."(32쪽) 이교영이 <동국세시기 서문>에 담은 말처럼, 홍석모는 그때 그 사람들의 풍속을 기록하고 묘사합니다. 그때 그 글, 옛사람의 일상을 요즘 말로 세심하게 번역하고 해설한 손길 덕분에 아주 오랜 이야기를 눈 앞에서 보는 듯이 읽습니다.
추석 수업 하다 보니 "추석은 우리말로 가위[嘉俳], 또는 한가위[漢嘉會]이다."(189쪽, 8월 추석 해설), "『성호사설』에 따르면 송편은 쌀가루 반죽에 채소와 콩을 넣고 솔잎을 깐 시루에 찌는 것이라고 하였다."(193쪽, 8월 기타)를 더 꼼꼼히 읽고 정리합니다. 읽으면서 가장 놀란 건 음력 2월 첫날에도 노비들에게 나이 숫자대로 송편을 만들어 주는 일입니다. '노비날[奴婢日]' 세 글자에 오래 머물렀습니다.
<마음에 남은 글>
현재적 의미가 있다 하더라도 고전은 여전히 과거의 글이다. 현재는 그 글이 만들어진 때와는 완전히 다른 세상이다. 더구나 대부분의 고전은 글 자체도 한문으로 되어 있다. 과거의 글을 현재에 읽힐 수 있도록 하자면 현대어로 번역하는 일은 기본이고, 더 나아가 그 글이 어떠한 의미가 있는지를 꼼꼼하고 친절하게 풀어주어야 한다. 5쪽, 이종묵, <'규장각 고전 총서' 발간에 부쳐>
『동국세시기』처럼 세시풍속을 날짜순으로 정리한 독립적인 저술을 '세시기'라고 한다. 12쪽, <'민족 고전'의 실상과 허상> (『동국세시기』 해제)
이 책을 통해 세시풍속의 본질을 포착하고 그것이 시대와 지역에 따라 서로 다른 모습으로 나타나는 실상을 확인하는 계기가 되기를 기대한다. 28쪽, 해제
흰떡을 만드는데 큰 것은 손가락만 하고 작은 것은 계란만 하게 모두 반달 모양으로 만든다. 콩을 삶아 떡소를 만들고, 솔잎을 사이에 깔고 시루에 넣어 찐다. 꺼내서 물로 씻고 향유를 바른다. 송편[松餠]이라고 한다. 노비에게 나이 숫자대로 준다. 세속에서 이날을 '노비날'이라고 한다. 이날부터 농사를 시작하므로 이런 음식을 먹이는 것이다. 떡집에서는 팥, 검은 콩, 푸른 콩을 떡소로 넣기도 하고, 꿀을 섞어 넣기도 하고, 삶은 대추나 익힌 미나리를 떡소로 넣기도 한다. 이달부터 시절 음식으로 삼는다. 103~104쪽, 음력 2월 초하루
또 범석호의 「상원기오중절물배해체(上元紀吳中節物俳諧體)」 시에 "그림자가 돌아가니 말이 종횡으로 달린다."라고 하였는데, 주석에 말 탄 사람의 모습을 그린 등이라고 하였으니, 송나라 때부터 이렇게 만드는 방법이 있었던 것이다. 135쪽, 4월 초파일
- 주마등(走馬燈)의 유래일까요? 흥미롭게 읽었습니다.
오늘날 각 종교의 명절마다 경건한 본뜻은 사라지고 행락이 난무한다고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다. 그러나 이것은 오해이다. 종교의 명절은 예로부터 사회 구성원의 휴식과 화합을 위한 축제였다. 137쪽, 4월 초파일 해설
길쌈은 실을 뽑아 옷감을 짜는 일련의 과정을 뜻한다. 전통 사회에서 길쌈은 여성의 역할이었다. 황후 및 왕비는 몸소 길쌈을 시연함으로써 이를 권장하였는데, 한가위의 기원이 된 신라의 길쌈 내기 역시 그 일환으로 이루어졌을 것이다. 188쪽 사진 해설
- 104쪽 노비날과 함께 수업 시간에 더 자세히 설명할 수 있겠습니다.
2024년 가을 『동국세시기』.
저의 첫 『동국세시기』(최대림 역해, 홍신문화사, 199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