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른의 깊이, 청년의 마음
읽은 날 : 2025.9.27(토)~10.5(주) 오후 9:12
면수 : 182쪽
연휴 직전 찾아온 책을 오래 읽었습니다. 길지 않은 책을 1주일 넘게 붙든 건 글에 담긴 깊이와 푸르름 때문입니다. 6년 전 같은 작가님 『오늘을 읽는 맹자』*에서 21세기 언어로 살아 숨쉬는 맹자를 만나, 이번 책도 기대가 컸습니다. 『오늘을 읽는 맹자』가 요즘 말로 풀어쓴 『맹자』 완역본이라면, 『지금 우리에게, 맹자』는 『맹자』를 쉽고 가깝게 만나게 하는 입문서입니다.
한문 전공 아닌 작가님이 『맹자』에 푹 빠진 계기는 '생생함'입니다. 대학원 입시를 위해 한문의 구조를 배우다 펼쳐든 『맹자』에서 살아 있고 활기찬 맹자를 만났습니다. "부패한 세상을 향해 한바탕 크게 꾸짖는가 싶더니 여전히 싱그럽고 눈부신 자신의 꿈을 희망찬 목소리로 신나게 펼쳐 보였다."(6쪽) 그렇게 만난 맹자와 그의 말이 작가님을 움직였고, 옛글을 오늘날에 맞게 풀어내는 깊이와 청년의 뜨겁고 푸르른 마음을 품는 원동력이 됩니다.
고등학교 1학년 한문 시간에 항산(恒産)과 항심(恒心)을 배웠습니다. "유항산자유항심(有恒産者有恒心).", 일정한 재산이 있는 사람이라야 안정된 마음이 있다는 말은 읽을 때마다 새롭습니다. 어린 아이 돌볼 때의 항산은 푹 자고 밥 한 그릇 편히 먹으며 하고 싶은 일을 즐겁게 하는 자유입니다. 학교에서 바쁜 날은 잠시 쉬어가며 한숨 돌리는 것만으로도 항산이 차곡차곡 쌓였습니다.
책을 다 읽을 즈음 격무에 시달리다 삶을 접으신 선생님의 비보를 뉴스에서 접했습니다. '바쁘고 고단한 학교에서 항산을 지키려면 무엇부터 해야 할까?' 묵직한 마음으로 추석 명절 지나다 "항산을 보장해야 한숨 돌리고 쉴 만한 여가가 생길 수 있고, 바로 그 시간이 생겨야 효제충신을 가르칠 수 있다."(112쪽)에 오래 머물렀습니다.
학교에서 항산을 보장하려면 수업과 생활지도 외의 행정업무 부담을 줄여야 합니다. 상황이 여의치 않다면 공동체 안에서 어렵고 힘든 부분을 공유하면서 서로를 지지하고 응원하는 연대가 필요합니다. 한문 교사로, 신설교 교무부장으로 학교 공동체의 항산을 보장하는 일에 작으나마 도움이 되고 싶습니다. 책에서 배운 어른의 깊이와 청년의 마음을 일상에서 살아내길 소망합니다.
<마음에 남은 글>
그에게 진정한 의미의 통일은 평범한 사람들이 누구나 행복하게 살 수 있는 나라, 위협받지 않고 일정하게 보장되는 소득이 있어 생존에 대한 불안이 없고, 그래서 타인을 돌보고 사람다운 사람으로 살아가겠다는 마음을 항상 간직하고 실천할 수 있는 나라가 되는 것을 의미했다. 7쪽
누군가의 따스함이 오늘 나에게 세상은 아직 살 만한 곳이라 말하게 하지 않는가. 그리고 나도 누군가에게 희망까지는 못 되어도 미소 한번 짓게 해 주자, 절망은 되지 말자 결심하게 되지 않는가. 맹자의 힘은 여기에 있다. 75쪽
작은 것을 좇느라 큰 것을 잃어버리고 있는 줄도 모르는 상황, 이것을 방심(放心), 즉 마음을 잃어버리는 것이라 하는데, 맹자는 이 잃어버린 마음을 찾는 것을 무려 학문의 목적으로 두고 있다. 106쪽
형벌을 줄이고 세금을 경감해 백성들이 농사일에 힘을 다해 먹고살 길을 보장하는 것이, 앞서 말했던 백성에게 항산을 주는 일이다. 항산을 보장해야 한숨 돌리고 쉴 만한 여가가 생길 수 있고, 바로 그 시간이 생겨야 효제충신을 가르칠 수 있다. 지금 표현으로 바꾸면 효제는 부모나 어른을 대하는 방법으로, 충신은 타인과 공동체를 돌아보는 방법으로 풀이할 수 있겠다. 112쪽
- 항산과 효제충신 설명 부분 읽다 감탄했습니다.
한자 親(친할 친)은 주로 혈연으로 이어진 친밀함을 묘사할 때 쓴다. 그러니까 부모와 자녀 관계의 본질이 생명을 주고받는 관계임을 말하고 있다. 그렇다면 이 친밀함은 사회적으로 맺은 가까움과는 다른 속성을 지닌다. 인간이 세상에 존재하기 위한 아주 근본적인 관계이고, 그래서 끊으려야 끊을 수 없고, 그러므로 절대 손상해서는 안 되는 관계인 것이다. 이것이 친밀함으로 표현되었으니, 관계에 대한 최상급의 표현이다. 118쪽
진실로 잘 길러 주면 자라지 않을 것은 없다. 128쪽
- 이 글 다음에 교도소에서 『맹자』 강의하신 이야기가 나옵니다. "이미 2,000년쯤 전에 여러분의 마음을 알고 이해하고 위로해 준 철학자가 있다고 말하고 싶었다."(129쪽) 책에서 가장 뭉클하게 읽은 부분입니다.
* 『오늘을 읽는 맹자』 독후감 : 올해 『맹자의 말들』로 개정판이 나왔습니다.
https://brunch.co.kr/@hanmunlove/2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