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2년 전 오늘은 눈이 많이 왔습니다. 습관처럼 교실에서 공부하려 학교 가니 한문선생님이 일직이셨습니다. 오후 4시쯤 교실 열쇠 갖다 놓으러 교무실 갔다가 한 시간 넘게 선생님 말씀을 들었습니다. 어떤 이야기를 나누었는지 가물가물하지만 제 말을 더 많이 들어 주셨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따뜻한 눈빛, 은은한 격려, 카키색 점퍼, 그리고 『오늘의 양식』 2월호까지.
선생님께서 처음 『오늘의 양식』을 주신 건 1993년 12월 첫날이었습니다. 10월부터 우리 반 중간 담임이셨던 선생님은 <하늘 이야기>처럼 좋은 글이 담긴 소식지를 반에 종종 갖다 놓으셨습니다. 그런 선생님께 『오늘의 양식』이라니! 영어 원문과 한글 번역이 나란히 실린 묵상집을 읽고 또 읽었습니다. 고2, 고3 때도 종종 『오늘의 양식』을 받았습니다.
선생님께 배운 3년간 어떤 한문교사로 살아갈지 꿈을 키웠고, 학교에서 기독한문교사로 선한 영향을 나누려는 소망을 품었습니다. 모교에서 교생실습하던 1999년 5월, 선생님께 다시 『오늘의 양식』 선물받으면서 십대 후반 첫마음과 설렘을 다시 한번 돌아보았습니다. 교생 지도 선생님이 제 부족함을 일깨우고 다듬어 주셨다면 선생님은 묵묵히 응원하며 선배 한문교사로서 힘을 실어 주셨습니다.
가끔 책상에서 『오늘의 양식』을 열어 봅니다. 선생님께서 책 주신 날, 밑줄 그으며 메모한 부분, 같은 길을 꿈꾸는 여린 제자에게 보내는 따스한 마음을 읽습니다. 어느새 그때 선생님보다 더 많은 시간을 살아왔으나 오랜 책 앞에선 볼 발갛고 수줍음 많은 어린 날로 돌아갑니다. 꿈꾸던 시간을 살아내는 오늘, 선생님 따라가려면 한참 멀었지만 선물받은 새날을 맑고 밝고 다정하게 물들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