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설(新設)은 신설(新雪)

by 스마일한문샘

2025년 12월 5일 아침, 밤새 내린 눈이 소복이 쌓였습니다. 출근길이 마음쓰였지만 아침 햇살 받으며 곱게 내려앉은 첫눈 앞에 서니 두근두근합니다. 신설교에 찾아온 눈을 사진에 담다 이양연의 <야설(野雪 : 들판의 눈)> 수업할 때 마음에 담은 말을 떠올렸습니다.

'신설(新設)은 신설(新雪)이구나!'


2월, 바람끝이 차가울 때 신설교에 발령받았습니다. 교무실도 책상도 없었고 학교 곳곳에서 공사 마무리가 한창이었습니다. 행정실 옆 빈 방에 교감선생님과 수석선생님, 신임 부장선생님 다섯 분이 둘러앉아 부서와 역할을 정하셨습니다. 모든 것이 처음이라 더 바쁘고 품이 많이 들었지만 그만큼 감사함과 뿌듯함도 컸습니다.


본문을 풀이하고 정리하면서 물었습니다.

"穿雪野中去(천설야중거). 눈을 뚫고 들 가운데 걸어갈 적에. 왜 눈을 '밟고'가 아닌 '뚫고[穿]'라고 했을까요?"

"글쎄요." "잘 모르겠어요."

"작년 폭설 생각나시죠? 넓은 들판에 눈이 많이 쌓이면 눈을 밟다 못해 푹푹 뚫고 걸어야 해요."

눈 많은 곳에서 온 학생이 끄덕끄덕.


"不須胡亂行(불수호란행). 모름지기 어지러이 걷지 말아라. 왜 어지럽게 걷지 말라고 했을까요?" 이런저런 이야기 귀담아 듣고 "답은 다음 두 구절에 있습니다. 今朝我行迹(금조아행적). 오늘 아침 내가 간 발자국들이. 遂作後人程(수작후인정). 마침내 뒷사람의 길이 되리니. 앞사람이 걸어간 발자국을 뒷사람이 따라간다면 함부로 걸을 수 없겠지요."


"우리 학교 처음 왔을 때 건물 깨끗하던 거 기억나요?"

"네~"

"지금 2학년들 가장 칭찬해 주고 싶은 것 중 하나가 교실 뒤편 거울 옆이 틴트 자국 없이 깨끗한 거예요. 앞으로도 교실을 깨끗하게 써서 후배들에게 좋은 본이 되었으면 합니다."

반짝이는 눈빛 앞에 이야기를 이었습니다.


"우리 학교 올해 신설교죠. 후배들이 학교생활 잘하려면 여러분이 잘해야 해요, 못해야 해요?"

"잘해야 해요."

"전통은 여러분이 만드는 겁니다. 고운 말 쓰고, 열심히 공부하고, 12월에 교복 나오면 단정하게 입고, 학교 앞에서 교통신호 지키는 습관이 쌓이면 여러분뿐만 아니라 우리 학교 평판이 됩니다. 여러분이 학교생활 잘해야 후배들도 잘 따라옵니다."


지난 주에 2026학년도 업무분장 관련 인사자문위원회를 했습니다. '한 바퀴 돌았구나!' 주말에 협의록 쓰면서 지난 1년 동안 한 일, 만든 문건, 좋은 분들과 함께한 시간을 돌아봅니다. 하얀 눈밭에 첫 발자욱 내딛듯 걸어온 길이 개교 2년차를 맞이하시는 선생님들께 또 다른 마중물이 될 것을 기억하면서, 작년 가을 학생들과 나눈 말을 저에게도 더합니다.


* 新設(새 신, 베풀 설) : 새로 설치하거나 설비함.

* 新雪(새 신, 눈 설) : 새로 내려 쌓인 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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