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달 한 번씩 만나는 친구 K가 있다. 고등학교 때부터 줄곧 붙어 다니던 우리는 대학을 입학하고 서로 다른 분야를 공부하면서 조금씩 가치관의 차이가 생겼고, 닮았어도 달랐고 차이가 있어도 비슷한 친구가 되었다. 그날도 여느 때와 다름없이 약속을 잡고 만났다. 그런데 웬일인지 만남의 공기가 무거웠고 대화들은 설익은 밥풀처럼 부서지고 있었다. 그러다 K가 나에게 충고 하나를 날렸다. 좀 더 현실적인 직업을 찾으라는 것. 평소 야무지고 똑 부러진 친구여서 그의 조언을 흘려듣지 않았는데, 그 충고는 내게 조금 버겁다 못해 아팠다. 내 감성과 글로 행복하려 했던 나의 꿈, 바랐던 미래가 송두리째 부정당하는 느낌. K는 두루뭉술한 꿈을 꾸는 것 같은 나에 대한 걱정에, 나는 내 꿈에 대한 진심을 몰라주는 친구에 대한 서운함에 눈물을 흘린 날이었다.
그렇게 아슬아슬하고 어색한 '친구 권태기'기간을 보내는 동안 우리는 진중함보다 가벼운 이야기로 대화를 채웠고, 서로의 직업이나 직장생활의 이야기보다는 연애나 결혼 혹은 생활정보처럼 소소한 수다로 보이지 않는 서로의 틈을 메워내려고 부단히 애썼다. 그런데 오늘은 K가 그랬다.
네 능력, 너무 썩히기 아깝다.
최근 책 읽기에 취미가 생겼다던 K에게 슬며시 건넨 내 글에 대한 K의 평이었다. 그 말은 너무나도 자극적이어서 그동안 묵혀왔던 감정들이 울컥 쏟아지고 수많은 생각들이 스쳐 지나갔다. 미래에 대한 걱정을 하던 나날들, 내 가치관을 부정하던 시선들, 그 속에서 한없이 작아져야만 했던 내가 그 순간만큼은 아주 커다랗고 단단한 모습이 되었다. 작은 틈으로 부족한 능력을 바라봐준 K에게 고마웠고, 글쓰기를 포기하지 않고 끈질기게 붙잡고 있던 나에게 감사했다. 그 말 한마디가 가벼운 대화 소재로 천천히 메워왔던 우리의 작은 틈을 매끈하고 단단하게 굳혀주는 것 같았다. 그만큼 가장 소중한 사람이 나를 진심으로 바라봐 줄 때의 그 벅찬 감동은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로 진하게 다가왔다. 덕분에 본격적으로 글을 통해 행복할 수 있는 방법들을 찾아봤고, 블로그보다 글에 조금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는 브런치를 시작했다.
그러다 문득, 노력을 인정받길 원한다면 행동해야 한다는 것을 다시 한 번 깨달았다. 조심스럽게 건넨 나의 글이 K와 내가 서로를 이해할 수 있는 좋은 계기가 되었다는 것. 그리고 그것이 글로 행복할 수 있는 삶에 적극적으로 다가서는 지금의 나를 만들었다는 것. 이것만으로도 행동의 중요성을 설명하기에 충분하다 생각한다. 여기에 한마디 덧붙이자면, 노력을 빼앗기지 않으려면 행동해야 한다.
세상에는 여러 분야에서 내로라하는 전문가들이 존재하고, 그 밖에는 그 분야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말하기를 좋아하는 똑똑한 애호가들이 있다. 특히나 내가 전공으로 삼고 있는 영화는 애초에 대중의 것이어서, 태어나면서부터 어떠한 권위를 갖고 있지 않았고, 현재까지도 영화는 대중들에게 큰 몫을 내어주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의 텍스트에 대해서 쏟아지는 말과 글은 무궁무진하다. 이 중에는 비전문가임에도 불구하고 놀라울 정도로 훌륭한 리뷰를 남기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나와 비슷한 생각을 정리한 글도 더러 있다. 특히나 유명 감독의 작품이거나 천만 영화에 이르는 경우에는 셀 수 없이 많은 논의 거리와 담론이 생성된다. 이 자리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나의 노력이 휘발되거나 빼앗기지 않도록 열심히 새겨 넣는 일이었다. 쏟아지는 글의 홍수 안에 나의 노력이 조금이라도 묻어날 수 있도록 '행동'하는 것. 부끄럽다고 숨기지 않고 노력의 흔적을 남기는 것. 이것은 작가가 되어 유명세를 떨치고 싶다는 것이 아니라 어딘가에 나의 글이 있고, 또 그것을 읽는 독자가 있다는 것에 내 노력과 능력을 바치고 싶은 것이다. 그저 단순한 노력의 기록. 그것만으로도 글로 행복하고 싶은 소박하고도 거창한 꿈에 한걸음 다가가는 것이리라.
모든 행동에는 노력과 용기가 묻어있고, 행동은 아주 깊은 고민의 끝자락에서 반짝 빛난다.
만일 어두운 고민의 터널을 헤매고 있다면, 밖으로 빠져나오기 위해 발을 움직여보자. 그것이 아주 사소한 일일지라도. 아마 단순하고 보잘 것 없어보이는 그 행동의 결실은 대단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