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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온 Jul 22. 2020

변화를 맞이하는 나에 대하여, 오늘의 기록

3번째 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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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간 중요한 일을 치르느라 기록이 없었다. 다시 시작하려 할 땐, 이전에 생각해두었던 카테고리가 장애물이 되었다. 틈 있는 일상. 내가 살아가는 삶 속에서 발견한 어떤 것의 기록. 발견한 것이 없어 글을 쓸 수 없었다. 그래서 그냥 쓰기로 했다. 발견이 없는 일상의 어떤 글. 머릿속에 울리는 소리의 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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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 일이 가득 쌓여있다고 느끼는 요즘, 서걱거리는 볼펜 소리가 듣고 싶었다. 새하얀 빈칸 위에 아무 의미 없는 말들을 끄적이고 나면 기분이 조금은 좋아질 것 같았다. 그런데도 난 꽉 닫힌 필통 주머니를 열지 않았다. 볼펜 소리가 듣고 싶었으나, 볼펜을 잡지 않았다. 공허함. 과연 그게 뭘까. 얼마 전 논문 심사가 끝났다. 재학 2년, 수료 1년 6개월. 총 3년 반이라는 시간을 인내한 끝에 고대하던 졸업에 다다랐지만, 막상 딱딱한 검은 표지로 제본된 결과물을 보고 나니 그저 허무함만 커졌다. 수료기간 동안 쉴 틈 없이 연구했고, '이것만 끝나면'이라는 수식어를 붙이고 하고 싶은 일들을 나열하곤 했는데, 결국엔  모든 것이 사라진 느낌이다. 하긴 볼펜 소리가 듣고 싶다면서도 손에 쥐어보지도 않았는데 다른 일들은 오죽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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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이 마구 꼬이는 것만 같다. 예상대로라면 원하는 결과를 얻은 지금, 모든 것이 잘 되어 있어야 하는데 그렇지가 않다. 겨우 마음을 다 잡고 새 노트와 필통을 샀다. 그리고는 좋아하는 카페로 와 끄적이기를 시작했으나, 준비가 안 된 글씨가 마음에 들지 않아 벌써 다섯 장이나 찢어 버렸다. 그래서 결국 볼펜 소리는 듣지도 못하고 샤프 뒤꽁무니를 똑닥였다. 기분이 썩 나아지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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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고 싶은 옷이 많아졌다. 옷장을 가득 채우고도 모자랄 만큼 빽빽이. 사실 이 소유욕이 나의 신체에 대한 불만에서 기인했다는 걸 안다. 논문 심사를 준비하는 동안 살이 많이 쪘다. 덕분에 옷이 작아졌고, 잘 맞아도 태가 안 났다. 매번 다짐하며 시작하는 운동은 하루면 좌절한다. 그러니 인터넷 쇼핑몰 속 모델들을 보고 옷을 사기를 수십 번. 요즘은 인터넷 결제가 왜 이리도 쉬워졌는지. 얇아지는 지갑과 멋스럽지 않은 나의 모습에 또다시 무너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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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몇 권의 공책을 찢었고, 몇 벌의 옷에 울었을까. 우울에 잠긴 채 주욱 글을 뱉어내다 보니 이제 좀 알겠다. 지금 나는 변화를 맞고 있으며, 새로운 목표를 정하기 전 방황의 동굴을 걷고 있다. 중요한 것은 정착하지 못하고 초조해하는 나의 마음을 달래는 것이다. 흘러가는 시간들 속에서 변화는 아주 조금씩 천천히 나에게 도착할 것이라고. 그 시간이 흘러왔던 시간들보다 고되더라도, 언젠가 꼭 이 어둠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이라고. 이제 나는 마음이 한결 나아졌을까. 제발 그러기를. 그럴 수 있기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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