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밝게 뜬 달을 좋아했다. 하얗게 혹은 노랗게
또 아니면 파랗게 박힌 모습이 좋아
자주 올려다보던 시절이 있었다.
그것만으로도 위로가 되던 시절.
억눌린 감정이 쏟아지는 날이면 꼭 달을 찾곤 했다.
기울어져버린 내 시간 안에서, 그 어두운 방 안에서
내가 기댈 수 있는 것은 오직 달 뿐이었다.
그래서 달이 좋았고, 달을 믿기로 했다.
2.
초저녁이었다.
꽤 괜찮은 오후를 보냈고,
좋지도 나쁘지도 않은 평범한 하루가 지나고 있었다.
쨍했던 나뭇잎의 채도는 짙어졌고,
선선하다 느낄만큼의 계절이 되었다.
딱 여름과 가을 그 어디쯤.
그 계절 안에서 하늘은 익어갔다.
여느 때와 다름없이 카메라를 켰다.
3.
아름다움을 목격한 순간
카메라를 꺼내드는 것은
참으로 잔인한 사랑방식임을 깨달았다.
진실된 사랑이란
그 아름다움을 붙잡아 프레임 안에서
죽어가도록 얼려두는 것이 아니라,
흘러가는 시간 그대로 그 모습을 바라봐 주는 것.
가만히 지켜보는 것.
그것이 진정한 사랑임을 이제 알았다.
카메라 안에서 죽어버린 시간은
내 눈 앞에서 고요히 빛이 났다.
4.
자연스럽게.
이보다 더 아름다운 단어가 있을까.
있는 그대로를, 그대로의 시간을 붙잡지 않는 것.
그 시간을 걷는 나 역시도 내버려두자.
시간 속에 떠밀려가는 나를
억지로 옭아메지 않고 자연스럽게 놓아주는 것.
무너지는 대로 사랑하는 것.
저물어가는 나를 지켜보는 것.
그것이 진정한 사랑방식임을 이제 알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