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하늘이 보랏빛으로 물들고 있었다.
밀려드는 어둠을 버티고 선 해는 꼭,
하루를 붙잡고 싶은 이들의 아쉬운 한숨을 담는 듯했다.
아직 꺼지지 못한 건물 안의 형광등, 줄지어 선 차량 전조등,
그리고 가로등과 건물 간판이 서서히 켜지면 오직 이곳, 도시에서만 볼 수 있는 풍경이 펼쳐진다.
2.
어떤 설렘이나 호기심은 없었다. 단지 몇 년 만에 만나는 그 모습이
행여 낯설어 침묵이 돌지 않을까, 약간의 걱정이 들었을 뿐.
서로를 알아볼 수 있을까, 고민도 들었다.
말 그대로 우리는 너무 오랜만이니까. 그래서 어디서부터 공백을 메워갈지 생각해야 했다.
어떻게 지냈는지, 무슨 일을 하는지, 또 다른 친구들은 잘 지내는지.
형식적이고도 의무적인 그런 질문들.
3.
모두 어제 일 같았다.
우리는 타임캡슐의 뚜껑을 따고 한 잔 씩 비워내고 있었다.
서로에게 익숙한 이름과 순간,
누구는 기억하지만, 또 누구는 알지 못하는 그런 이야기들.
땅 속에 묻어뒀던 항아리는
생각보다 크고 무거웠으며, 새롭고, 신기하고, 놀라웠다.
4.
어쩌면 나도
오늘을 붙잡고 싶었는지 모르겠다.
거리로 나와 걷던 발자국이 아쉬웠고,
어둠에 잠겨 뻐끔거리는 불빛들에 속이 상했다.
마치 지지 않으려는 해처럼
아주 조금씩 느리게,
조금 더,
하루를 걷고 싶었다.
그래서 나는 보랏빛으로 물들어갔다.
반짝이는 도시풍경이 기다리고 있음을 알면서도
보라색 등불 속에서 너와 조금 더 걸어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