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딱딱하게 굳은 살은 속에 감추니까

by 한나



어느 날 밤, 창문을 열어놓고 솔솔 불어오는 밤 내음을 맡으며 그림을 그리던 중, 키썸(KISUM)의 노래를 듣게 되었다. 좋아하는 플레이 리스트가 랜덤으로 재생되고 있었는데, 키썸의 노래는 꽤 여러 곡이 껴 있어서 종종 흘러나온다.

밤 내음에 실려오던 노래 <100%>의 가사. 나는 노래를 들을 때 가사를 음미하는 경향이 있다. 그 때문인지 오래도록 플레이 리스트에 남겨두는 곡은 다 이유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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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썸의 많은 노래를 좋아하지만, <100%> 외의 <옥타빵>도 참 좋아한다. 같은 상황과 같은 길은 아니지만, 꿈을 향해 뚜벅뚜벅 걸어가는 누군가의 마음이 솔직하게 담겨있어서 참 좋다. 위안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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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하나도 힘들지 않았다거나, 그냥 즐기면 되는데 왜 힘드냐는 말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누구나 처한 상황과 마음의 한계치가 다른 것이고, 자신이 좀 덜 힘들다면 그 단단한 마음의 근육에 감사하게 여기면 될 일이다.

한 사람을 사랑하고 그 사람과 시간을 쌓아가는 일도 힘든 날이 없진 않은데, 일이야 오죽할까? 싸움이 없는 편인 남편과의 부부생활에서도 힘든 날이 있는데.

원하던 곳에 오를 때까지, 아니 오르고 나서도- 힘든 날은 분명히 있다. 그를 극복하는 마음가짐이 즐기는 마음을 만드는 것뿐. 그리고 나도 그런 마음가짐을 갖기 위해 노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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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을 그리면서 완전히 다른 일로 진로를 틀어본 적은 없다.

어떤 일을 하고 있어도 다 그림이라는 큰 그룹 안에서 고르고 체험하고 일하고 움직였다. 딱 한 번, 틀어볼까 하고 갈림길에 서본 적이 있는데 그때도 그림이 자꾸 나를 불렀다.

뭐가 좋냐고 묻는다면-

그냥 태블릿에 펜촉이 닿는 순간 그 자체가 좋고, 화면 위로 뻗어나가는 선들이 좋다. 키보드 위에서 하고 싶은 말을 떠들며 내는 타자 소리가 좋고, 색을 칠하고 머릿결을 그리는 그 순간이 좋다. 마음을 그리고 누군가에게 위로가 되는 행위는 당연히 엄청나게 짜릿하고 나 스스로에게도 위안이 되니 말할 것도 없다. 그 외에 그림을 위한 단순한 행위조차도, 그냥 좋다. 그래서 자꾸 그림으로 돌아간다.

때려치워! 싶다가도- (미혼이던 시절) 헤어진 지 얼마 안 된 옛 연인처럼 자꾸 생각나는 묘한 존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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쉽게 해내고 싶지만 맨날 쉽진 않다. 말도 안 되는 부분에서 심하게 막히는 날도 있다. 뚜렷하게 이뤄낸 것이 없을 땐 그림이 막힌다는 얘기도 하기가 어렵다. 취미생활을 너무 진지하게 하는 것처럼 비칠까 봐.

하지만 그림은 내게 취미 그 이상의 존재이다. 그림으로 밥벌이를 할 때도 그랬고, 정말 취미로만 그릴 때도 그랬다.


그런 순간, 키썸의 노래 가사처럼 누군가의 솔직한 고백이 나를 북돋아준다. 좋아하는 일이, 그 사람에겐 이미 궤도에 오른 것 같은 그 일이 꽤 힘들었으며 여전히 힘들다는 그 고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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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련하다. 나는 꺼내기 어려운 그 말을, 내 눈에 멋진 사람들이 시원하게 꺼내 줘서 위안이 된다. 잘하고 싶어서 힘들다는 게 부끄럽지 않게 느껴진다. 나 혼자 열심히 달리는 이 길이 바보 같아 보이지 않아서 좋다. 앞으로도 힘든 날이 얼마든지 찾아올 수 있으며 그것은 당연한 일이고, 나는 잘 해낼 수 있을 거란 생각이 든다. 버거운 날이 와도, 뭐 그런 날도 있지. 다 그렇게 사는 거야. 다 각자의 위치에서 열심히 움직이고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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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위로하기 위해 그렸던 그림이, 남을 위로하는 이야기로 바뀌었고, 그는 다시 나를 위로하는 과정으로 바뀌었다. 인스타도 블로그도 브런치도 결국은 내가 나를 위로하고 다독이고 성장하는 과정을 기록하는 연구실처럼 느껴진다. 아마 꽤 오랜 시간 나의 성장일기, 성장 기록이 만들어지겠지? 마치, 내가 나를 장기간 연구하는 이 기분. 그런데 그것이 밥벌이로도 이어진다니 놀랍고도 감사하다.


너무 무거워지진 않으려 한다. 그렇다고 너무 가벼워지지도 않고. 오래도록 뚜벅뚜벅 걸을 수 있도록 적당히 비워내고 적당히 채워가야지. 그렇게 흐르듯이 여러 결을 경험하며 살 것이다. 늘 생각하지만, 모든 과정을 겪어내며 정말로 괜찮은 어른이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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