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죽는 날 나만의 처방전, 밥 챙겨 먹기
언제부터였을까? 기죽으면 밥부터 열심히 먹게 된 게.
대학에 떨어졌을 때도 눈물을 꾹 참고 국밥에 밥을 말아먹었다. 근종 수술을 확정하는 그날에도 집에 돌아와 밥부터 챙겨 먹고 수술 준비물을 적은 뒤, 화장실에서 혼자 울었다. 그렇게 일단, 밥부터 먹고 운다.
겨울비에 차갑게 젖고 얼어버린 솜 같은 마음과 몸이지만, 꾸역꾸역 나아가야만 하는 순간들이 있다. 장롱문 사이로 튀어나오려는 이불더미처럼 감정이 쏟아져 내려도, 억지로 그 문을 닫고 얼마 남지 않은 평정심을 긁어모아 일상을 견뎌야 하는 날이 있다. 그럴 때 나는 밥을 챙겨 먹는다. 이왕이면 맛있고 건강한 음식으로. 따뜻한 국과 밥을 찾아 한 숟가락씩 꼭꼭 씹어 삼킨다.
일상을 견뎌야 하는 날, 춥고 배고픈 건 더 싫다. 감성에 젖어 자기 연민 따위 하고 싶지 않다. 나 자신을 불쌍하게 여기고 싶지 않다. 거기까지 생각이 닿는 게 싫어서 몸을 따뜻하게 한 뒤 밥을 먹는다. 밥을 먹은 후엔 따뜻한 커피도 마신다.
기가 죽으면, 마음의 방어벽이 무너져 내린다. 지하 50층까지만 내려갈 우울함과 슬픔이 지하 500층까지 내려가 버린다. 50의 슬픔이 500의 무게로 나를 짓누른다. 10대 후반 사춘기 때나 20대 때는 그런 감정을 즐겼지만, 나는 더 이상 그럴 몸과 마음의 여력이 없다. 필요 이상의 감정 소모, 체력 낭비는 질색이다. 감사한 일을 세며 살려는 노력을 한순간의 감정으로 망치고 싶지 않다.
그래서 이런 날의 첫 번째 응급처치는 따뜻한 밥이 된다.
밥 잘 챙겨 먹었냐는 말은 분명한 사랑의 말이다. 흔하디 흔한 안부 인사이지만, 친구나 가족에게 그것을 묻는 것은 사랑의 말에 가깝다. 네가 지치지 않았으면, 울지 않았으면, 항상 마음이 건강했으면. 몸을 채우듯 늘 마음도 채우고 살았으면. 엄마가 늘 어떤 마음으로 밥 먹었냐는 안부를 물으셨는지, 이제야 마음으로 느낀다.
낯선 일을 준비하느라 자꾸 움츠러들던 어느 날, 같이 밥을 먹던 사촌 언니가 찌개 한 그릇을 퍼주며 말했다.
"먹어야 싸울 수 있어. 먹어야 해."
누구보다 열심히 살았던 언니기에, 그 말이 얼마나 진심인지 알 수 있어 눈물이 핑 돌았다. 맞다. 먹어야 싸운다. 아니, 먹어야 싸우지 않고 울지 않고 별 일 아니게 넘길 수 있게 된다.
내가 사랑하는 모든 사람들이 잘 챙겨 먹고, 부디 지치지 않기를. 나 역시 그렇게 살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