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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Z 북섬에서 만난 사람들(4)

'이미 지나버린 모든 것은 아름답다.'

by 한나Kim

우리 가족은 어디를 가나 여행가들의 궁금증의 대상이 되는 편이다. 국제 커플에 일란성쌍둥이 남아 2명의 조합도 신기한데, 한국어를 썼다가 영어를 썼다가 독일어를 썼다가 하니 다들 안 보고 안 듣는 척을 해도 근처 사람들이 귀를 쫑긋하고 있는 게 느껴진다. 한 번은 요하네스가 옆에 프랑스 애들이 우리 얘기를 하고 있다고 말해준 적이 있다. 자기들끼리 저 가족은 어디서 왔을까? 독일어는 알겠는데 다른 언어는 어디지? 라며 신나게 추측을 하고 있다고 했다 ㅎㅎ


아이까지 있는 가족이라 어디서 왔냐고 먼저 물어보는 사람은 없지만, 혹시라도 내가 그들에게 말을 걸면 그들은 기다렸다는 듯이 대답도 하기 전에 일단 이 질문부터 한다.


"By the way, where are you from?"



픽턱에 있는 호스텔에서 만난 남자도 귀를 쫑긋 세우고 있다가, 둥이랑 요하네스가 패드를 가지러 방으로 가자, 혼자 있는 나에게 냅다 말을 걸었다.



- 픽턴(Picton)의 호스텔에서 만난 터키 남자:


배를 타고 북섬에서 남섬으로 넘어온 후, 근처 호스텔에 1박을 하러 갔다. 공용 거실에서 저녁을 먹은 후, 애들과 요하네스가 패드를 가지러 방으로 잠깐 들어갔을 때, 내 뒤에 앉아있던 무척이나 자유로운 영혼으로 보이는 남자가 "Are you Korean?"이라고 물어보길래 "Yes!"라고 답을 했더니...


"아 반가워요. 저는 자자라고 해요. 터키 사람입니다. 한국에서 5년 정도 살았어서 한국말 조금 해요."라는 말도 안 되는 유창한 한국어로 인사를 하는 것이다. 그렇게 그와 이야기가 시작됐다.



그는 미국 IT회사에서 재택으로 일을 하면서 뉴질랜드에서 산지 5년째라고 했다. 올해 12월이면 뉴질랜드 영주권이 나오기에, 영주권을 받자마자 이탈리아인 약혼녀와 함께 이탈리아와 터키를 방문할 예정이라고 했다. 한국에는 2013년부터 2017년까지 있었는데, 그때 너무나 따뜻하고 즐거운 경험을 많이 했기에 올해 말 이탈리아와 터키를 방문한 후 내년 2월에는 디지털 노마드 워크 비자를 신청해 한국에서 다시 거주할 거라고 했다.


한국에 있으면서 패러글라이딩 자격증을 땄는데, 그때 친해진 친구들이랑 호형호제하면서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며, 그때의 한국 친구들도 그립지만 사실 더 그리운 건 음식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자기가 먹고 있는 된장찌개를 보여줬다.


"어머나! 저는 미소국인줄 알았어요!!!"라고 했더니 "아니야~ 이거 된장찌개!!"라는 구수한 답변과 함께 말이다 :)


희한한 것은 그가 뉴질랜드 북섬에서 5년간 살았는데 그곳에서 좋은 기억이 하나도 없다고 했다. 사람들이 정이 없고, 사회가 안전하지 않다고 하면서 뉴질랜드를 계속 부정적으로 말했다. 이렇게 천국 같은 곳을? 북섬이 이상한 것인지, 아니면 그가 뉴질랜드랑 결이 안 맞는 것인지, 아무튼 나로서는 이유를 알 수 없었다.


그는 한국의 좋았던 점에 대해서도 이야기를 했다. 일단 주된 이유는 한국 사람들이 대체적으로 정이 많고 따뜻하다는 이야기를 했다. 씩~ 웃으며 한국에 나쁜 사장님들은 좀 있지만!라는 말을 덧붙이긴 했지만 말이다. 세상에서 가장 안전한 나라이기도하고, 법을 잘 지키는 나라라 무슨 일이 생겨도 쉽게 처리된다는 말도 했다.


한국을 이야기하는 그의 눈을 보니, 추억에 젖어 반짝반짝 빛나고 있었다. 성수동에 있는 맛있는 갈비탕집부터, 나는 알지도 못하는 곳을 흥분하며 말하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그가 물었다.


"요즘 한국은 어때요?"


"한국이요? 뭐, 늘 그렇듯 이벤트의 연속이죠. 윤석열 대통령 탄핵되고, 지금 대선 기다리고 있어요."

"탄핵?? 박근혜 말고?? 나 2017년 한국에서 나올 때 박근혜가 헌법에서 선고 기다리고 있었는데..??"

"박근혜 때 있었구나ㅎㅎ 올해는 얼마 전에 윤석열이 탄핵됐어요."

"박근혜랑 같은 동?? same Party 에요?"

"네, 같은 당. 이름은 국힘당인데, 그때랑 같은 당이에요"


그가 껄껄 웃으며 "나는 경상도를 사랑해"라는 이야기를 했다. 말뿐 아니라 우리의 정세까지 꿰뚫고 있는 그였다. 도대체 한국을 왜 이리 잘 아냐고 물어보니 그때 한국 여자친구랑 오래 사귀었다고 했다.


"여자 친구가 굉장히 엘리트였나 봐요. 한국의 어려운 정치/경제도 다 알고 있는 걸 보니!"



...


한국처럼 총 천연색 이벤트를 가진 나라는 세상에 없을 것이다. 우리는 이러한 삶이 굉장히 익숙하기에 별일 아닌 것처럼 느껴지지만, 한국에서 살고 있는 외국인들에게는 솔직히 흥미진진 그 자체인 듯하다. 심심할 틈이 없어요. 한 이벤트가 끝나면 또 다른 이벤트가 생기니.. 요하네스가 한국에서 사는 13년 동안에도 얼마나 많은 일이 있었는가.


가장 생각나는 것이 2017년, 한국에서 전쟁이 난다는 흉흉한 소문이 돌던 때였다. 한국인은 '또야?'라는 분위기였지만 말이다. 미국에서 나의 베프이자 하우스 메이트이자 호텔 동료였던 Faith가 그때 당시 그녀의 미군 남편을 따라 평택에서 살고 있었기에, 서로의 집을 오가며 우정을 이어가고 있을 때였다.


Faith가 갑자기 나에게 전화를 걸어, 생각보다 상황이 심각하다며 혹시라도 미군 가족 전용기가 와서 자기가 한국을 떠나게 되면 출발 전에 나한테 문자로 알려주겠다고 했다. 그때는 무조건 남쪽이나 독일 대사관으로 도망을 가라는 이야기와 함께 말이다... What??


독일에 사는 요하네스의 가족들과 친구들도 걱정이 되는지 연락이 자주 왔다. 시어머니는 그때 당시 총리였던 메르켈한테 아들이 한국에 있으니 전쟁이 나지 않게 중재를 해달라는 이메일도 보냈다고 한다. 답장을 받았는지는 모르겠다. 요하네스도 두려웠는지, 둥이 어린이집을 다 빼고 단양으로 피난 같은 휴가를 가기도 했다. 거기서 무작정 일주일을 지냈던 추억이 갑자기 떠오른다. 단양 참 예쁜 곳이었지.. -_-


한국 사회가 좀 심심하다 싶으면 북한에서 잊지 않고 미사일도 한 번씩 쏴주고 ㅎㅎ 내가 싱가포르에서 일할 때, 북한에서 미사일을 쏜 적이 있었는데, 그때 당시 원화 가치가 폭락을 했었다. 그 순간을 놓치지 않고, 저금해 놨던 싱가포르 달러를 모두 한국으로 송금해서 돈도 꽤 벌었던 기억이 난다.


이처럼 대한민국은 정치적으로든, 경제적으로든 총 천연색의 이벤트가 난무하는 곳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난 이벤트들을 뒤돌아봤을 때, 단 한 번도 후진을 한 적은 없었던 것 같다. 이 모두가 한국인들의 열심히 사는 습성 덕분이라고 생각한다. 또한 그렇기 때문에 사람들이 열심히 살 수밖에 없는 것 같기도 하고...


뭔가 고요하다 싶으면 오히려 두려움이 생길 정도이니, 사람들이 멈춤 없이 계속해서 달릴 수밖에 없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어찌 보면 참 애달픈 민족이 아닐까.


...



그와 이야기를 하면서 한 가지 걱정되는 것이 있었다. 한국뿐 아니라 전 세계가 코로나 이후로 많이 변했다는 사실이다. 사람들 간의 접촉이 많이 줄며, 따뜻한 '정'보다는 개인주의가 더 진행된 사회. 그가 불과 10년 전에 한국에 있었다지만, 그때와 지금의 한국을 비교하면 꽤 많이 달라지지 않았을까.


"한국도 많이 변했어요. 사람들이 예전처럼 따뜻하지는 않을 거예요. 너무 기대하지 마세요."


심지어 나는 그에게 이런 말도 했다.

"젊을 때의 한국은 천국일지 모르지만, 결혼 후 아이를 낳고 나서는 그리 좋지만은 않을 거예요. 그때는 뉴질랜드가 더 그리워질지도 몰라요."



사실 젊을 때 머물렀던 곳은 시간이 지남에 따라 더욱 미화되기 마련이다. 온갖 고생을 했던 내 젊은 시절이, 시간이 지나고 뒤돌아 보니 사실 내 인생에서 가장 빛나던 시기였음을 깨닫게 되는, 혹은 미화되는 것과 같은 이치가 아닐까.


다시 말하면,

이미 지나버린 모든 것은 아름답다.



자자와 그녀의 약혼녀 제시카가 내년에 한국에 오면 연락하겠다고 내 이메일을 적어 갔다., 혹시 한국에서 다시 만나게 된다면 그때는 한국 욕만 하면서 뉴질랜드를 그리워하는 건 아닌지 모르겠네.. -_-


시간이 지나 다시 보니, 이것 또한 예쁜 하트였음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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