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끓는 물과 뜨거운 증기가 솟아나는 땅'
뉴질랜드에서 산지 6개월이 지났지만, 이렇다 할 지진을 경험한 적이 없기에 과연 이곳이 '불의 고리'에 위치한 섬이 맞나 하는 생각이 늘 들었다. 크라이스트처치에 사는 사람들의 말을 들어보면 이곳은 언제든 지진이 날 수 있는 지역이기에 최소 3일 치의 물과 비상식량은 집에 구비해둔다고 한다. 하여 '진짜 지진이 있을까?' 하는 의심이 드는 우리도 만의 하나를 대비하는 마음으로 비상식량까지는 아니어도 2L 페트병 18개 정도는 구비해 두었다.
그러다 북섬에서 '뉴질랜드가 화산지대에 있는 섬이 맞구나.'라는 것을 절실히 느낀 여행지를 만났다. 그 신비한 자연을 공유하고 싶다.
- 땅 밑에서 온천이 솟구치는 마을, 로토루아(Rotorua)
로토루아는 온천으로 유명한 마을인 만큼 다양한 온천 수영장이 있는 곳이다. 우리는 타우랑가에 있는 언니가 소개해준 수영장으로 갔는데, 일단 가장 유명한 곳보다 저렴하지만, 펄펄 끊는 천연 온천을 식혀서 쓰는 곳이라 물이 좋다고 해서 가게 됐다.
도착해서 따뜻하게 몸을 데우면서 놀다가 별생각 없이 근처 온천이 샘솟는 곳을 구경하러 갔는데, 생각지도 못한 경관에 입이 떡 벌어졌다. 땅을 파다가 뜨거운 물이 솟아오르면 그걸 온천이라 부를 거라고 막연히 생각을 했는데 그곳에서 본 온천은 자연적으로 솟아오르는 샘물이었다.
땅 속에서 무한대로 솟아오르는 끓는 물을 보자니, 이곳은 지옥일까 아니면 천국일까 하는 생각이 들면서.. 저곳에 빠지면 화상을 입고 바로 죽겠지? / 아니 지하수 아래에 마그마가 있나? 그래서 그 지하수가 막 끓어서 위로 솟구치는 건가? / 땅을 파지 않고도 자연적으로 샘솟을 수가 있구나 까지... 아무튼 30분 동안 온갖 상상을 하며 그곳을 보고 또 보았다.
우리 둥이도 나처럼 대자연을 보면서 감탄을 했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았겠으나, 아쉽게도 그들은 레슬링을 하며 놀기에 바빴고, 가끔 나뭇잎이랑 작은 돌을 지옥샘에 던지기도 하고... 뭐 그랬다.
지옥천에서 솟구친 99도의 물이 계곡을 따라 흐르며 두꺼운 수증기를 내뿜었다. 뜨거운 물에서 펄펄 나오는 김이 시야를 가리는데, 가끔 바람의 방향이 뿌연 수증기를 치우면, 작은 계곡 사이에 빼곡히 채워있는 열대우림에서 볼 법한 초록초록한 식물들의 자태가 드러났다.
태초의 모습 그대로 살아있는 자연경관이었기에 그저 보고 있는 것만으로도 마음속 깊은 곳 어딘가가 충만해지는 느낌이 들었다. 내가 이런 지구에 살고 있다는 게 행복하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말이다.
- 화산 지형과 지열 활동을 볼 수 있는 곳, 타우포(Taupo)
타우포 호는 거대한 화산 폭발로 만들어진 분화구에 형성된 호수로, 이 도시는 호수의 출입에 위치해 있다. 이곳은 화산 활동으로 만들어진 도시인만큼, 화산 지형의 특징과 아직까지 활발하게 활동 중인 지열지대를 볼 수 있다.
타우포에는 좁은 협곡 사이로 밝은 에메랄드빛 물이 엄청난 양으로 쏟아지는 후카 폭포(Huka Falls)가 있다. 산 꼭대기에서 떨어지는 게 아닌, 좁은 협곡 사이로 빠르게 흐르는 색다른 폭포라 특색이 있었다. 또한 그런 지형 덕분에 산에 오를 필요 없이 주차장에 차를 세운 후, 1분만 걸어가면 볼 수 있어 접근성도 아주 좋았다.
후카 폭포 근처에 달분화구 지열지대(Craters of the Moon)라고 불리는 곳이 있기에, 그 특이한 이름에 이끌려 방문을 하게 되었다. 이곳은 뉴질랜드에서 가장 큰 지열지대의 일부라고 한다.
초록초록한 숲을 지나 연기가 나는 땅으로 들어서면, 넓디넓은 땅 곳곳에서 뜨겁게 올라오는 수증기를 볼 수 있다. 수증기가 나는 곳은 대부분 척박한 황무지라, 그곳을 걷는 내내 달의 표면이 정말 이렇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거기다 매캐한 유황 냄새를 맡으며 걷고 있자니, 뉴질랜드는 정말 '불의 나라'라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한없이 작은 지구 안에도 이리 다양한 모습이 있구나'가 느껴지는 장소였다. 그리고 이곳을 바라보며, 우리가 과학적으로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들이 과연, 이 우주를 이루고 있는 진실에 몇 프로 정도일까 라는 뜬금없는 생각이 드는 곳이기도 했고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