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한한 우주에 경의를 표한다.'
북섬 여행을 마치고 배를 타고 남섬으로 넘어오기 전, 근처 무료 캠핑장에서 1박을 했다. 비수기였던 만큼 캠핑장에 사람이 거의 없었기에 약한 바람 소리와 물 흐르는 소리만 들렸다. 하늘은 또 얼마나 맑은지, 밤이 되자 별과 은하수가 또렷하게 보였다.
둥이랑 요하네스는 차 안에서 브롤스타즈 게임을 하고 있었기에, 나 홀로 깜깜한 대지에 서서 조용히 하늘을 바라보았다. 그러다 문득, 은하수 안에 두 개의 큰 구멍이 있는 것을 발견했다.
그때부터 나의 상상력이 시작된다. 그곳을 보고 또 보면서, 무수히 많은 갤럭시가 모여서 보이는 은하수에 저 큰 구멍은 무엇인가 / 왜 하필 저 두 부분만 뻥 뚫린 암흑처럼 보일까 / 신이 우주를 만들 때 일부로 저렇게 여백의 미를 남겨둔 것인가 / 은하수에 구멍이 있을 리가 없는데.. 설마 블랙홀인가 등 1시간을 서서 그곳을 보고 또 보았다.
내가 너무 안 들어오자 요하네스가 걱정이 되었는지 차에서 나왔다.
"거기서 뭐 하고 있어?"
"별 보고 있어. 저기 Milky Way에 이상한 게 있어. 일로 와봐."
그도 '진짜 구멍이네?'라고 말하며 한참을 보다가 아마도 저 부분은 구름이 가려있는 것 같다고 했다. 처음에는 나도 그렇게 생각을 했는데, 그것이 진짜 구름이라면 1시간 동안 은하수가 이동을 할 때 위치가 달라져야 할 것인데, 지금도 같은 곳에 위치해 있는 것으로 봐서 구름은 아닌 것 같았다.
그날 품었던 나의 의문은 그냥 의문으로 남겨졌다.
그러다 시간이 흘러 6월 2일, 영국 국왕인 찰스 3세의 생일이 되었다. 뉴질랜드는 영국연방국가인만큼, 영국 국왕의 생일이 휴일로 지정된다. 하여 긴 연휴가 생긴 틈을 타, 우리는 크라이스트처치에서 약 1시간 반 거리에 위치한 '아카로아'로 2박 3일 여행을 떠났다.
아카로아(Akaroa)는 뉴질랜드뿐 아니라 퍼시픽 나라들 중에서 가장 먼저 세워진 '최초의 프랑스 마을'이라고 한다. 그래서인지 이곳은 프랑스 남부의 작은 마을처럼 뭔가 오밀조밀하면서 밝은 에너지가 넘쳤다.
아카로아를 방문한 날, 날씨가 너무 청명하여 '아카로아, 별보기 투어(Stargazing)'를 신청했다. 약속 장소는 밤 9시 국립공원 입구. 별 관찰을 위해 칠흑같이 어두운 산속에서 모인 것이다.
공원 입구에서 어둠과 추위를 뚫고 약 10분 정도 숲 속으로 들어가니, 푸른 초원이 나타났다. 위에는 밝은 별들이 빛나고 있었고, 초원 위에는 나무 의자 10개, 크기가 다른 3개의 천체망원경, 뜨거운 물과 티백/컵 그리고 담요가 준비되어 있었다. 있는 그대로의 쌩 자연에서 별을 관찰하는 투어인 것이다.
둥이는 무섭다고 집에 가자고 난리. 나중에는 오들오들 떨면서 춥다고 난리. 별에는 관심이 하나도 없고요, 어둠과 추위가 싫을 뿐.. 춥다고 하니 나무의자에 앉히고 담요 3장을 덮어주었다. 그랬더니 바로 코를 골면서 잠이 든 둥이다. 우주를 관찰하며 이야기를 나누는 아름다운 모습은 그저 나의 바람이었던 것이다. 흙흙
...
의자에 앉아 망원경 없이 하늘을 바라보며 질문을 하는 시간이 있었는데, 문득 얼마 전 캠핑장에서 알고 싶었던 의문이 떠올랐다.
"내가 약 한 달 전에 은하수를 봤는데, 그때 은하수에 2개의 큰 구멍이 있더라. 이게 뭐야?"
"그것은 네뷸라(Nebulae)라고 하는 검은 구름이야. 그 구름은 굉장히 많은 가스들로 이루어졌지만 아직 중력이 크지 않아서, 그저 응축된 가스로 남아있어. 이게 시간이 지나면 별이 되겠지만, 지금은 그냥 검은 구름에 불과해. 그 구름 때문에 은하수 부분이 구멍처럼 보이는 거야. 그 뒤에는 역시나 많은 갤럭시와 별이 있어."
그랬구나. 생각해 보니 고딩 때 성운이라고 배웠던 게 어렴풋이 기억이 났다. 나의 질문 후, 요하네스는 블랙홀에 대해 물어봤다.
"블랙홀은 우리가 볼 수 없어. 블랙홀을 보려면 빛이 있어야 하는데, 그것이 빛까지 다 흡수해 버리니 볼 수가 없지. 다만 물리적으로 있다는 것을 증명하는 거야. 그리고 블랙홀은 중력이 너무 강해서 빛뿐 아니라, 심지어 우리의 시공간까지 흡수해. 그래서 만약 우리가 블랙홀에 있다고 가정을 하고, 그 안에서 나의 왼쪽을 보면 거기에서 내 뒤통수를 볼 수 있지."
What?? ㅇ_ㅇ
참말로 오묘한 우주가 아닌가. 우리는 분명 블랙홀에 대해 질문을 했는데, 그의 답변이 흡사 타임머신이나 전생 같은 이야기를 하는 느낌.. 블랙홀은 시간과 공간도 흡수를 한다. 그래서 인간이 느끼고 있는 시공간이 그 안에서는 틀어진다..
이것을 다시 생각해 보면, 우리가 보고 느끼는 모든 것들이 사실 절대적으로 옳은 것이 아닐 수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경쟁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 피땀을 흘리며 열심히 살고 있는 우리의 인생이 우주 앞에서는 진짜로 일장춘몽일 수도 있다는 말이고 ㅎ
갤럭시나 별을 보는 것보다 우주에 대해 이야기하는 게 훨씬 흥미로웠다. 이런 이야기를 하면서 과연 우리가 속해 있는 이 우주의 끝은 어디인가. 이 무수히 많은 갤럭시에 우리와 같은 생명체가 얼마나 많이 존재할까. 마지막에는 우리는 어디에서 왔고, 또 어디로 가는가 라는 원초적인 근원에 다 달았다. 그러다 문득 그에게 질문을 했다.
"너는 신을 믿니?"
"NO."
그의 답변은 한치의 주저함도 없이 빠르고, 정확했다.
우주를 바라보는 사람들이 오히려 신을 더 잘 느낄 수 있겠다는 나만의 기대감이 있었는지 모르겠다. 그런데 정 반대되는 그의 답변에 뭐랄까 실망감(?) 혹은 아쉬움(?) 아무튼 형용할 수 없는 오묘한 감정이 올라왔다.
뭔가 철학적인 그의 생각이 궁금했다. 우주를 관찰하는 자의 사상은 어떨지. 그가 비록 신은 믿지 않지만, 이 우주의 시작은 무엇이라고 생각할지.. 그러나 그때가 이미 밤 11시였기에 더 이상의 대화는 할 수 없었다.
우리는 그와 더 많은 이야기를 하고 싶어서 다음날 그의 Stargazing Shop을 방문했다. 그러나 아쉽게도 그곳에는 프랑스인 아내만 있을 뿐, 그는 없었다. 아무래도 그와의 대화를 위해 아카로아를 한번 더 방문해야 할 듯싶다.
...
이 광활한 우주에서 먼지 한 톨보다도 작은 인간이라는 존재들이 도대체 무슨 부귀영화를 누리겠다고 이리 전쟁을 하는지 모르겠다. 평화롭게만 살다 가기에도 짧은 순간이 아닐까.
없는 것에 괴로워하기보다는, 내가 가진 것에 행복함을 느끼며, 나와 다름을 아름답게 포용하는 세상이 오기를 진심으로 희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