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랑 벽의 끝, 결혼 (7)
'추억은 그저 내 마음속의 무용담인 것을..'
그와 함께 했던, 즐겁고 흥분되고 로맨틱했던 멕시코에서 5박 6일간의 여행은 그렇게 끝이 났다. 그리고 나는 별일 없었다는 듯이 일상으로 복귀해 미국 Hilton Head Island에 위치한 Comfort Inn으로 돌아가 전과 다름없는 일을 했다.
집에 도착해, 하우스메이트들에게 그곳에서 있었던 일들을 이야기했다. 나의 절친, 케냐에서 온 Faith가 집중해서 듣더니 제일 먼저 물었다. "Are you gonna go out with him?" 그리고 필리핀에서 온 Lala가 얘기했다. "Oh my god. Probably you would marry him." 이 이야기를 전해 들은 나의 옛 하우스메이트 Malou로부터 네덜란드에서 전화가 왔다. "What happened to you? Please tell me more."
...
국적을 불문하고 모든 여자 사람들은 사랑 이야기에 환장한다. 나만 그런 게 아니다. 당신만 그런 것도 아니다. 나이가 많은 여인, 나이가 적은 소녀 모두 상관없다. 나에게 가끔씩 로버트와 어찌 만났는지 묻는 이웃집 엄마들이 있다. 40대인 그들에게 둘이 만난 이야기를 풀어내면 여전히 '꺅~꺅~' 굉장히 신나 한다. 그리 친하지 않아 서로 점잔을 떨고 있는 상황에서도, 사랑 얘기에 그만 본연의 마음을 드러내는 것이다.
40대가 되어 보니, 20대나 40대 모두 같은 마음을 가지고 있음을 알게 됐다. 우리는 몸만 늙지, 마음이 늙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어릴 때 늘 엄마한테 그런 얘기를 들었는데, 그때는 그 뜻을 전혀 이해할 수 없었다. 그런데 40대가 되어 보니, 사회가 나를 40대로 규정해서 그렇지, 나는 여전히 철이 없는 어린아이의 마음을 가졌구나 싶다. 그리고 문득, 언제 이렇게 나이가 들었나 하는 생각이 든다. 그렇지만 서글프지는 않다. 왜냐하면 나는 나의 20대보다는 30대가 좋았고, 또 30대보다는 지금의 40대가 더 행복하기 때문이다. 다시 돌아가고 싶지도 않다. 그저 주어진 내 나이에 만족하며 행복하게 살려고 노력을 할 뿐이다. 더 행복한 50대가 될 수 있도록 말이다.
...
그 특별했던 여행이 나도 참 즐거웠지만, 주위 친구들에게 이야기하는 재미도 쏠쏠했다. 마치 무용담이라도 되는 듯 말이다. 사실 지금도 무용담 말하듯 이야기하고 있음이 느껴지는가. 나는 사실 엄청 유치하다. 그리고 로버트와 종종 이메일로 연락하는 것도 나름의 짜릿함을 줬다. 멕시코에서 인턴십을 하는 그와 미국의 호텔에서 인턴십을 하는 나. 서로 다른 나라에서 홀로 살면서 서로에게 힘이 되어주었달까. 딱 여기까지는 정말 좋았던 것 같다.
그러던 어느 날, 그로부터 평상시와는 약간 다른 메일이 왔다.
"나 네가 있는 Hilton Head Island에 가도 될까? 몸이 너무 안 좋아서 인턴십을 그만해야 할 것 같아. 독일에 돌아가기 전에 너를 보고 싶어. 네가 있는 곳에 갈게. 주소 좀 알려줘."
저 짧은 메일에 나는 또 꼬리에 꼬리를 무는 생각으로, 고민과 번뇌에 빠졌다. 누구에게는 그저 일상일 법한 이메일 일지 모른다. 그러나 나 같은 사람에게는 가벼운 일상일 수가 없는 메일이었다. 저 짧은 메일에 얼마나 많은 고민과 생각을 했는가.. 고민하고, 생각하고, 또 고민한 후 결국 그에게 답장을 보냈다.
"우리 추억은 그냥 추억으로 남기자. 여기서 너를 만나면, 오하까에서의 좋았던 기억이 모두 사라질까 봐 두려워. 너를 잊지 않을게."
어쩌면 마지막 기회였을 그와의 재회를, 나는 스스로 차 버렸다. 나의 용기 없음 때문이다.
그때의 마음을 솔직하게 고백하자면, '오하까의 바다와 별, 하얀 모래사장 그 모두가 너무나 로맨틱했기에 우리가 서로를 아름답게 봤던 것은 아닐까. 그런데 나의 일상에서 그를 다시 보게 된다면, 그에게 실망하지 않을까. 또는 그가 나에게 실망하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이 있었다. 그럼 내가 무용담처럼 하는 이 모든 이야기가 물거품처럼 사라지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마저 들었다.
훗날 후회를 하더라도, 그냥 이 순간을 그저 내 마음속의 무용담으로만 남기자. 이것이 나의 솔직한 심정이었고, 또 결론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