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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나Kim Aug 23. 2021

방락 벽의 끝, 결혼 (6)

'만남 뒤에는 늘 이별이 있다.'

우리는 로맨틱한 오하까에서의 3박을 뒤로한 채, 멕시코시티로 향하는 야간 버스에 몸을 실었다. 멕시코시티에 도착한 다음 날, 나는 미국으로 돌아가 다시 일을 해야 했고, 로버트는 그곳에서 3개월 간의 인턴십을 시작해야 했기 때문이다.


이른 새벽, 낭만이 있는 멕시코시티에 도착해서 우리는 각자의 호스텔로 헤어졌다. 그는 나와 같은 호스텔에서 머물기를 바랐지만, 나는 어차피 안 볼 사람인데 정을 붙여서 뭐하나 싶은 생각에 각자 다른 곳에 머물고, 이따 멕시코시티 어디에선가 다시 만나서 데이트를 하자고 했다.


...


그렇다. 나는 사실 철벽녀다. 혼자 용감하게 배낭여행을 하는 철벽녀. 백인 흑인 동양인 가리지 않고 잘 사귀고, 잘 어울리는 오픈마인드의 끝판왕이었던, 하지만 철벽녀였던 것이다. 뭔가 굉장히 안 어울리는 단어지만, 나는 그랬다. 옷깃만 스쳐도 결혼을 생각하는 상당히 꽉 막힌, 남자를 사귀기 전에 관찰하는 데만 3년이 걸리는.. 관찰이 끝나고 이제 사귀어볼까 하면 남자가 이미 없어진 후였다. 보수라고 부르기도 민망한, 뭔가 빙신미가 있는 철벽녀였던 것이다. 그까짓 도미토리에서 1박을 더 자면 어떠하리. 무엇 때문에 서로 멀리 떨어진 호스텔에서 짐을 풀고, 또 따로 만나서 데이트를 한단 말인가.. 하지만 나는 그런 사람이었다.. ㅠ_ㅠ


그때를 솔직하게 고백하자면, 오하까에서의 로맨틱한 첫밤 후에, 또다시 1박을 한다면 나는 그와 감정적으로 너무 깊어져 결혼을 할 것만 같은 두려움이 있었다. 이게 바로 철벽녀의 특징이 아니겠는가.. 시작도 하기 전에 생각이 많아져 결국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철벽녀 말이다. 그게 바로 나였다. ㅜ_ㅜ


어쨌든 모든 결정은 여성에게 있다고 생각하는 로버트였기에, 끝까지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을 지으면서도 서로 각자 숙소를 찾아 떠났다. 그리고 오전 11시 정도였나? 10시였나 그때쯤 우리는 멕시코시티 박물관 앞이었는지 아무튼 그 어디쯤에서 다시 만났다.


잠깐 헤어졌다가 다시 만났는데 왜 이리 반갑던지. 우린 연인이라도 된 듯 멕시코시티 여기저기를 돌아다녔다. 로버트가 1년 전에 인턴십을 했던 곳도 가보고, 그때 자기가 살았던 집도 보여줬다. 심지어 그 집 벨도 눌렀던 기억이 난다. 그날 우리는 오래 함께하지는 못했다. 다음 날, 새벽 비행기를 타고 미국에 가야 하는 내 일정 때문에.

 


어두워졌을 때쯤 그가, 내가 머무는 호스텔로 데려다줬다. 길치인 나는 몇 번 출구로 나가야 하는지 몰라서 다른 출구로 나가게 됐다. '어? 여기는 아까 내가 탔던 곳이 아닌데...' 어두컴컴한 곳을 한참 걷고 있는데 지나가는 행인이 조용히 로버트한테 한마디를 했고, 그걸 듣고 그의 얼굴이 굳어졌다. 뭐라고 했냐고 물어보니 '여긴 너무 위험한 곳이니 빨리 숙소로 돌아가라고 했어..' 어쩐지 숙소를 헤매던 그 길에 인기척이 하나도 없더만. 분위기도 아침과는 사뭇 다르게 아주 어두웠다. 밤의 멕시코시티에는 낮에 볼 수 있었던 비비드하고 순박한 느낌이 하나도 없었다. 어둑한 밤이 되니 악명 높은 멕시코시티의 또 다른 모습이 보였다. '이렇게 아름다운 곳이, 듣던 대로 위험한 곳이었구나.. ' 진심으로 마음이 아팠다.


다행히 별일 없이 숙소를 잘 찾았고, 로버트는 더 늦기 전에 바로 돌아갔다. 그의 뒷모습을 한참 동안 본 기억이 난다. 아쉬움 때문이었는지, 고마움 때문이었는지.. 그냥 무슨 느낌인지 명확하게는 모르겠다.


'너를 다시는 볼 일이 없겠지. 고마웠어. 그리고 덕분에 정말 즐거웠어.'


여행을 하다 보면 많은 인연을 만나고, 또 쿨하게 헤어진다. 그냥 그 순간 서로에게 즐거움과 행복함을 주면 되는 것이다. 헤어질 때 너무 아쉬워 이메일을 교환해보지만, 사실 우린 이미 알고 있다. 이 짧지만 소중했던 인연이 오래가지 않을 것임을.. 이 덕분인지 여행지에서만큼은 순간의 인연에 더 집중하기 쉽고, 또 서로에게 진실되기 쉬운 것 같다.


...


어쨌든 만남 뒤에는 늘 이별이 있듯, 우리 또한 이메일만 교환한 채 그렇게 헤어졌다. 인연이 이렇게 쉽게 만나 지고, 또 이렇게 쉽게 헤어져 지는 것이란 사실에 처음으로 마음이 아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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