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한나Kim Aug 22. 2021

방랑 벽의 끝, 결혼 (5)

'우리의 자아는 이미 알고 있다.'

우리의 아름다웠던 첫밤이 지나고, 아침이 왔다.


아무 일 없었다는 듯 둘이 상쾌하게 일어나 바닷가로 나갔다. 유리드와 그녀의 남친은 이미 부지런하게 아침을 준비해두었다. 말린 오트밀과 플레인 요거트 그리고 신선한 과일을 차례로 한 그릇에 넣고 쉐킷쉐킷해서 먹는 아주 건강하면서도 고소한 독일식 무슬리였다. 미국에서도 살았고, 영국에서도 살았던 나이지만 이런 식으로 먹는 무슬리는 그때가 처음이었다. '건강하고 맛있네~ 뭔가 독일스러워.'


여행하면서 참으로 많은 독일인을 만났다. 사실 독일 사람들은 그리 상냥하거나, 유머러스하지 않아서 여행을 하면서도 친해지기가 어렵다는 얘기를 많이 듣는다. 심지어 유스호스텔에서 만났던 어떤 이는 독일인은 자기들끼리만 다닌다며 나한테 불만을 이야기한 경우도 있었다. 하지만 뒤돌아보면 나는 어딜 가나 그들과 어울리는 경우가 많았던 것 같다.


2000년 네팔에 갔을 때, 태권도를 엄청 좋아하던 독일 소녀랑도 종종 같이 다녔던 기억이 난다. 키가 작고 예뻤던 그녀는 그때 내가 심지어 영어를 거의 못했는데도 불구하고 나를 기다렸다가 둘이 강에 목욕을 하러 가기도 했고, 또 내 앞에서 태권도를 보여주며 어설프게 한국어를 하기도 했다 "돌려촤기~ 앞촤기~ 옆촤기~" 이름은 기억이 안 나지만, 나를 배려하는 그녀의 태도가 참 고마웠기에 아직도 그녀에게 좋은 느낌이 남아있다.


2001년 호주에 갔을 때에도 키가 180Cm 정도 되고 샤론스톤처럼 생겼던 독일 여인이 나한테 같이 바에 가자고 한 적이 있다. 그녀는 금발에 파란 눈을 지녔지만 영어를 나보다도 못했기에 유럽인은 모두 영어를 잘할 거라는 나의 편견을 깨준 사람이기도 하다. 어쨌든 둘이 바에 갔다가 문이 닫혀 있어 들어가지 못했던 기억이 난다.


그 외에도 수없이 많은 독일 친구들과 함께 여행을 했더랬다. 심지어 멕시코시티에서 5박 6일을 여행할 때에도 나랑 동갑인 독일 여자애랑 같이 다녔다. 마음이 잘 맞아 함께 오하까에 가기로 했었는데, 2007년 딱 그 시기에 오하까에서 굉장히 크게 데모를 하고 있었기에 그녀는 위험할 것 같다며 못 가겠다고 포기했었다. 때문에 나는 혼자 오하까에 가게 됐고, 어찌 보면 그 덕분에 로버트를 만난 듯하다.  


독일인은 꾸밈이 없다. 그래서 투박하지만 고소한 무슬리 같다. 그치만 오래 먹어도 질리지 않고, 매우 건강한... 그리고 화학적인 맛이 전혀 가미되지 않아 심심한 듯한, 딱 그런 느낌이다. 억지웃음도 없고, 억지로 이야기를 끌려고도 하지 않는다. 말이 없으면 없는 대로, 그렇다고 막 감정적으로 서포트를 해주지도 않는다. 하지만 한결같은 구석이 있다.


...


로버트, 유리드, 그녀의 남친은 환상의 조합이었다. 3명 다 독일인 특유한 차가움이 없었다. 지나가는 사람들한테 말을 걸고, 심지어 산마을에서 머물 때에는 어떤 지나가는 아줌마랑 친해져서 그 아주머니 집에 초대받아 점심을 먹기도 했다. 나도 같이 갔지만 스페인어를 못하는 나는, 괜히 그들의 대화에 방해가 될까 싶어서 그 집 아이들과 놀았다. 아이들이랑은 말이 안 통해도 놀 수가 있으니 :)


우리는 아침을 먹은 후, 배를 타고 망망대해를 구경하러 가기로 했다. 배 한 척에 현지인 2명(선원 1명과 가이드 1명)과 함께 탔다. 나무로 만든 배를 타고 거친 파도 위를 마구 달렸다. 아무 생각 없이 넓디넓은 바다 위를 달리고 있는 것 자체가 경이로웠다. 자연은 늘 옳고, 아름답다..라는 생각을 하고 있는 그때였다. 갑자기 현지 가이드가 바다 위로 뛰어드는 것이 아닌가. 무슨 일인지 몰라 어버버하고 있었는데 그가 큰 바다거북이의 목에 헤드롹을 걸고 수면 위로 올라왔다.. ㅇ_ㅇ


그걸 본 순간 나를 제외한 3명은 즉시 바다로 뛰어들어 거북이를 만졌다.. 도대체 구명조끼도 없이 저 끝없이 깊은 바다 위로 어찌 뛰어들 수가 있단 말인가. 3명은 나한테 어서 들어오라고 답답하다는 듯이 소리쳤다. 수영을 못하냐고도 물어봤다. "당연히 할 수 있지.. 근데 수영장처럼 발이 닿아야 하지.. 저 깊은 곳에서 어찌 풍덩 들어가뉘.. 나는 무서워서 몬간다..."


옆에 있던 선장 아저씨가 구명조끼를 줬다. 사실 그걸 입어도 들어가는 게 무서웠다. 바다 밑에 뭐가 있을 줄 알고.. 상어라도 있으면 어쩌나. 큰 문어가 있을지도 모르고... 그래도 용기를 내야겠지. '인생에서 딱 한 번뿐인 기회일 테니!' 


뭐, 마음 같아서는 바다에 멋지게 뛰어들고 싶었다. 하지만 쭈구리가 되어 어설프게 스믈스믈 기어들어갔다는 표현이 맞을 것이다. 가이드 아저씨가 준비(?)해놓은 거북이를 만져봤다. 음.. 바다에 압도되어 그런지 아무 기억이 나지 않는다 ㅠ_ㅠ 어떤 촉감이었는지도 전혀.. 그저 나만한 거북이라면 한 100살 정도 됐으려나..라고만 생각했던 것 같다.


바다여행은 성공적이었다. 그냥 배를 타는 것도, 그리고 바다를 달리는 것도 좋았고, 거북이와 마주친 것은 뭐랄까 엄청난 행운이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바다에서 나와 우리는 과까몰리로 허기를 채웠다. 멕시코에서 처음 먹어본 과까몰리. 아보카도가 이렇게도 맛있을 수 있구나. 세상에 이렇게 맛있는 음식이 있다뉘!!


허기를 채우고 모두들 초코라떼 아저씨가 직접 만든 해먹에 누워서 딩가딩가 놀고 있었다. 그때 로버트가 누워있던 해먹이 우지끈하고 무너져 내렸다. 너무 당황스러운 순간, 그리고 그걸 본 초코라떼 아저씨의 슬픈 얼굴이 아직까지도 선명하다... 아저씨 죄송해요.. - _-


과거를 회상하며 글을 쓰면서 나는 두 번 놀랐다. 그때의 일이 생각보다 생생하게 기억이 나서 놀랐고, 또 생각보다 로버트와 함께 여행했던 기간이 짧은 것에 놀랐다. 나는 지금까지 오하까를 5박 6일간 함께 여행했다고 생각했었는데 차분하게 글을 쓰며 정리해보니, 오하까에서는 4박 5일이었다는 사실. 그리고 초코라떼 집에서는 1박만 했다는 것도 떠올랐다. 사람의 기억은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또는 주관적으로 바뀌나 보다. 기억이란 게 얼마나 연약한 것인가. 나의 기억이 아닌 너의 기억이 맞을 수도 있음을 늘 상기해야겠다. 그리고 나의 기억만이 옳다는 오류에 빠지지 않도록 노력해야지. 다시 한번 다짐한다.

어쨌든 글을 쓰다 보니, 바다여행을 한 그날 저녁에 로버트와 나는 야간 버스를 타고 멕시코시티로 갔음이 떠올랐다. 초코라떼 하우스에서의 로맨틱했던 첫밤이 우리의 끝 밤이었던 것이다. 늦은 오후, 그렇지만 아직 밝았던 그때 우리는 버스를 타고 있었고, 유리드와 그녀의 남친은 멕시코 남부로 더 여행할 계획이었기에 버스 밖에 서 있었다. 창문을 통해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다 버스가 출발하자 서로에게 손을 흔들면서 우리는 헤어졌다.


그리고 그때, 내가 로버트에게 물었다.


"쟤들은 왜 결혼 안 해?"

"독일은 결혼을 안 하는 분위기야. 그냥 동거만 하는 거지."

"나는 결혼할 거야. 그리고 아직 아프리카는 안 가봤는데, 아프리카는 내 미래의 남편이랑 갈 거야."

"(한쪽 눈썹을 올리고 묘하게 웃으며) 나도. 나도 결혼할 거야."


그저 아무 생각 없이 했던 대화이다. 그냥 별 의미 없이 유리드와 그 남친을 보면서 했던 대화였다는 게 맞다. 그래서 두 번 다시 생각나지 않았던 아주 평범했던 대화. 그런데 2년 뒤 싱가포르 공항에서 로버트를 다시 만났을 때, 나는 왜 저 장면이 문득, 그렇지만 아주 선명하게 떠올랐을까? 아직도 의문이다. 그리고 불현듯 내 마음속 어딘가에서 '나 쟤랑 결혼할 거야.'라는 생각이 솟구쳤더랬다.


"우리의 무의식 또는 참 자아는 이미 알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것이 무엇이든지 간에. 그렇기 때문에 때때로 우리는 이성보다는 본능의 소리에 더 집중하는 게 도움이 될 때가 있다는 생각이 든다. 그때 내가 나의 무의식이 한 말을 믿었더라면  많은 드라마는 없었을 테지. 안타깝게도 나는 끝까지 그를 의심했고, 또 의심을 했더랬다.



로버트 미안.

내가 일부러 그랬던 게 아냐.

두려웠던 내 마음을

나도 어쩔 수가 없었다구 ㅠ_ㅠ

매거진의 이전글 방랑 벽의 끝, 결혼 (4)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