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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캅'을 쓴 여인 (2)

'그녀의 6살 손녀 생일에 다녀오다.'

by 한나Kim

니캅에 대한 안 좋았던 나의 편견을 단숨에 뻥~ 날려준 방글라데시 여인, 'Shafia'의 집에 다녀왔다. 지지난 주에 진짜로 그녀의 6살 손녀 생일파티에 초대를 받은 것이다.


손녀가 6살이니까, 그녀는 아마도 약 50대 초반일 거라 생각을 했었는데, 이게 웬일? 알고 보니 나보다 2살이 어린것이 아닌가. 글쎄 18살에 결혼을 했다네요 매 순간순간 나의 편견을 뻥뻥 날리며, 사고의 폭을 넓혀주는 그녀에게 감사를 표한다.


12시에 딱 맞춰 그녀의 집에 갔더니, 집에 손님이 바글바글했다. 80대 후반으로 보이는 백인 할아버지 2명, 60대 후반으로 보이는 키위 남편이랑 방글라데시 아내 커플, 그 외에 60대 중후반으로 보이는 2명의 인도계 여성까지. 이들은 전부 이웃사촌이라고 했다. 거기에 나, 일본친구 노부코, 노부코의 14살 쌍둥이 딸 2명, Conversation club 선생님인 피오나, 샤피아의 첫 영어 선생님이었던 세라, 마지막으로 손녀손자의 탄생 순간을 함께 했던 조산사까지. 총 13명이었다. 덧붙여 그녀의 가족인 남편, 아들, 딸, 사위, 6살 손녀, 3살 손자. 이렇게 총 20명이 함께 했다.


집에 들어가 샤피아에게 인사를 했더니, 영혼이 없는 듯한 멍한 눈으로 나를 맞으며 자기 잠깐 샤워를 하고 오겠다며 자리를 비웠다. 아침 7시부터 우리가 오는 12시까지 쉴 틈 없이 음식 준비만 했단다.

샤워를 하고 온 그녀는, 모임에서는 한 번도 보지 못한 조신한 모습으로, 우리와 멀리 떨어진 곳에 혼자 앉아 조용히 있었다. 그러다 5명 정도가 집에 가니 그제야 우리에게 다가와 앉으며 이야기를 시작했다.


"음식 하는 거 너무 지겨워. 아우 피곤해. 인생이 매일 밥만 하다가 끝날 거 같아."

"딸도 있잖아. 딸은 안 도와줘?"

"딸? 쳇, 앉아서 스마트폰만 하는 걸. 하나도 안 도와줘. 오늘 음식도 나 혼자 다했어"

"헉.. 세상 사는 곳은 진짜 다 똑같구나 ㅎㅎㅎ"



나랑 노부코, 샤피아, 세라 이렇게 4명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고 있을 때, 갑자기 샤피아가 예상치 못한 이야기를 시작했다.


"내 딸이 2018년에 뉴질랜드 국적을 가진 방글라데시 남자랑 결혼을 하기 위해 뉴질랜드에 들어왔거든. 와서 임심을 하고, 잘 살고 있었는데, 크라이스트처치에서 이슬람사원 테러가 발생한 거야. 그때 사위가 그 자리에서 사망을 했어. 아이는 뱃속에 있는데, 남편이 없으니까 살길은 막막하지. 그때 내가 뉴질랜드로 올 수 있는 특별 비자를 신청하라고 말해주고 도와준 게 여기 세라 선생님이야. 그 특별비자로 내가 먼저 들어왔고, 그 후에 아들이 들어왔고, 마지막으로 남편도 들어올 수 있었어. 다행인 건, 남편이 마지막으로 들어오자마자 코로나가 터져서 바로 국경이 폐쇄됐어. 그때 못 들어왔으면, 2022년까지 아예 못 봤을 거야. 얼마나 다행인지 몰라. 사실 방글라데시 사람이 뉴질랜드에 비자를 받고 들어오는 거 자체가 거의 불가능하거든. 지나고 보니 사위의 죽음이 오히려 전화위복이 되었다는 생각이 들어. 사위가 죽었을 때는 진짜 괴롭고 암담했는데, 지금은 사위가 우리에게 큰 선물을 주고 간 거 같아."


그때 그녀의 딸이 다가와 한 마디를 했다.

"지금 뒤돌아보면, 나는 정말 운이 좋은 사람인 것 같아. 요즘 들어서 점점 더 그런 생각을 ."


딸은 몇 년이 지난 후, 굉장히 좋은 남편을 만나 재혼을 했다고 한다. 집에서 본 남편이 재혼남이었던 것이다. 사람이 굉장히 선하게 생겨서 '사위가 진짜 좋은 사람 같아'라고 이야기를 했었는데, 이런 비하인드 스토리가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6살 딸의 생일 파티를 매년 성대하게 준비하는 이유는, 하늘로 떠난 첫 남편과의 사이에서 얻은 딸이기에 더욱 소중하기 때문이라고 했다.



위 이야기를 통해, 삶을 살면서 나쁜 일이 꼭 나쁜 일이 아니고, 좋은 일이 꼭 좋은 일이 아니란 것을 다시 한번 느꼈다. 왜냐하면 지금 당장 나에게 힘든 일이 닥쳐서 숨쉬기도 곤란한 상황이 닥쳤다손 치더라도, 그녀의 딸처럼, 문득 시간이 흘러 다시 그 순간을 돌아봤을 때, '아 그때가 있었기에 지금의 내가 있구나, 사실 나는 굉장히 운이 좋은 사람이었구나' 하는 전화위복의 깨달음이 오는 순간이 누구에게나 오기 때문이다.


.....


유쾌한 만남이었다. 샤피아에게 다음에는 내가 한국 음식을 대접해 준다고 했더니, 그녀가 자기 집에 와서 요리를 해달란다 ㅎㅎ


그래, 내 한번 솜씨를 발휘해 보리닷. 기다리소!




잡담 1.

지난 토요일부터 우리 4인 가족은 모두 열감기에 걸려 고생하는 중이다. 타이레놀을 안 먹으면, 열이 39도까지 오른다. 아이들이랑 요하네스의 열은 이제 괜찮아졌는데, 나는 아직도 오르고 있다. 감기가 이리 지독하게 머무는 경우는 거의 없는데, 아무래도 남반구에 있는 풍토병 같은 감기가 아닐까 싶다. 요하네스의 면역력은 거의 강철 수준이라 코로나에 걸렸을 때도 증상 하나 없이 지나갔었건만, 이번 열감기는 우리랑 똑같이 끙끙 앓는 중이다. 사실 지금도 침대에 누워있다 ㅜ


타이레놀을 친구 삼아, 새로운 면역력이 생겨 더 건강해질 거라는 위안으로 버텨야지.



잡담 2.

샤피아와 그녀의 딸이 너무나 유쾌해서, 방글라데시의 호감도가 슬슬 오르고 있을 때였다. 유튜브 알고리즘에 방글라데시를 여행하는 유튜버가 떠서 생각 없이 클릭을 했는데... 어머나, 방글라데시 여성들 너무 매력 있네요. 내가 본 그녀들이 방글라데시의 문화이자, 그들의 참모습이었던 것이다. 시간이 남아서 심심한 분들 한번 봐보시길 :) 방글라데시 국가 호감도 200프로 상승 예정!


https://youtu.be/D7Hr-692tDg?feature=shar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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