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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랑벽의 끝, 결혼 (16)

'짧게 스쳐 지나간, 그러나 의미 있던 두 달.'

by 한나Kim

정신을 차리고 보니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았던 두 달이 거의 끝나가고 있었다. 사랑을 하면 핑크빛 넘치는 좋은 기억, 행복한 기억, 따뜻한 기억만 있을 줄 알았건만, 사랑에는 회색빛도 존재함을 제대로 경험한 시간이었다.


두 달간의 성과가 무얼까 생각해 보면, 모태솔로 그리고 철벽녀였던 내가 이 사람 덕분에 드라마 또는 책으로만 느끼던 사랑을 직접 경험해 봤다는 것이 아닐까 싶다. 나에게는 실로 엄청난 의미였다.


이 글만 읽는 분들이 오해할 수 있을 것 같아 살짝 덧붙이면, 나는 20대 때 나 홀로 배낭여행으로 세상을 돌아다닌 용녀(勇女)이며, 황인백인흑인 등 인종 및 남녀노소를 가르지 않고 모두와 쉽게 친구가 되는 열린 사람이기도 했다. 물론 지금도 그렇다.

그뿐이랴. 스카이다이빙, 번지점프, 스쿠버다이빙은 물론, 히말라야의 안나푸르나 상봉까지 10kg인 배낭을 메고 나 홀로 오른... 대충 여기까지만 하겠다.


내가 하고 싶은 말은, 모태솔로라는 단어에 너무 부정적인 편견을 싣지 말자는 것이다. 세상에는 참으로 다양한 사람이 있으니 말이다.


요하네스가 독일로 귀국하기 하루 전, 그에게 한국의 한상차림을 맛 보여 주여주고 싶었다. 하여 이름은 기억이 안 나지만 꽤 유명했던 한정식 집에서 약속을 잡고 만나기로 했다. 식당으로 가기 전, 근처 백화점에서 그에게 줄 선물을 골랐다.


뭐랄까, 두 달 동안 다툼도 꽤 했기에 오히려 정이 더 들지 않았나 싶다. 그래서인지 밥만 먹여서 보내고 싶지 않은 느낌. 그냥 나를 뭔가로 추억해 주길 바라는 마음이었달까. 뭐를 살까 생각하다가 많이 해진 그의 지갑이 떠올랐다. '그래 지갑이라면 항상 들고 다닐 테고, 또 오래 쓸 수 있으니 이거다' 싶었다. 지갑 안에 편지도 고, 싱가포르 돈과 행운의 2달러 짜리 넣어 예쁘게 포장을 했다.


여전히 그의 지갑에 들어있는 3장

깔끔한 종이백에 예쁘게 포장되어 있는 선물을 들고 온 나를 보고 그가 물었다.


"이건 뭐야?"

"응 내일 친한 동료가 생일이라 오는 길에 그 친구 선물을 샀어~"


내가 한 말을 철떡 같이 믿는 그를 보고 속이기 음청 쉬운 사람이구만 싶었다.


큰 상에 한치의 틈도 없이 놓인 반찬과 주 메뉴를 보고 그의 입이 다물어지지 않았다. 살짝 어두운 표정도 보였다. 이 많은 것을 어찌 다 먹냐는 걱정이었으리. 그때는 그 모습이 재미있어 깔깔 웃으며 사진을 찍었지만, 생각해 보면 한상차림 음식의 반은 쓰레기통으로 가는 게 사실이다. 환경을 생각해서라도 이런 문화는 이제 바뀌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다.


한국 음식에 대한 서사와 자랑을 하며 맛있는 식사를 마친 후, 준비해 온 선물을 줬다. 토끼눈이 되어 폭풍 감동을 하는 그를 보고, 정말 몰랐구나 싶었다. 말한 그대로를 믿는 그는 순진한 것인가, 아니면 모자란 것인가


...


어느덧 즐거웠던 두 달이 지나고 헤어지는 날이 되었다. 퇴근 후 그를 공항까지 배웅했다.



지나버린 시간은 늘 '찰나'다. 그것이 1년이건, 10년이건, 아니면 40년이건, 이미 흘러버린 시간은 그 기간에 상관없이 언제나 1초와 다는 생각이 든다. 그렇기 때문에 많은 이들이 죽음을 앞둔 순간에 이렇게나 짧은 인생을 조금 더 즐겁게 살아볼걸 하고 후회하는 것인지 모른다.

그와 함께 했던 두 달은 더 그랬다. 많은 감정과 경험 인상 추억 등을 남겼으나, 그 어느 때보다 빨리 지나간 순간이었기에 더없이 소중했고, 아쉬웠다.


공항에서 그를 보내며 마음 한 구석에서 우린 언제 다시 만날 수 있을까 하는 아쉬움이 밀려왔다. 그리고 과연 우리가 이 인연을 지속할 수 있을까 하는 걱정도 함께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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