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와 함께 보낸, 한국에서의 첫 크리스마스.'
'뭐? 10일 뒤면 한국에 온다고?'라고 말할 겨를도 없이 눈을 딱 감았다가 떴더니 그가 한국에 도착했다는 이메일을 보냈다. 이게 뭔 일이래.
토요일 오전, 혜화역에서 요하네스를 기다리고 있는데 저 멀리서 푸르뎅뎅한 얇은 점퍼만 입고 나에게 다가오는 빼빼 마른 그가 보였다.
그가 처음 한국을 방문한 2009년 12월은 역대급 한파가 몰아친 시기로, 평균 최저기온이 영하 10도를 육박했더랬다.
태어나서 처음 겪는 혹한에 그의 얼굴은 창백했고 동공은 불안하게 흔들리고 있었다. 작은 꽃다발을 들고 함박웃음을 지으며 다가오고 있었지만, 그의 육신은 그가 들고 있던 꽃송이처럼 맥없이 흔들리고 있었다. 아우 짠하다
그래. 이게 한국의 추위야. 평창 동계 올림픽 때 외국 선수들이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추위라고 했던 게 정말 농담이 아니란 말이지. 왜 하필 네가 방문한 시점에 이런 한파가 몰아닥친 걸까.
https://www.youtube.com/watch?v=Bvob_68wrug
엄청나게 추운 날씨임에도 우리는 개의치 않고 이곳저곳을 돌아다녔다. 잠실, 코엑스, 명동, 남산타워, 인사동 등 서울의 관광지는 거의 다 가본 듯하다. 크리스마스이브에는 그가 수원산성을 보고 싶다고 해서 수원으로 내려갔다. 나도 가본 적 없는 수원에서 1박을 하기로 한 것이다.
수원은 서울보다 더 추운 느낌이었다. 사방에서 몰아치는 매서운 바람이 우리의 몸을 강타했다. 특히 얼굴ㅠ 걷기만 해도 눈물이 줄줄 흐르는 날이었으나, 다시는 돌아오지 못할 그 순간을 놓치지 않기 위해 우리는 서로의 온기를 방패 삼아 수원의 곳곳을 돌아다녔다.
밤이 되자 비로소 오들오들 떨며 숙소로 돌아왔다. 잘 준비를 마치고 여느 때처럼 잠자리에 누우려던 순간이었다. 나를 만나기 위해 생전 관심도 없었을 한국에 와준 그가 참 좋은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덧붙여, 영하 10도의 추위도 막을 수 없었던 우리의 온기가 떠올랐다.
'이 모든 것이 진심이구나..'
문득, 지금 이 사람이랑 잠을 잔다고 할지라도 후회하지 않을 거라는 확신이 들었다. 그때의 상황과 감정이 너무나 진심이었기 때문이다.
비몽사몽 잠이 드려는 그에게 조용히 속삭였다.
"오늘 밤 같이 자자."
"뭐라고?"
"자자고. 지금 같이 자자고."
"다시 한번 말해봐. 뭐라고??"
"지금 자자고!"
...
2009년의 크리스마스는 나에게 강렬한 추억을 남겼다. 남자에 대한 불신, '연애=결혼'이라는 망상, '나 자신을 잃을지 모른다'는 두려움 등 모든 걱정거리를, 그가 한 번에 날려주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왜 2009년 크리스마스가 되어서야 이 모든 걱정거리가 사라졌을까? 그 이유는 간단하다. 헤어졌음에도 불구하고 나를 만나러 온 그를 보며, '불신'이 드디어 '확신'으로 변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하지만, 철벽녀가 진심으로 마음을 열기 위해서는 '100% 확고한 믿음', '무조건적인 사랑'이 필요하다. 때문에 미친 듯이 올인하는 남자를 만나지 않는 이상, 그들은 그냥 솔로로 늙어 죽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ㅠ
현재 모태솔로 철벽녀를 좋아하고 있는가? 그런데 그녀가 틈을 주지 않아 방법을 모르겠는가? 내 글을 꼭 참고하길 바란다. 물론 쉽지 않을 것이다 ㅠ
...
그렇게 성공적인 재회 후, 그는 평화로운 모습으로 돌아갔다. 그리고 2010년 2월, 정확히 두 달 뒤에 다시 한국으로 들어온다.
그때부터 우리의 참 연애가 시작된 것이다. 내 고국, 내가 사랑하는 대한한국에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