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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랑벽의 끝, 결혼 (23)

'연인에서 다시 e메일 친구로.'

by 한나Kim

다음 날 엄마는, 순댓국을 먹으며 엉엉 울던 나를 끌고, 무당 할아버지를 찾아갔다. 이전 글에도 나왔던, 미국에 가면 남편을 만날 거라고 하셨던 분이다. 나와 요하네스의 생년월일을 넣자 그분이 딱 3가지를 말씀하셨다.


1. 요하네스는 가족이고 친구고 다 필요 없이 너랑 같은 하늘에 있고 싶어 하는 애다.

2. 너는 얘랑 헤어지면 더 좋은 남자를 만나니까 헤어지고 싶으면 헤어져도 된다.

3. 요하네스 돈 없다고 무시하지 마라. 얘는 똥구멍 안(?)에 돈을 잔뜩 가지고 있는 사람이다.


ㅇ_ㅇ 이게 무슨 소리야?


신기하게도 당시에는 감조차 안 오던 저 비유가, 시간이 흐름에 따라 이해가 되기 시작했다.


요하네스가 나랑 결혼해서 '같은 하늘 아래' 살고 싶어 한다는 이야기였고, '똥구멍 안에 돈을 잔뜩 가지고 있다'는 말은, 당장 눈에 보이는 돈은 없지만, 돈이 필요할 때에는 생긴다는 의미였다.


이를 처음 느낀 것은 둥이를 출산한 날이었다. 그날 아이를 낳으면서 거의 죽을 뻔한 상황이 발생하여 수혈 13팩에, 응급 수술을 받은 후, 응급실에 입원까지 했었다. 그러면서 예상치 못한 수술비와 입원비가 많이 나왔었는데, 희한하게도 그 달 요하네스 월급에 뜬금없이 병원비만큼의 돈이 더 들어온 것이다.

이때 문득, '아! 똥구멍 속에 금이 있다는 말이 이거였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 후로도 2번 정도 이런 일이 더 있었으니, 그의 엉덩이에는 진짜 금이 들어있는 것이 틀림없다ㅋ 급할 때 말고 평소에 나오면 좋겠다


...


그는 기를 쓰고 나랑 통화를 하고 싶어 했고, 나는 기를 쓰고 안 받으려고 하는 일이 반복됐다.


'전화를 받아서 뭐 하겠니. 너는 울고, 나는 마음 아프고. 어차피 만날 수도 없는데 전화로 무슨 오해를 풀겠어. 백번을 해봐라 내가 받나.'


어찌 보면, 어차피 안될 거 그 사람의 마음을 흔들지 말자는 나의 배려였는지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속 전화를 시도하던 그였기에, 전화 말고 그냥 메일로 연락하라고 했다.


근데 글이란 놈이 참 요상하지. 마음이 뜬 사람이라 할지라도, 글을 주고받으면서 서로를 더 잘 이해할 수 있는 계기가 만들어지니 말이다. 이게 바로 글의 힘이 아닐까 싶다.


...


한국에 부푼 기대를 안고 돌아온 나는 뭐든지 잘 될 거라는 희망이 있었다. 어디를 가든 일을 잘 구했던 나였기에, 한국에서도 비슷할 거라는 생각을 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것이 얼마나 오만한 생각이었는지 바로 깨달았다. 리먼 브라더스 사태로 경기가 계속 안 좋기도 했지만, 더 큰 문제는 30살까지 방랑만 하다가 온 나를 좋게 보는 곳이 그 어디에도 없었다는 것이다.


서류 통과 후 면접까지는 가도 마지막에 계속 떨어지니, 불안과 좌절의 연속이었다. 붙을 듯하다가 떨어지는 상황이 더 나를 힘들게 했다.


운명의 장난인지, 이런 불안한 마음을 편안하게 이야기할 수 있는 사람은 요하네스뿐이었다. 친구들에게도, 부모님에게도 말하기 쉽지 않은 상황이 아닌가. 이런 얘기를 해봤자 "그러게 방황 좀 작작하지 그랬니!"라는 얘기가 나올 게 뻔하다. 마음이 안 좋을 때, 나의 솔직한 상황을 적어서 그에게 보냈고, 그러면서 내 두려움도 글과 함께 사라졌다.


속절없이 시간이 흘러 11월이 되었다. 그때 친한 선배로부터, 그녀의 사촌(?)이 일하고 있는 PR회사에서 봉투를 접는 인력이 필요한데 혹시 알바를 하지 않겠냐는 연락이 왔다.


"한나야 가서 봉투 좀 접을래?"

"놀고 있는데, 봉투라도 접어야쥬. 가겠습니다."


일주일간 봉투에 주소를 붙이는 단순 노동이었다. 집에서 놀면 뭐 하나? 주소만 붙이면 되는 꿀 알바라도 해야지!라는 마음으로 일주일간 아무 생각 없이 진지하게 단순노동에 임했다.


알바 마지막 날, 노동을 끝내고 집에 가려는데, PR회사의 사장님이 나를 부르며 물으셨다.


"그대는 어디서 무얼 하다 온 처자인가요?"

"저는 미국이랑 싱가포르에서 일을 하다가 올해 여름에 귀국했어요. 근데 아직 일을 못 구해서 놀고 있어요."


그 얘기를 듣더니 이력서를 달라고 하셔서 아무 생각 없이 드렸는데, 그분이 보시더니, 바로 다음 주부터 일을 시작하라고 하셨다.


회사에서 6개월 뒤에 포럼 행사가 있는데, 미국이랑 직접 소통을 해야 하는 일이기에 나랑 딱일 거 같다고 하시면서 그 프로젝트를 맡게 된 것이다.


하여 2009년 11월 말부터 생판 아무것도 모르는 PR회사에서 일을 시작하게 된다. 그것도 나이 서른에 말이다.


이런 나를 보면서 몇 사람들은 '너무 흐름에 따라 막사는 거 아니야?'라고 물을 수도 있겠다. 근데 뭐 어떤가. 완벽하게 계획대로 움직이다가도 순간의 차로 틀어지는 게 인생인데, 대충 만족하면서 즐겁게 살면 되는 거 아닌가?


...


일을 구하니 마음이 안정이 되면서 독일에 있는 그와 연락을 끊어야겠다 싶었다. 어차피 다시 만날 일이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바로 그때였다. 그로부터 폭탄 메일이 온 것이다.


"나 내년 2월부터 그다음 해 2월까지 한국에서 살아볼까 하는데 어떻게 생각하니?"



What? ㅇ_ㅇ

너는 진짜 미쳤구나.



생각지도 못한 메일을 받고 어버버 하다가 답메일을 보냈다.


"그걸 왜 나한테 물어? 너가 오고 싶으면 오는 거고, 싫으면 안 오는 거지. 네가 설사 오더라도 나한테 아무것도 기대하지 마."


답변을 보내고 나서, 얘가 설마 진짜 오는 건 아니겠지? 바보가 아니고서야 진짜 한국까지 오겠어?라는 마음이 들면서도, 내가 가끔 보였던 멍멍이 지랄에도 꿈쩍하지 않았던 그였기에 설마 진짜 오는 거 아닐까? 하는 불안함도 있었다. 우왕좌왕하고 있을 때 그에게 다시 메일이 왔다


"아무것도 기대하지 않아. 그냥 내가 좋아서 갈까 생각 중이야. 방금 프로젝트 신청했어. 결과 나오면 얘기할게!"



내 이럴 줄 알았다ㅠ




그때의 내 마음을 지금도 잘 모르겠다. 나를 보기 위해 한국까지 온다는 당황스러움. 저 냉혈한 독일인이랑 정말 잘되면 어쩌지 싶은 불안감. 그러면서도 뭐랄까, 싫지 않은 느낌과 뭔지 모를 약간의 안도감까지 '너가 나를 가볍게 생각해서 사귄 건 아니었구나.' 하는 내 존재성에 대한 안도감이라 할 수 있다.


인간의 감정은 이렇게나 오묘한 것이다. 뭐 하나 정해진 것 없이 공기처럼 순환하고 흐르고 또 움직이니 말이다.


...


과연 나는 요하네스와 어찌 될까. 그가 진짜 한국에 오게 된다면, 1년을 어떻게 처신해야 할까? 걱정과 불안, 그리고 이상한 희망(?)까지. 소용돌이치는 감정 속에서 정신을 잃기 전, 그가 두 번째 폭탄 메일을 보냈다.


"약 10일 뒤에 너를 보러 2주간 한국에 갈 거야. 혜화역 근처에 있는 게스트하우스를 예약해 뒀어. 한 번이라도 좋으니 꼭 만나자. 물론 연인이 아닌 친구로서. 근데 크리스마스 때는 꼭 널 만나고 싶어."



ㅠㅠ



...


철벽녀그 어떤 상황에서도 나에게 올인할 수 있는 '비현실적인 남자'를 꿈꾼다. 그렇기 때문에 연애를 시작도 못하는 것이다.


그런데 요하네스가 그런 비현실적인 남자였던 것이다. 드디어 찾았다.



To be continu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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