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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크라이' 헬렌 피츠제럴드

'소시오패스의 민낯을 보여주는 책'

by 한나Kim

요즘 소시오패스, 나르시시스트 등 선천적으로 도덕성이 떨어지고 극단으로 이기적인 인간류에 대한 이야기가 여기저기에서 많이 나오고 있다. 그들은 사실 오래전부터 존재해 왔지만, 상하관계가 뚜렷하고 지시를 묵묵히 따라야 했던 과거의 한국 사회에서는 ‘윗사람은 그렇게 행동해도 된다’는 전제가 있었기 때문인지, 그들의 특성이 지금처럼 두드러지지는 않았던 것 같다.


그나마 시대가 변하면서 유교적 색채는 옅어지고 개인주의가 강화되면서, 공동체보다는 ‘나 자신’을 중시하는 분위기가 형성되었기에, 그동안 감춰져 있던 이런 인간 군상의 민낯이 드러나게 된 것 같다.


덕분에 예전에는 소시오패스와 엮였던 많은 이들이 그들의 성격적 결함이 아닌 '자신의 무능함'을 더 크게 자책했던 것에 반해, 이제는 그들의 특성 때문이라는 것을 인지하는 경우가 많아졌다는 게 나마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소시오패스를 설명하는 모든 글에서 공통적으로 이야기하는 것이 있다. 혹시라도 사회에서 그들과 엮인다면 싸우려고 하지 말고, 이기려고도 하지 말고, 반박하려고도 하지 말고 그냥 도망치라는 것이다.


그들은 감정이 없고, 오로지 나 자신만이 중요한 부류이기에 그들이 어떤 문제에서 벗어나려고 할 때, 도덕적인 방법보다는 거짓말을 하거나, 정상인의 동정심을 교묘히 이용하면서 상대방에게 책임을 전가한다고 한다. 그리고 대부분의 정상인들은 이런 상황에서 이성과 자아를 잃고, 그들에게 종속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무조건 그들로부터 도망치라고 하는 것이다.


주위에 소시오패스가 꼭 한 명씩은 있다고 하나, 나는 제대로 된 그런 류의 인간을 경험해 본 적이 없다. 그들이 어떻게 사람을 유혹하고 조종하고, 이용하는지는 영화나 책으로 간접 경험만 했을 뿐이다.


...


'더 크라이'에는 소시오패스인 '앨리스터'가 나온다. 그는 로맨틱하고, 매력적이고, 능력까지 있는 완벽한 남성이다. 그리고 그의 전 아내 '알렉산드라'와 현 아내인 '조애나'가 나온다. 두 여인 모두 똑똑하고, 매력적이며, 자신감이 있는 여성이다. 그를 만나기 전까지는.


책은 앨리스터와 조애나의 아들, '노아' 그들의 어이없는 실수로 죽으면서 이야기가 시작된다. 정치인을 꿈꾸던 앨리스터는 아들의 죽음이 그들의 고의가 아닌 실수였음에도, 자신의 인생에 오점이 될 수 있는 이 상황을 용납하지 못한다.


그는 자수하자는 조애나를 집요하고 교묘하게 설득하면서, 아들의 죽음에 대한 책임이 그녀에게 있다는 죄책감을 입힌다. 그는 그녀를 점점 더 나락으로 떨어트린 후, 이 모든 사건을 거짓말로 위장해야 한다며 그녀를 종용한다. 그리고 이미 자아를 잃어버린 그녀는 그가 시키는 대로 따르게 된다.


그는 우울증에 빠진 조애나에게 우울증 약을 먹이면서, 그녀가 언론 앞에서 해야 할 말, 해야 할 표정, 해야 할 행동을 알려준다. 그녀는 점점 더 나락으로 빠져든다.


우울에 빠져드는 조애나와는 반대로 앨리스터는 죽은 노아를 토로피 삼아, 자신이 더욱 유명해질 수 있는 TV쇼에 나갈 계획을 짜며, 조애나에게도 같이 나가야 한다고 요구한다.


그는 자신의 감정을 꾸밀 줄 알고, 또 남의 감정을 조종할 줄 안다. 책을 읽으면 읽을수록 앨리스터의 교활함에 눈이 찌푸려진다. 그는 가족이건, 아들이건, 설령 아들의 죽음일지라도, 자신에게 도움이 되는 것이 있다면 그게 무엇이든 간에 자신의 트로피로 이용을 할 수 있는 인간인 것이다.


P197

그는 노트북 컴퓨터로 실종 포스터를 이리저리 고치는 일에 내내 매달려 있었다.

"얼굴을 더 키워야 할 것 같아.... 연락처는 좀 더 강조하고.... 색깔이 대체 왜 이래!"

그는 기자로부터 끊임없이 전화를 받으면서도 조금도 지치지 않고 그 이야기를 똑같이 되풀이했다. 그리고 한 시간마다 집 앞길에서 기다리는 방송 관계자들에게 새로운 정보를 주었다. 참 대단하다.



초반에는 나도, 앨리스터의 행동이나 말이 너무나 미미하고, 희미하기에 그에게 묘하게 공감이 갔다. 그러나 책을 읽으면 읽을수록 그가 얼마나 교묘하고 교활한지를 점차 깨닫게 된다.


아마도 그와 함께 생활하고 있는 사람이 그의 의도를 깨닫게 될 때는 이미 되돌리기가 힘든 상황일 것이다. 왜냐하면 그가 쳐 놓은 덫에 걸려서 그와 같은 동조자가 되어 있거나, 아니면 그의 끝없는 거짓말에 무엇이 사실이고 거짓인지를 구분할 수 없는 자아상실 상태에 도달해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 책을 정의하는 핵심적인 문장은 책의 마지막 부분, 조애나의 대사에서 나온다.


P402

"이제는 괴롭지 않아요." 조애나가 말했다.

상담사는 믿지 않았다. "어째서죠?"

"<안나 카레니나> 읽어보셨나요?" 조애나가 물었다.

"아뇨."

"주제가 이거예요. 다른 사람의 고통 위에 너의 행복을 세울 수는 없다."

상담사는 계속 말하라는 뜻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알렉산드라하고 필이 한 달 전에 결혼했어요. 클로이가 들러리를 섰죠. 인터넷에 올라온 사진을 봤어요."

그녀는 다시 고개를 끄덕였다.

조애나의 얼굴에 환한 미소가 번졌다. "그들은 이제 행복해요!"

상담사는 혼란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그게 무슨 뜻이죠?"


"그들의 행복 위에 제 삶을 세울 수 있다는 말이에요."



결국 이 책은 소시오패스인 앨리스터를 이용해 '인간으로 태어난 이상, 다른 사람의 고통을 이용해 나의 행복을 세울 수 없다.'는 아주 고전적인 철학을 표현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다시 말해, 남의 고통을 이용해 만든 성은 아무리 견고해 보일지라도 결국에는 무너지는 연약한 모래성인 것이다.


...


`더 크라이`는 살인사건이나 추리사건을 보여주는 책이 아니다. 처음부터 끝까지 소시오패스의 행동양식을 묘사하며, 주위 사람들이 어떻게 그에게 동화되어 가는지, 그들이 어떻게 자신을 잃고 멍청이가 되는지, 그리고 아무리 애를 써도 그들로부터 감정적으로 벗어나는 것이 얼마나 힘든지를 묘사한다.


소시오패스나 나르시시스트의 행동약식과 그 옆에 있는 자들의 심리상태가 궁금한 사람들에게 이 책을 추천한다. 그들의 심리를 읽는 것만으로 충분히 흥미진진하고, 또 그들을 파악하는데 많은 도움이 될 것이다.



앨리스터로부터 해방된 알렉산드라와 조애나의 영원한 행복을 기원한다. 그리고 우리 모두가 그런 인간을 처음부터 알아볼 수 있는 지혜의 눈을 가질 수 있기를 기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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