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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랑벽의 끝, 결혼 (29)

'연지곤지 찍고, 드디어 결혼♡'

by 한나Kim

열심히 현실을 살다 보니 어느덧 9월이 되었다. 요하네스는 결혼하기 3주 전쯤 한국에 들어왔고, 그때 처음으로 아빠를 만났다. 아빠 말로는 그가 독일에 있는 동안, 혹시라도 헤어질 수 있으니 결혼 전까지는 굳이 만나고 싶지 않았다고 하셨다. 아이고 고리타분하다 ㅎㅎ


요하네스가 먼저 들어왔고, 그 후 각자 스케줄에 맞춰 그의 동생들과 누나 가족, 어머니, 아버지, 그리고 그의 친구들이 차례로 입국했다. 총 14명이었다.


나는 내 나름대로 이런저런 준비를 하느라 바빴고, 엄마 아빠도 멀리서 오는 귀한 손님을 대접하기 위해 바빴다. 부모님은 딸이 먼 곳으로 시집을 가는 것이 마음에 쓰였는지, 독일 친지들을 위해 20인승 미니버스를 예약하고, <안동-경주-양양 3박 4일 투어>를 준비했다.

다 같이 여행을 하면서, 엄마 아빠는 비록 독일 친지들과 대화는 못했지만, 늘 활짝 웃는 얼굴로 버스 맨 앞자리에 앉아서 그들을 성심성의껏 환대했다. 그런 부모님을 보고 있자니, 뭐라 형용할 수 없는 감정이 올라왔다. 슬프기도 하고, 안타깝기도 하고, 고맙기도 하고, 미안하기도 하고..


3박 4일의 여행은 정말 좋았다. 내 가족이 될 사람들에게 보여주는 한국이라니. 나에게 이처럼 즐거운 경험이 또 있을까. 그들에게는 그때의 기억이 꽤나 강렬했는지, 시부모님 댁에는 여전히 한국 여행과 전통혼례 사진이 붙어 있다. 벽에 붙어 있는 많은 사진 중 한국 사진이 약 60프로는 되는 듯하다.


안동 하회마을에서 느껴지는 고즈넉한 한국의 미, 경주에서만 볼 수 있는 찬란한 문화유적, 건강하고 맛있는 음식, 눈이 시원해지는 동해 바다와 설악산. 모든 것이 좋았다. 그렇지만 독일인들에게 가장 좋았던 것은 양양의 솔비치가 아니었나 싶다. 이게 무슨 소리냐 싶겠지만 사실이다.


여행의 마지막 밤을 솔비치에서 마무리했는데, 다들 콘도의 럭셔리(?)함에 눈이 휘둥그레 해졌다. 그중 몇 명은 나에게 다가와 "내 평생 이렇게 좋은 곳에서 자 본 적이 처음이야"라는 이야기를 하며 포옹을 해주기도 했다.


이 무슨 일이고? ㅇ_ㅇ


알고 보니 각 방마다 룸가격 58만 원이라고 적혀 있는 것을 보고 그들이 럭셔리 호텔이라고 오해를 한 것이다;; 도대체 아무도 내지 않는, 그 쌩 가격은 왜 적혀있는 것인지. 덕분에 요하네스가 한국의 부잣집 외동딸에게 장가를 간다는 헛소문도 잠깐 돌았더랬다


3박 4일 투어랑 서울을 구경하는 것도 다 재미있었으나, 당황스러운 경험도 있었다.


요하네스가 독일 친지 14명에게 그들이 쓸 원화를 내 돈으로 빌려주고, 그들이 독일로 돌아간 후 유로로 변경하여 자기 계좌로 받자고 하는 것이다.


'아니, 돈은 내 걸 쓰고, 받는 건 왜 니 계좌로?' 하는 마음이 들긴 했으나, 이제 남편이 될 터이니.. 별 말없이 14명 모두에게 그들이 필요한 만큼의 원화를 빌려줬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그들이 독일에 돌아간 후, 단 한 달 만에 유로 가치가 폭등을 한 것이 아닌가. 내가 빌려줄 때는 1유로당 1370원 정도였는데, 한 달 뒤에 1580원으로 200원이나 대폭등


이런 난감한 상황에, 요하네스가 환율 차이가 너무 심하니, 그냥 현재의 환율로 받자고 하는 것이다. 속으로는 미친 거 아냐? 싶었지만ㅠ 그래, 멀리서 와줬으니까.. 좋은 게 좋은 거다 생각하며 그의 말대로 해줬다. 하여 나는 환율 차이로 250만 원 이상의 손해를 본다. 하아..


...


이미 결혼식 전부터 다양한 이벤트를 진행하며 정말 시간이 어떻게 갔는지 모르겠다. 쉬어야 할 결혼 전날까지 독일 가족들이랑 홍대에도 가고, 명동에도 가면서 거의 전문 가이드 생활을 했었다. 그나마 이런 경험이 많았기에 다행이다 싶다. 안 그랬음 결혼 전에 아마 실신했을 듯ㅋ


그렇게 바쁘게 지내다 보니 결혼하기 딱 이틀 전이 되었다. 회사에서 열심히 일을 하고 있는데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울리네?


"여보세요?"

"김한나 씨 되십니까?"

"네, 누구신가요?"

"여기 구청입니다. 지금 요하네스 씨가 혼인신고서를 작성하러 오셨는데, 결혼하는 거 맞으시죠?"

"헉"


이건 또 무슨 일이래? ㅇ_ㅇ


그렇다. 요하네스가 자기 혼자 구청에 혼인신고를 하러 간 것이다. 나한테 한 마디 언급도 없이 말이다. 너무 당황스러워서, 그 짧은 순간에 아니라고 말할 뻔했음.


그렇게 나는 결혼식 이틀 전에 그와 혼인신고도 해버린다. 허허허허허 실성한 웃음

...


3년 같았던 3주가 지난 후, 드디어 결혼식 당일이 되었다.


근데 혹시 기억하시나요? 2011년 여름이 100년 만에 찾아온 물난리였다는 거? 그때 서울이 온통 물바다가 됐었던 거? 올림픽대로도, 대치역도, 방배역도, 교대역도, 내방역도, 사당역도 물에 잠겼던 거.. 아마 사진 보면 기억하실 겁니다 ㅠ


2011년 여름 사진 / 출처: 네이버

그렇다. 내가 결혼한 2011년 9월은, 7월부터 그치지 않고 계속 내리는 비로 여기저기서 곤욕을 치르고 있을 때였다.


전통혼례는 실외에서 하기에 그날도 비가 오면 어쩌나 걱정이 되었으나, 다행히 하느님이 보우하사, 우리가 결혼한 당일, 우리가 결혼한 딱 3시간 동안에 모든 구름이 걷히고 해가 쨍쨍하게 떠올랐다. 나는 지금도 그것을 기적이라 생각한!


이렇게 우리는 비가 끊임없이 왔던 해에, 맑은 태양과 함께 많은 이들의 축하를 받으며 무사히 결혼식을 마칠 수 있었다. 멕시코에서 만난 인연을 시작으로, 결국 결혼에 골인해 인생 제2막을 연 것이다.



지금 우리가 해피엔딩으로 살고 있냐고 누군가가 묻는다면, 글쎄 그렇다고는 100프로 말을 못 하겠다. 그렇다고 새드엔딩이냐 묻는다면, 그것도 잘 모르겠다. 어떨 때는 해피하고, 어떨 때는 새드 하니까. 모두의 삶이 그러하듯이.


잘 살았는지의 여부는 결국 인생의 마지막 순간이 되어서야 알 수 있지 않을까. 때문에 요하네스와 나는 지금의 우리 모습을 평가하기보다는, 그저 주어진 현재에 집중하며 사는 듯하다.


결혼 생활을 하면서 한 가지 분명한 것은, 남편이 미치도록 미울 때, 혹은 미치도록 좋을 때, 아니면 지나가는 행인이랑 비슷할 정도로 데면데면할 때가 있는데, 그럴 때에는 그냥 그런가 보다 하고 그 감정에 매몰되지 않는 지혜가 필요한 것 같다. 그렇게 무덤덤하게 살다 보면 어느덧 결혼 50주년 기념일이 오지 않을까.


지금까지도 그랬지만 앞으로도, 요하네스가 옆에 있는 듯 없는 듯, 심심하지만 또 평안하게, 가끔은 손톱을 드러내고 사납게, 그렇게 물처럼 소금처럼 때로는 고춧가루처럼 살아갈 것이다. 우리 모두가 그러하듯 말이다.



- The End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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