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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나Kim Oct 11. 2021

방랑 벽의 끝, 결혼 (11)

'Would like to be my girlfriend?'

싱가포르에서 유쾌하고 편안했던 몇 일간의 만남 후 그는 독일로 돌아갔다. 그가 좋은 사람이란 건 알았지만, 나는 그저 싱가포르에 놀러 온 친구(그)에게 여기저기 볼만한 곳을 소개하는 가이드 정도의 역할이었기에, 다시 말하면 유혹이 전혀 없는 만남이었달까. 뭐.. 멕시코처럼 로맨틱한 해변이나 은은하게 빛나던 은하수도 없었고, 그저 여기저기 에어컨이 시원하게 나오는 지하철과 쇼핑센터뿐이었던지라, 이번에도 몇 개월 정도 이메일을 주거니 받거니 하다가 연락이 끊기겠지 하는 마음이 들었다. 그래도 내가 가장 우울했던 순간 그가 나에게 다시 나타나 좋은 추억을 선물하고 갔으니, 이걸로 충분히 고맙다는 생각을 했더랬다. 


그런데 웬일인가. 


독일에 도착한 후, 그가 나에게 전화를 걸었다. 내 핸드폰이 아닌, 내 방에 있는 유선 전화기로.. 들어는 봤는가 유선 전화기. 국제전화카드를 사서 저렴한 가격으로 마음껏 전화를 할 수 있었던 유선 전화기 말이다. 핸드폰으로 전화하면 20분밖에 못쓰지만, 유선전화기로 하면 5시간은 할 수 있었던, 그렇다. 그가 나의 유선 전화기로 연락을 한 것이다. 다시 말하자면 대화를 많이 하겠다는 의지가 있다는 뜻이다. 


"나 잘 도착했어."라는 말로 포문을 연 그는 이런저런 이야기를 했다. 나는 왜 전화를 했을까 라는 의문을 가지면서도 나름 즐겁게 대화를 이어갔다.  그러다 그가 갑자기 한마디를 했다.



"Would you like to be my girlfriend?"



...


분명 나는 그에게 호감이 있었고, 그가 좋은 사람이란 것을 알았다. 그리고 그가 어쩌면 나와 잘 통하는 소울메이트가 아닐까라는 생각까지 했더랬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저 말을 듣는 순간, 나의 고민은 또 시작되었다. 


나는 지금 싱가포르에 있는데.. 아니 서로 잘 알지도 못하는데.. 그리고 그는 독일에서 살고.. 또 나는 곧 한국으로 돌아갈 거고... 그의 여자 친구가 되면 어찌할 것이며, 남자 친구라면 또 어찌할 것인가. 말도 안 되는 상황이라 생각했다. 기쁜 마음 반, 그리고 걱정스러운 마음이 반이랄까. 


"If you want to go out with me, please come to Singapore first. Then I will think about being your girlfriend. (나랑 사귀고 싶으면 일단 싱가포르로 와. 그럼 너의 여자 친구가 될지 생각해볼게)" 


...


지금 생각해도 정말 나다운 답변이다. 이성관계에서 위험부담은 1도 가지지 않겠다는 저 철벽.. 덧붙여, 이성과 감정이 깊어지는 것에 두려움을 느끼고, 누군가를 나보다 더 사랑하게 되어 나 자신을 잃지 않을까 하는 망상까지 있었던 것 같다. 조금 더 솔직하게 말하자면, 시작도 하기 전에 차이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컸던 것 같다. -_-


나는 영원히 혼자일 거라는 극강의 우울함과 두려움을 느끼는 와중에도 나의 태도는 변함이 없었다. 내가 호감을 느끼는 그가 나를 좋다고 한다. 바로 시작하면 되겠지 라는 사람도 있겠지만 나는 다르다. 


지금부터 3년의 관찰기간이 필요하다 ㅠ_ㅠ 나도 피곤하다.. 

이놈도 결국 떠나겠지. 모두들 그러했듯이. 시작도 하기 전에 벌써부터 가슴이 아프다.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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