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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나Kim Nov 22. 2021

방랑 벽의 끝, 결혼 (13)

'손금으로 본 운명.'

리먼 브라더스 사태로 피바람이 불던 회사에서의 두 달이 무사히 지나갔다. 최종 70인 안에 든 나는 더 이상의 해고를 걱정하지 않아도 되었다.


심신이 안정되니 이제 슬슬 로버트가 싱가포르로 오는 것이 걱정되기 시작했다. -_- 일단 그와 같은 방에서 지낼 생각은 단 1%도 없었다. 근데 독일인인 그에게 이것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난감했다. 그리고 이번에 그가 싱가포르에 오면, 이제부터는 정말 가벼운 인연이 아닌, 나름 진지한 관계가 될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그 때문에 불안하기도 했다.  당시 나의 마음속은 이리도 복잡했다... ㅠ_ㅠ



어느 날 나랑 친했던 중국계 말레이시안 동료 '리친'이가 싱가포르 절(Temple)에 같이 가자고 했다. 그냥 한 번은 가보고 싶었던 곳이었기에 그녀를 따라나섰다. 그곳은 향으로 가득한 전형적인 중국 스타일의 절이었다. 대충 구경을 하다가 별거 없군 하고 나오는 길이었다. 지하철을 타기 위해 나오는 길 옆에, 간이 의자에 앉아있는 나이 지긋하신 중국계 아저씨가 보였다. 느낌이 예사롭지 않아 리친이에게 물었다.


"저 아저씨는 뭐하는 사람이야?"

"응 손금 봐주는 사람~"

"오우! 나 한 번 보고 싶어. 통역 좀 해줘."


그렇게 그에게 나의 손금을 보여주며 운명을 물었다. 그는 나의 을 쭈욱 보더니 3가지를 이야기해줬다.


1. 너 작년에 되게 운명 같은 남자가 있었지? 근데 놓쳤구나. 아쉽지만 지난 인연은 미련을 버려라.

-> 그렇다. 내가 미국에 있을 때 후광이 비치는 한 남자를 만난 적이 있다. 그분을 처음 본 날, 그에게 광채가 나고 주위가 슬로모션이 된 듯한 느낌을 받았다. 키가 큰 것도, 그렇다고 잘생긴 것도 아니었는데 왜 그랬는지 모르겠다. 뭐 별일이 있었던 것은 아니다. 그저 몇 번 만나는 동안 뭔가 인연이 예사롭지 않았음을 느꼈었기에 그 아저씨가 말하는 사람이 아마 그 사람일 것이리라 추측을 했을 뿐이다.


2. 2년 전에 잠깐 만났다가 요 근래에 다시 만나려는 남자가 있지? 좋은 인연이야. 그리고 너네 2년 전에 사귀었으면 헤어질 운명이었다. 그때 안 사귀길 잘했어.

-> 듣는 순간 내가 샤머니즘을 좋아하는 이유가 이거 아니겠습니까.라는 생각을 했다. 뭔가 불안한 순간에 불안함을 잠재우는 그들의 힘이란 -_- 어쨌든 다가오는 이 사람도 좋은 인연이니 놓치지 말라는 운명 같은 소리에 나의 마음은 뭔지 모르게 편안해졌다.


3. 너의 자궁에 문제가 있으니 한약방에 가서 "뭔가"를 먹어야 해. 이것만 먹으면 괜찮아지는데, 이거 안 먹으면 임신이 조금 힘들 수 있어.

-> 이 무슨 청천벽력 같은 소리지? 나는 리친이에게 그 뭔가가 무엇인지 물었다. 그녀는 "미안한데 이 사람은 본토 중국에서 온 사람이라 이 분이 말하는 게 뭔지 모르겠어. 그냥 매실이라는 단어가 들어가는 약인데.. 미안해. 정확히 모르겠다."


아쉽지만 이 정도의 통역도 훌륭해서 나는 그녀에게 감사함을 표했다. 그렇지만 이 찜찜함은 뭘까... 임신이 어렵다니 -_- 나는 이 불쾌함을 해소하고자 그 해 겨울, 친구 결혼식을 참석하기 위해 한국에 살짝 들어온 김에 산부인과를 방문해 검진을 받았다. 결과는 '이상 무!' 그러나 그 아저씨가 한 말이 맞기라도 한 듯, 나는 둥이를 낳기 전까지 엄청나게 많은 유산으로 고생을 했었다.


음..  과연 그 약이 무엇이었을까. 그리고 손금으로 이렇게 구체적인 것까지 진짜 알 수 있는 것일까? 지금도 늘 그것이 궁금하다.


...


시간이 빠르게 흘러 그다음 해 1월이 되었다. 이제 그는 비행기 티켓도 샀다한다.. 자 말할 시간이다. 더 이상 지체하면 더욱 큰 실망을 할 테니 서둘러야지...


"나는 너랑 같은 방에서 지낼 생각이 없어. 우리 집 근처에 네가 두 달간 살 수 있는 방을 구할게."


그의 목소리는 실망으로 가득 찼지만, 싫다고 하면 오지 말라고 할 것 같았는지 어정쩡하게 나의 의견을 받아들였다. 그다음 날, 내가 사는 곳 지하철 역 게시판에 '두 달간 방을 구합니다'라는 메모를 붙였다. 그 후 몇 명으로부터 전화를 받고, 한 곳을 구했다. 유치원생인 쌍둥이 아들들과 싱가포르로 유학 온 한국인 엄마였다.


이제 모든 것이 세팅됐다. 회사도 안정화됐고, 그의 집도 찾았고, 손금 보는 아저씨로부터 그가 인연이라는 말도 들었고 말이다. 나에게는 더 이상의 두려움도, 불안함도 남아있지 않았다.



시간은 흐른다. 아무리 괴롭고 힘들고 우울한 시간으로 가득 찬 나날들이라 해도 시간은 늘 멈춤 없이 흐른다. 흐르는 시간 속에서 정신없이 살다 보면 어느덧 괴롭던 순간도, 힘들었던 순간도 모두 지나고, 편안한 날들이 내 옆에 와있음을 뜬금없이 알아차리게 되는 것 같다.



2009년 1월에야 비로소,

이런 인생의 묘미를 문득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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