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랑 벽의 끝, 결혼 (19)
'베트남 & 라오스 나 홀로 여행.'
싱가포르에서 다니던 직장에 미련 없이 사표를 냈다. 한 직장에서 3년을 버티지 못하는 나에게 사표를 내는 건 사실 그 무엇보다 쉬운 일이었다. 경험상 '초심자의 행운'이 진짜 존재한다는 것을 아는 나로서 어디를 가든, 어떤 직업을 구하든 일은 늘 구해진다는 근자감이 있었기 때문이다. 또한 큰 변화가 있을 때, 인생에 즐거움이 온다고 믿는 사람이었기에, 어차피 나란 인간은 한 직장에서 3년 이상 다닐만한 인물도 못되었고... -_-;
한국뿐 아니라, 외국 현지에서 일을 구하면서, 공부하고 여행하는 것이 나에게는 참 쉬웠다. 어딜 가나 알바나 직업을 잘 구했기에 운이 상당히 좋았다고도 할 수 있다. 이렇게 나의 20대를 경험하고, 여행하고, 일하면서 생활을 했으니까. 그리고 내가 30대가 되자 '잡 노마드(Job Nomad: 떠돌아다니며 직업을 구하는 이)'라는 용어가 있다는 것을 알았다. 내 주위에는 한 명도 없었던 나 같은 사람이 이미 세상 어딘가에는 많았던 것이다.
...
사표를 낸 후, 싱가포르에 있는 김에, 동남아시아에서 유일하게 가보지 않았던 베트남과 라오스 여행을 계획했다. 먼저 베트남 하노이로 들어가 그곳을 여행하고 하노이 근교인 박하/사파를 여행하는 큰 틀을 짰고, 라오스는 베트남에서 여행한 후 기차를 타고 그냥 발길 닿는 곳으로 가야겠다고 마음을 먹었더랬다.
하노이는 더웠다. 6월 정도에 갔으니 당연한 거겠지만, 생각보다 더 더웠다는 느낌이 난다. 그래서 내가 좋아하는 쌀국수를 먹을 때도 꽤 괴로웠던 기억이 있다.
머물던 호스텔 근처의 골목길에서 팔던 쌀국수 집이 생각난다. 가게 안에서가 아닌, 그냥 골목길에서 팔던 후미진 곳이었지만, 나는 현지 여행의 묘미는 이런 경험에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인지라 이런 곳에서는 꼭 먹어본다. 맛은 있었지만 가격이 생각보다 비쌌다. 그리고 동네 골목에 위치해 있던 현지 식당에서 먹었던 분짜의 맛도 여전히 생생하게 기억난다. 세상에나 이렇게 맛있는 음식이 있다니. 감탄을 하면서 먹었더랬다. 그리고 그곳의 가격도 너무너무 비쌌다. -_-
희한하게 비싸구나. 분명 싸다고 들었는데... 이상하다 싶으면서도 여기저기 잘 돌아다녔다. 그러다 '하노이에 왔으면 또 하롱베이지~'라고 생각하며, 하롱베이 2박 3일 투어를 신청했다.
하롱베이는 아시아 하면 떠오르는 딱 그런 모습의 천연 자연을 느낄 수 있는 곳이었다. 묵으로 그린 그림에 나올 법한 장관이 내 눈앞에 있구나라는 느낌이 들었으니까. 하롱베이 투어는 바다 위에 흩뿌리듯 산발적으로 나와있는 돌섬들 사이로, 2박 3일간 배를 타고 다니며 섬도 구경하고, 일몰도 보고, 배에서 밥도 먹고, 잠도 자는 선상 투어이다. 모르는 20명 정도의 사람들과 같은 배에서 지정된 각자의 방에서 잠을 자고, 같이 예쁜 섬을 구경하고, 해가 질 때 즈음에는 다들 바다로 점프해서 수영도 했다.
하롱베이에서 2박 3일을 놀고먹다가 나의 이전 호스텔로 돌아왔다. 현지인 마냥 근처 호안끼엠 호수도 가고, 거기서도 비싼(?) 쌀국수를 먹고 하면서 혼자 놀다 놀다 지쳐서 다시 박하/사파 2박 3일 그룹 트레킹 투어를 신청했다.
다음 날 아침, 투어를 신청한 사람들 모두 사파로 향하는 큰 버스에 올랐다. 버스에는 많은 사람들이 있었다. 그 사람들 중에서 친해진 독일인 커플이 있었는데, 그들은 얼마 전에 결혼하고 신혼여행으로 베트남에 놀러 왔다고 했다. 남자는 은행원이고, 한번 이혼을 하고 이번이 재혼이라고 했고, 여자는 유치원 교사고 첫 결혼이라는 얘기를 했다. 나 역시 이 부부에게, 베트남이랑 라오스 여행 후, 멕시코에서 만난 독일인 남자 친구를 만나러 독일에 갈 거라는 이야기를 날렸다. 이렇게 개인적인 이야기로 시작된 인연으로, 나는 운이 좋게 2박 3일간 그들이 개인적으로 고용한 가이드와 개별 트레킹 투어를 할 수 있었다. 그들의 신혼여행을 방해하고 싶지 않다고 처음엔 거절을 했으나, 둘보다는 셋이 더 즐거울 거 같다고 같이 여행하자는 그들의 말에 선뜻 여정을 나서게 됐다.
여행을 하면서 만나는 인연은 이처럼 신기하다. 그 순간 서로 홀리듯 친해지고, 평생을 함께 한 듯 어울리며 친한 사람한테도 하기 어려운 개인적인 이야기를 아주 솔직하게 할 수 있게 만드니까. 헤어짐을 알고 있는 이 만남이, 사람들의 관계를 뭔가 더 소중하고 안타깝게 만드는 듯하다. 사실 여행의 묘미는 이처럼 강렬하게 만났다가 추억에만 남는 바로 이런 '인연'에 있다고 생각한다.
사파는 고산지대에 위치한 마을을 여행하는 투어이다. 산속에 소복이 쌓여있는, 그리고 초록 초록한 고즈넉한 마을을 보면서 걷다 보면 몸과 마음이 정화됨이 느껴진다. 하롱베이 투어보다 훨씬 좋았다. 혹시 하노이에 간다면 2박 3일 사파 트레킹 투어를 적극 추천한다. 때로는 산이 높아 약간 힘들 때도 있지만, 이른 아침 뽀얗게 내린 물안개 사이를 걸으며 그 풀냄새와 끊임없이 이어지는 초록 물결들을 보다 보면 '아, 내가 이곳에 있구나'라는, 현실에서는 좀처럼 느끼기 힘든 '나의 존재감'이 마구 샘솟는 그런 곳이기 때문이다.
하노이에서의 2주일은 나에게 파산을 선고했다. 여행하면서 현금 사용을 선호하는 나는, 대부분 그 여행에서 쓸 만큼의 현금을 가지고 간다. 그리고 지금까지 준비한 현금 이상으로 쓴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 베트남을 빼고 말이다. -_-
투어 하면 죄다 100달러가 넘었고(2009년도에 이 가격을!!!), 길가에서 파는 쌀국수조차 이리 비쌌으니... 근데 지금 생각해보니 그들이 나한테 몇 배가 넘는 가격을 받았구나 싶다. 베트남에서는 눈탱이를 조심하자. 정가가 적힌 메뉴판도 다 거짓일 수 있다 ㅠ_ㅠ
아무튼 준비한 현금은 다 써버렸고, 라오스를 여행할 시간은 얼마 안 남았기에 서둘러 라오스의 수도, 비엔티엔으로 들어가는 비행기를 탔다.
비엔티엔은 정신이 별로 없는 곳이었다. 그렇다고 '하노이처럼 살아있는 도시다'라는 생각도 들지 않았다. 뭔가 후미진 골목에 위치한 도시라는 느낌이 났다. 확실히 사회 개방을 뒤늦게 했던 나라의 느낌이 있었다.
비엔티엔의 호스텔에서 귀여운 일본인 여자아이와 눈빛이 건강하지 못했던 일본 남자아이를 만났다. 셋다 서로 특별한 계획이 없었기에, 우리는 이틀 정도 같이 여행을 하기로 했다.
남자아이는 전형적인 프리타(알바만 하면서 사는 사람)로, 사회성이 거의 없는 느낌이 났다. 그저 호스텔 방에 우두커니 있는 그를 보니 안타까워 같이 나가자는 나의 제안에 껴졌을 뿐이다. 여자아이는 대학교 1학년이라고 했고, 고등학생 때부터 아저씨들이 오는 술집에 가서 술을 따르면서 돈을 벌고, 그 돈으로 여행을 다닌다고 했다. 그리고 주위 친구들은 자신의 이런 모습을 전혀 모른다는 이야기까지 해줬더랬다.
각자 개성이 있던 셋은 비엔티엔 도시도 구경하고, 그다음 날은 메콩강 투어도 같이 했다. 메콩강에서는 큰 튜브를 타고 하류까지 둥둥 떠내려 오는 투어도 있는데, 우리는 그 투어로 결정. 각자 맥주 1병씩 끼고 메콩강에 나를 맡긴 채, 튜브 위에 앉아 마냥 떠내려가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했다. 사실 이 투어는 쌩 자연을 느낄 수 있는, 또는 투어라고 부르기엔 상당히 모자라는 투어였다ㅎ 물론 일본 남자아이는 자신의 이야기는 1도 하지 않았다. 그저 프리타라는 것 외에는.
하류까지 다 내려와 배가 고파 근처에 있는 음식점으로 들어가 밥을 먹을까 하고 있었다. 그때 저~ 멀리서 멋진 오토바이를 타고 달려오는 힙한 중년의 60대의 할아버지? 아저씨가 보였다. 허리까지 오는 긴 회색 생머리를 하나로 묶고, 레이벤 선글라스에, 회색으로 깔맞춤 한 흡사 우리나라 개량한복과 같은 옷을 입고 있는 분이었다. 일본 여자아이와 나는 "와, 뭔가 포스가 있는 사람이다. 저 사람은 분명 일본 사람일 거야. 한국에 저런 할배는 존재하지 않아."라고 얘기했고, 그 아이도 일본인 같다고 했다.
근데 웬일인가, 우리 근처에 온 그를 보니 한국인이던 것. 그분은 이런 곳에서 한국인 처자를 본 게 반가웠는지 나를 오토바이 뒤에 태워준다고 타라고 하셨다. -_-; 얼떨결에 친구들과 인사를 하고, 나는 그 할배 오토바이를 타고 여기저기를 구경하며 비엔티엔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그분은 나와 동갑인 그리고 대기업에 재직 중인 아들이 하나 있다고 하셨고, 아내랑 이혼하고 자유롭고 싶어서 라오스에 와서 간지 나게 사는 중이라고 하셨다.
비엔티엔 하면 떠오르는 것은 이 3명의 인연뿐이다. 메콩강도, 비엔티엔의 거리도 아무것도 기억이 나지 않는다. 이처럼 나에게 여행에서의 인연은 여행 자체를 풍부하게 하는 가장 핵심적인 키 중 하나 임은 분명하다.
좋은 인연으로 만든 유쾌한 추억을 뒤로한 채, 나는 루앙프라방으로 갔다. 루방프라방은 배낭여행자들의 천국 같은 곳이었다. 뭔가 평화롭고, 그냥 자체적으로 아름다움을 풍기는 도시였달까. 그리고 밤마다 열리는 야시장 또한 그동안 본 적 없는 매력이 있었다. 얼마나 예쁘고 알록달록한 수제품들이 많은지, 그 시장이 자꾸 생각이 나서 언젠가 기회가 된다면 아이들과 함께 한번 더 가려고 한다.
20대의 마지막을 장식하는 약 3주간의 배낭여행이 이렇게 끝이 났다.
...
이제 30대가 되기 전에 어서 사랑을 찾아야 하지 않겠는가. 언제까지 이렇게 철벽을 치고 방랑만 하며 살 것인가!!!
자 이제 내가 그를 보러 독일에 들어간다. 과연 그가 나의 퓨처 허즈번드(future husband)가 될 수 있을 것인지..
내 너를 관찰하러 간다.
기다려라 로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