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랑 벽의 끝, 결혼 (26)
'아지랑이처럼 피어오른 작은 믿음이 모든 불신을 거둬갔다.'
너무나 추웠던 2009년의 크리스마스는 나에게 강렬한 추억을 남겼다. 남자에 대한 불신, '연애 = 결혼'이라는 망상 -_- 그리고 나를 잃을까 싶은 두려움 등 모든 걱정거리를 그가 한 번에 날려주었기 때문이다.
솔직히 말하면, 헤어졌는데도 불구하고 나를 보러 온 그 마음이 참 좋았다. 나를 그저 Asian Fever로 좋아하는 게 아니라 인간 김한나, 또는 여자 김한나로 좋아하는구나 하는 강렬한 믿음이 드디어 -_- 느껴졌기 때문이다.
그렇다. 모태솔로는 100% 확고한 믿음, 무조건적인 사랑 등이 필요하다. 하여 그들은 정말 미친 듯이 올인하는 남자를 만나지 않는 이상, 그냥 솔로로 늙어 죽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ㅠ_ㅠ 현재 모태솔로녀를 좋아하고 있는가? 그런데 그녀가 틈을 주지 않아 방법을 모르겠는가? 내 글을 참고하길 바란다.
-_-
그가 한국을 방문했을 때 엄마가 로버트를 만났다. 참고로 아빠는 하나뿐인 무남독녀 외동딸이 외국인이랑 사귀는 것을 스스로 허용하지 못하겠다며 그를 만나지 않았다. 근데 내가 사귄다 하면 말리지는 않겠다 하셨다. -_-
우리 부모님은 딸이 제일 예쁜 시기에, 남자친구는 한 명도 사귀지 않고, 선머슴처럼 네팔 히말라야에 오른다고 한 달을 나가고, 필리핀 영어 연수 간다고 한 달간 친구들 끌고 가서 살다 오고, 호주 배낭여행 가서 40일을 떠돌다가 스카이다이빙, 스쿠버다이빙을 하고 오고, 일본에 교환학생으로 1년가 갔다가 런던에 어학연수 하러 간다고 바로 떠나고, 갔다 와서 한국에서 일을 잘하는가 싶더니, 갑자기 미국에 일하러 간다고 갔다가, 돌아오자마자 다시 싱가포르로 일하러 간다고 하고... 멈춤 없이 방랑만 하는 모습에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그랬던 딸이 드디어 남자친구를 데려온 것이다. 파란 눈의 남자 친구를 말이다. 사실 아빠도 딸내미가 이 남자를 놓치면 평생 독신으로 살까 두려워 '네가 사귀는 것은 반대하지 않겠다.' 했겠지. 반대했다가 여차하면 딸이 모태솔로로 늙어 죽을지도 모르니..
-_-
그를 만난 후 엄마가 말했다.
"외국인이라 걱정을 많이 했는데, 진실된 사람이네. 저런 사람이면 난 찬성!"
...
그렇게 성공적인 크리스마스 방문 후 그는 아주 만족스럽고 평화로운 모습으로 독일로 돌아갔다. 그리고 두 달 후, 2010년 2월. 그는 한국 프로젝트에 합격했다며 의기양양한 모습으로 다시 한국에 돌아왔다.
이제부터 1년간 우리의 참 연애가 시작된다. 내 고국, 내가 사랑하는 한국에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