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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나Kim Jul 22. 2024

게으른 자유 부인 납시오~

'게으름은 부끄러움이 아니다. 단지 성향일 뿐.'

  일주일 전, 남편이 둥이만 데리고 독일에 먼저 들어갔기에 나는 지금 룰루랄라 자유부인인 상태다. 뭐 애들과 남편이 있다한들 자유롭지 못한 적이 한 번도 없었지만, 그래도 지금 오롯이 '나 혼자'라는 이 홀가분함이 너무나 소중하다 ㅎㅎㅎ


 2022년부터, 남편은 아이들을 데리고 2주 먼저 독일에 들어가며 나에게 약 보름간의 자유를 선사했다. 첫 해에는 복작거리던 아이들이 없으니 뭔가 죄책감이 느껴지며, 아이들에게 화냈던 일, 남편에게 버럭 했던 일 등의 장면이 떠오르면서 소중한 나만의 시간을 많이 즐기지 못했었다. 작년에는 죄책감은 없어졌으나, 아이들이 보고 싶어 전화를 자주 하면서 그냥 슬렁슬렁 놀았던 같다.


  그러나 혼자만의 시간에 너무나 익숙해진 올해, 죄책감이 무엇이더냐. 어찌하면 이 소중한 시간을 더 잘 보낼 수 있을까 궁리하며 신나게 지내는 중이다 :)


  지난 일주일 간: 주중에 한번, 주말에 한번 친구들을 집으로 불러 신나게 놀았고, 금요일 밤에는 삼성동에서 베프들을 만나 밤늦게까지 한잔 하면서 놀았다. 오전에는 동네 엄마들이랑 만나 커피도 마시고, 점심도 먹으면서 이래저래 눈코 뜰 새 없이 바쁘게 7일을 보냈다. 여기서 중요한 건, 나에게는 아직 8일간의 자유가 더 있다는 . 우화화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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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필리핀에서 돌아온 후 많은 일이 있었다. 쓸 글이 태산인데... 언제 쓸랑가. 뭐 늘 그러하듯, 나의 게으름을 핑계 삼아 어물쩍 넘어가지 않을까 싶다.


  꼭 써야 할 글이 3개가 있는데: 어린이 사물놀이 여정이 어떻게 진행이 되고 있는지, 사물놀이 동아리를 이끌다가 스트레스를 너무 받아서 다시 안검하수 현상이 나타난 것도(다행히 지금은 회복되었다), 또 박진여 전생연구소에 방문해서 나의 전생 이야기를 들은 것까지ㅎㅎ


  이 세 가지는 꼭 쓰려고 노력하겠다 -_-


.........................................



  예전부터 현재까지 한국인의 습성 중 아주 강하게 느껴지는 부분이 있다. 아주 어릴 때부터 무한경쟁 속에서 늘 치열하게 살았기 때문에, 쉴 때도 쉬는 게 아닌 모습으로 살아가고 있다는 점이다.


  그래서인지 한국인들 대부분은 게으름을 부끄럽게 생각한다는 것, 그리고 빈둥거릴 때 죄책감을 느낀다는 것이다. 이런 민족이 세상 어디에 또 있을까 싶다. 쉴 때조차 멍 때리기보다는 뭔가 생산적으로 열심히 놀아야 하는 민족.


  게으름은 부끄러운 것이 아닌, 그저 성향일 뿐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게으름 속에서 창의성이 나오고, 빈둥거림 안에서 즐거움과 열정이 나온다는 생각을 한다. 월화수목금 늘 사람들을 만난 후, 토요일에 하루종일 침대와 한 몸이 되어서 오후 1시까지 누워있는 나를 로버트는 단 한 번도 뭐라 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이런 나의 게으름과 빈둥거림이 남들과는 다른 면모의 열정을 준다는 것을 그는 알기 때문이다.


...........


1.

  지난 금요일 친구들과 삼성동에서 만나기 전, 요즘 열심히 활동하고 있는 모임에 먼저 참여를 했다. 그 모임 대표 선생님께서 나를 보고 물었다.


  "한나Kim님은 요즘 어디에 시간을 가장 많이 쓰시나요? 저는 이 모임에 오기 전에 이미 두 개의 모임에 참석을 하고 와서 상당히 피곤하네요."


  요즘 관심을 갖고 노력하는 일이 뭐가 있을까? 아무리 생각해 봐도 딱히 생산적으로 하고 있는 취미나 일거리가 없다. 그저, 내 인생의 모토답게 즐거움을 위해 친구들을 만나고, 주 1회 사물놀이 모임에 봉사하는 정도랄까... 1인 기업으로 하고 있는 일도 있지만, 루틴의 한 부분일 뿐이지 그다지 열심히 하는 것도 아니고..


  "글쎄요 저는 그냥 아무 일도 안 하고 살아요~ 딱히 하는 게 없는데요 ㅎㅎ"

  

내 답변을 듣고, 선생님이 푸하하 하고 웃으셨다.



2.

  지난 토요일, 세상에서 가장 열심히 살아왔던, 그리고 현재도 인생을 열정적으로 보내고 있는 두 여인을 집으로 초대했더랬다. 한 명은 S전자에서 갤럭시 PM으로 활동했던 언니이고, 다른 한 명은 미국에서 대학을 졸업하고 그곳에서 회사를 다니다가, 그 회사가 한국 지사를 설립하며 한국 주재원으로 가지 않을래 하는 제안을 받고 귀국하게 된 언니다. 그렇다 둘 다 초 엘리트인 것이다.


  이런 친구들과의 대화는 늘 즐겁다. 사는 이야기, 아이들 교육 이야기 등 심오하면서도 다양한 주제를 나눌 수 있기 때문이다. 대화 중 S전자에서 근무했던 언니가 이런 이야기를 했다.


  "얼마 전에 내 친구가 늦은 나이인데 결혼을 했어. 그 친구 결혼식을 갔다가 아주 오랜만에 예전 친구를 만나서, 그 친구한테 너 요즘 어떻게 지내니? 물었는데, 친구의 답변이 : 응~ 그냥 서울숲에 가고 싶으면 혼자 지하철 타고 가서 구경하고, 근처 맛집에 가서 혼자 먹고 하면서 즐겁게 지내고 있어!라고 대답을 하는 거야. 근데 생각해 봤는데, 나는 내가 설사 그렇게 지낸다 해도 그런 대답을 못할 거 같아. 뭔가 생산적인 일을 한다고 하거나, 아님 뭔가 바쁘게 하는 일이 많다는 이야기 했을 거 같아.. "


  주재원으로 한국에 오게 된 언니도 거들었다.


  "맞아~ 나도 그럴 거 같아. 뭔가 빈둥거리는 느낌이 부끄러워. 나도 일 그만두고 쉬는 동안 쉬는 게 아니었잖아. 쉬려고 그만뒀는데, 푹 쉬지 않고, 그 짧은 1년 동안 열심히 공부해서 자격증도 따고.. 그냥 쉬면 뭔가 죄책감이 들어. 지금 다니는 회사도 그만두고 싶은데, 막상 그만둔다 해도 쉬지 않고 또 다른 일을 할게 뻔해. 너무 일하는 거에 길들여져서 그런지 생산적인 일을 하지 않으면 불안해."



3.

   작년 8월, 프랑크푸르트에서 한국으로 들어올 때, 하필 큰 태풍이 한국을 강타한다는 날과 맞물려, 비행기 수속을 다 마친 후, 승차하기 바로 30분 전에 비행기가 취소됐었다. 이 상황을 그곳 매니저가 독일어와 영어로 설명을 했으나 못 알아듣는 한국분들이 많았다. 그때 한국어를 기똥차게 잘하는 남편이 앞에 나가서 한국어로 통역을 해줬었다는 ㅎㅎㅎ


  나도 말을 못 알아듣는 분들에게 어떻게 호텔 바우처 쿠폰을 받는지, 호텔 장소는 어떻게 알 수 있는지, 내일 비행기는 몇 시에 타는지 등을 알려드리고 있었는데, 한 초등학교 2~3학년 아이와 같이 있던 엄마가 나에게 다가와서 물었다.


  "프랑크푸르트에서 방문할 곳이 있나요? 좋은 박물관이나 관광지 있으면 좀 알려주세요~ 이것도 기회인데 짧은 시간이라도 프랑크푸르트를 관광하고 싶어요!"


  그때 나의 대답은 이러하다.


  "아 우리 한국인들 노는 것도 너무 열심히 해서 문제예요. 쉬세요. 쉴 때는 쉬어야죠. 이 짧은 시간이 아깝다고 또 관광하고 그러면 안 됩니다. 이미 달리고 오셨잖아요. 오늘은 호텔에 가셔서 맛있는 거 드시고 쉬세요"


  주위에 있던 사람들이 다 같이 웃음을 터트렸다. 



4.

  저녁에 걷기를 하려고 주위 공원에 가면, 회사를 마치고 온 젊은이들이 뛰고 있다. 어르신도 뛰고 있다. 학생도 뛰고 있다. 혼자 또는  5~10명씩 그룹으로 다. 회사에서, 그리고 학교에서 얼마나 치열하게 살고 왔을까. 지금은 내 몸을 위해 다시 열심히 뛰는 중이다.


  러닝 하는 분들이 끊임없이 내 옆을 지나간다.


.........


  우리는 열심히 사는 것에 중독되어 있다. 그래서 운동도 열심히, 공부도 열심히, 일도 열심히, 그리고 노는 것도 열심히. 때문에 짧은 시간 안에 가장 효율적으로 여행하는 걸 선호하지. 그래서 놀고 온 뒤 더 피곤해. 근데 괜찮아. 열심히 했으니까.


  쉬는 것에 죄책감을 느낀다. 빈둥거림이 부끄럽다고 말한다. 가만히 있으면 뒤쳐지는 느낌이 든다. 남들보다 뒤처지면 안 되지. 그래 더 열심히 해야겠어.


.......



  이야기를 어떻게 끝내야 할까? 그렇다. 게으름이 전혀 부끄럽지 않은 잉여인간이 본 한국 사회에 대한 고찰. 오늘의 이야기는 이렇게 마친다.



  이제 빈둥거리러 가야지~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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