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도, 사람도 청정한 나라'
뉴질랜드에 오기 전에 'New Zealand'하면 생각나는 이미지는 단순했다. 반지의 제왕, 목축이 발달한 나라, 키위, 마누카 꿀, 맨발로 다니는 문화, 마오리 족 등이다.
이 정도만 알고 이 나라에 도착을 했는데, 공항에서 느낀 첫인상은 "사람들이 따뜻하다."였다. 여러 나라를 다녀봤는데, 공항 직원들이 이리 친절한 경우가 거의 처음이라 굉장히 신선했다.
예를 들면, 우리는 한국에서 이미 비자를 받고 왔기에 입국 심사대로 가서 줄을 서서 한참 기다린 후 직원을 만났다. 그런데 직원이 비자를 받았어도 심사대 오기 전에 입국 양식을 다시 한번 작성을 해야 한다고 하며, 심사대에서 직접 나와 우리를 작성하는 곳으로 안내를 해준 후, 다 작성하면 줄을 서지 말고 바로 자기한테 오라는 말을 하고 돌아갔다. 솔직히 이렇게 하는 게 진심이 없으면 하기 힘든 행동이 아닌가 싶다.
다른 경험을 이야기해 보자면, 큰 매장에서 내가 찾는 물건이 있는지 직원에게 물어봤는데, 한참 재고를 찾아본 후 이 매장에는 없다 말하면서 다른 매장에 있는지 봐줄게 하고 스마트폰을 켜서 찾아봐줬다. 그런데 다른 매장에도 없으니 이번에는 같은 물건이 있을 법한 다른 회사를 알려주는 것이다. 이처럼 뭔가 진심이 없다면 나오지 않을 행동을 하는 사람들이 어디에든 있는 것 같다. 은근 감동이다.
두 번째로는 "처음 만난 사람인데도 나름 심도 있는 대화를 하는 문화가 있다."는 것이다.
이곳은 작은 슈퍼를 가도 점원이 계산을 하면서 소소한 이야기를 주고받는다. 질문도 오늘 어때? 가 아닌, 이번 주에 뭐 하니부터, 너 어디에서 왔니, 이게 내가 가장 좋아하는 맛이야 등등, 꽤 구체적이다. small talk를 잘 못하는 나인지라 어색하기는 하지만, 처음 보는 사람들끼리도 이리 따뜻하게 이야기할 수 있구나 싶은 생각이 들며, 여기 있는 동안 나도 한번 배워봐야지 싶다.
또 그래서인지 몰라도, 처음 본 사이라도 서로가 개인적인 질문도 자주 하는 것 같다. 선을 넘는다 싶은 질문도 하는 것 같은데, 신기한 게 그런 질문을 해도 아무 경계 없이 자기 이야기를 솔직하게 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느낌이 든다.
예를 들면 남편이 우리 집주인을 처음 만났을 때, 내가 보기엔 조금 불편한 질문을 많이 했는데, 음.. 나라면 얼버무렸을 것 같은 질문에도 집주인은 아무렇지 않게 다 이야기를 해줬다.
그리고 근처 테니스장이 어떤가 구경을 갔었는데 거기서 테니스를 치고 있는 고등학생을 만나 이런저런 질문을 했는데, 그 아이도 뭐 이미 몇 번 만난 사람인 것 마냥 술술 자기 이야기를 다 해줬다.
위 내용을 한 문장으로 축약해 보자면 "서로가 서로에게 경계가 없다. 또는 서로에게 믿음이 있다"라고 할 수 있겠다. 왜 그럴까 생각을 해봤는데, 뉴질랜드 자체가 너무나 평화로운 나라이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지금까지 전쟁을 한 경험도 없고, 또 다른 나라들이랑 워낙 지리적으로 멀기에 세계정세가 어찌 됐든, 예를 들면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 났든 말든, 큰 위험도 없고 말이다.
뭔가 사람들이 강한 압박이나 경쟁을 해본 적이 없기에 대부분 따뜻하고 순둥순둥하고 또 서로에게 경계가 없는 게 아닌가 싶다. 반면, 이런 여건 덕분인지 사람들이 뭔가 열심히 일은 하지 않는 분위기다. 그냥 설렁설렁하면서 편안하게 사는 분위기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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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사는 집으로 이사를 오기 전까지, 남편이 믿고 있는 티베트 불교 센터에서 머물렀었다. 넓은 거실과 부엌, 방 6개에 화장실 2개 그리고 정원이 있는 2층 집이었기에 한 달 동안 편안하게 지낼 수 있었다.
그 동네에 살면서 느꼈던 세 번째 인상은 "애완견(개)이랑 함께한 사람들이 아주 적다"는 것이다. 일단 내가 방문했던 서양이란 나라는 늘 사람 반, 애완견 반인 경우가 대부분이었는데, 그곳은 동네를 아무리 돌아다녀도 개를 산책시키는 사람을 본 적이 없다.
이게 나름 인상이 깊었기에, 매주 목요일 사람들끼리 모여서 저녁을 먹는 날, 뉴질랜드 친구들에게 물어봤다.
"뉴질랜드는 개를 키우는 사람이 별로 없나 봐. 버스를 탈 때나, 동네를 산책할 때나 개랑 함께한 사람들을 거의 본 적이 없어. 내가 느끼기엔 소통이 잘 되는 사회라서 개를 기르는 사람이 많지 않은 거 같아. 원래 고립된 사회일수록 개를 키우는 사람들이 많잖아. 예를 들면 베를린이나 뉴욕은 노숙자도 다 개를 키우는 것처럼."
그러자 현지인들이 여기도 개가 많다고 강하게 부정을 하며 센터가 있는 동네에만 개가 없다는 식으로 이야기를 했다. 그러다가 자기들도 궁금했는지 각 인구별 애완견의 수를 구글로 찾아보았는데, 어머나. 뉴질랜드는 정말 개를 많이 안 키우는 나라였던 것이다. ㅎㅎ
나는 이 모두가 한 축이라고 생각한다. 따뜻하고 서로 소통이 잘 되는 사람들, 고립되지 않은 열린 사회.
하나 더 신기한 것은 뉴질랜드의 공식언어가 영어와 마오리어라는 것이다. 솔직히 원주민의 말을 공식언어로 택한 나라가 뉴질랜드 말고 어디에 있겠는가. 미국이나 남미 등 원주민의 언어가 모두 사장된 것만 보더라도 가히 뉴질랜드 문화가 어떤지 추측이 가능하다 본다.
덕분에 둥이는 학교에서 매일매일 마오리어로 된 노래를 배우고 있다. 담임 선생님이 뭔 뜻인지 몰라도 무조건 외우라고 했단다. 내가 듣기에 이 언어가 발음이 센 편이라 교가를 부르는데, 이건 뭐.. 교가인척 하면서 나한테 욕을 하는 건 아닌가 싶기도 하고..
"니네 지금 엄마한테 뻐큐라 했뉘? -_-"
아무튼 이 글의 결론은 뉴질랜드는 참 따뜻한 나라라는 것이다. 극강의 사회주의 시스템과 모든 대륙에서 멀리 떨어진 탓에 발전이 없고 느리다고 느끼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그 덕분에 여유와 친절 그리고 자연스러운 대화가 가능한 것이 아닐까.
그래서 이곳이 꽤 마음에 든다. 거기다 좋은 공기와 어딜 가나 입이 떡 벌어지는 자연환경이라는 덤까지 있으니 이보다 더 좋을 수 있으랴 :)
오늘의 이야기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