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산 공원과 시얼샤 로넌

이래서 그녀가 좋다.

by HannaH

저번 주에 알고리즘이 보여준 영상이다. 그 나라에선 꽤 화제가 된 영상이다.


https://www.youtube.com/shorts/hX4oZXjim1U

위 토크쇼(The Graham Norton Show, BBC)의 대화 내용을 옮기자면:


에디: 영화 촬영장에서 배운 게 있어요. 누가 공격하면, 휴대폰으로 그 사람 목을 칠 수 있어요.

폴: 누가 그 순간에 휴대폰을 찾을 생각을 해요?

시얼샤: That's what girls have to think about all the time. Am I right, ladies?

(여자들은 항상 그 생각을 해야만 해요. 그렇지 않나요, 여성분들?)


이 영상이 다른 쇼나 소셜 미디어에서 많이 언급되고, 인터뷰에서도 관련 질문이 나왔던 것 같다.

시얼샤가 이런 반응에 대해 인터뷰에서 답변한 내용이다:

https://www.youtube.com/shorts/ZRXEqgJXNt0

시얼샤의 답변을 간단히 옮기자면:

"반응이 대단했어요. 그런 반응을 생각하고 그런 건 아니에요. 그렇지만 정말 많은 분들이 남녀를 불문하고 저에게 연락을 주었어요. 부탁드리고 싶은 건, 전체적인 상황을 봐주세요.... 폴은 제 친한 친구고, 전에 그런 이야기를 했을 때 100% 이해해 주었어요. Graham show는 전 국민이 보는 프로그램인데, 그런 쇼에서 그런 이야기를 하는 순간이 있었다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두 가지 생각이 들었다.

1. 아, 무슨 일이 일어날 때 휴대폰이 중요한 무기가 될 수 있구나.


2. 남산 공원의 추억이 떠올랐다. 아마도 10년도 전인 것 같다.


친구와 남산 공원에서 걷고 있었다.

매우 행복했다. 왜냐면 공원이 너무 잘 정비되어 있었고 걷기에 좋았다. 우리나라에 이런 예쁜 공원이 도심 속에 많아서 좋았다.


내 기억으론 그 공원에서 도로를 건너면 호텔이 있고 그 밑으로 레스토랑과 커피숍이 있고 내려가면 이태원인지 한남동인지 변화가였고, 그 옆길엔 주택도 있었던 것 같다. 즉, 공원 쪽은 인적이 드물었다.


우리말고도 사람이 몇 명 있었다. 걷다가 벤치에 앉았다 하는 와중에 갑자기 어두워졌다.

아마 가을쯤이라 해가 일찍 지기 시작했던 시점인 것 같다.


그래서 친구에게 이제 내려가자고 했다. 친구도 이제 가는 게 좋겠다고 말했다.

우리가 공원을 떠나는 바로 그 시점에, 운동복을 입고 조깅을 하려고 한 사람이 들어왔다.


그때 내가 느낀 감정은 정확히 "부럽다"였다.

나도 친구와 여기 더 있고 싶지만 떠나게 되는 그곳으로

편안히 들어오는 그 사람이.


내가 내 친구에게 '생물학적 차이'를 언급했던 것 같다.

생물학적 차이로 누구는 떠나고 누구는 입장하는 차이로 이어진다고 말했고,

친구도 공감을 했는데 정확히 뭐라 말했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


다른 변수도 있을 수 있다. 동네 주민이라면 주변을 잘 알아서 위험한 일이 없다는 것을 통계적으로 습득했을 수 있다.


나도 우리 동네에서는 혼자 밤늦게 산책을 다닌다.

통계적으로 봤을 때 안전하다고 99.9% 확신할 수 있고, 카페와 편의점도 많아 늦게까지 불이 켜져 있다.


나는 안전에 민감한 편일까? 아니면 둔감한 편일까?

엄마와 통화를 하다가 내가 밤 9시에 산책을 나간다고 하면

엄마는 위험하다면 나가지 말라고 성화다.


동네 주민이기도 한 친구에게 새벽 1시에 머리를 식히려고 산책을 나갔던 적이 있었는데 그때 재밌는 일이 있었다고 말하려는데, 밤에는 나가지 말라고 그 뉴스를 모르냐며 너무 늦게 나가지 말라고 해서, 정작 재밌는 일은 말하지 못했다. *(재밌는 일은 맨 아래)


하지만 산책길에 사람이 없으면 뒤를 자주 확인한다.


한 번은 뒤에 남자분이 있었는데, 내가 자꾸 뒤를 확인하니 조금 미안한 마음도 들었다.

하지만 눈치를 채셨는지 앞질러 가주어 고마웠다.


시얼샤말대로 나도 그렇고, 내 친구들도 그렇고

모든 여성들은 안전을 생각하게 된다.

Am I right, ladies?


시얼샤는 자신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게 만드는 능력이 있다.

그녀는 그 자리가 불편해 보였지만 주눅들지 않고 하고 싶은 말을 꺼냈고

그 이후 인터뷰에서도 친구에게 쏟아질 수 있는 비난을 염려하면서도 차분하고 진지하게 이야기를 이어간다.

그래서 그녀가 좋다.


"That's what girls have to think about all the time. Am I right, ladies?"이라고 했을 때

누군가 "진짜냐? 좀 더 얘기해 봐라"라고 물어봐 주었다면

시얼샤는 뭐라고 했을까?




*재밌던 일: 밤늦게까지 일을 하다 보면 머리에 열이 올라, 잠을 자기 힘들다. 하지만 다음날도 일찍 일어나 일을 해야 해서 그날은 머리를 식히려 산책을 나섰는데, 나와 같은 사람이 여럿 있어 반갑기도 하고 안심이 됐다. 한 분이 운동 기구에서 열심히 운동을 하고 계셨는데, 내가 운동화를 신고 있어 인기척을 못 느끼셨는지 때마침 내가 지나갈 때 그분이 시원한 소리를 내셨다. 나는 들었으나 못 들은 척했고, 그분은 시원함을 느낌과 동시에 민망해하셨다. 지금이라도 말씀드리고 싶다: 괜찮아요. 덕분에 안전하다고 느꼈으니까요. 왠지 방귀 뀌는 분이라 안심이 되었어요. 저 때문에 더 놀라셨을 수도 있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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