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말말

아만자의 일시, 아만자의 신앙일시

by 한나

사람이 생각을 표현하고 자신의 의지를 표현할 수 있는 방법은 다양하지만, 역시 ‘말’이 제일이다. 사람은 말을 많이 하기 보다 들어야 한다고들 하지만 나는 그러지 않았다. 나는 말이 많은 사람이었다. 특히, ‘내 얘기’를 많이 하는 사람이었다. 다른 사람들의 얘기, 흔히 뒷말에는 관심이 없었고, 인정받고 싶었고, 누군가 나를 알아줬으면 하는 사람이었다.

그런 내가 입을 다물게 된 이유가 몇 가지 있다. 첫째는 말로 상처를 너무 많이 받았다. 위안과 인정을 받고 싶어 말을 하면 할수록 나는 궁지에 몰렸다. 이와 같은 일들은 너무 자주 있었기에 특별한 일화랄 것도 없지만, 굳이 하나를 꼽아서 얘기하자면 공감대 형성이 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또래들과 이야기할수록 나는 다른 삶을 살고 있었다. 다름을 인정한 지금은 다르다는 이유로 상처받지도 않고, 남을 판단하지도 않지만, 20대에는 남들과는 다르다는 사실이 내겐 상처였다. 다른 친구들은 취업, 회사, 결혼, 육아 문제로 고민을 할 때 나는 잃어버린 건강, 그로 인해 찾아오는 고통과 잃어버린 일상에 대해 이야기했다. 이것이 어느 날은 너무 반복되서 참 비참했더라지. 나에 대해 이야기 하면 분위기는 무거워졌고, 위로보다는 조언과 충고를 더 많이 들었으며, 그럴수록 내 입은 저절로 다물어졌다.

또 다른 이유 중 하나는 소문이 퍼져나가는 과정을 목격했기 때문인데, 타인에게 관심이 없었던 나는 그 과정이 꽤 충격적이었다. 확실하지 않은 정보가 그럴듯하게 만들어지고, 퍼져나가고, 진실을 알게 되었는데도 개의치 않는 모습이 충격적이었다. 한번은 그런 적도 있었다. 나는 가만히 있었는데, 대신 내 입장과는 다른 입장을 이야기를 내 눈앞에서 했던 것도 꽤나 충격이었다. 그래서 그 이후로 나는 더 입을 다물게 되었다.

세 번째는 얼마 전 교회에서 진행한 생명나무축제에서 초대 무대를 온 범키의 말을 듣고 떠오른 나의 부끄럽고 부끄러운 치부때문이다. 범키는 말의 힘에 대해서 얘기를 했었다. 우리의 말에 능력은 없지만, 힘이 있어서 말하는 대로 방향이 흘러가는 일이 많다고 했다. 자신이 아무것도 아닌 권기범(범키의 본명)이었던 시절 음악이 하고 싶었고, 친구들에게 평소에 좋아했던 다이나믹 듀오 형들과 일을 할 거라고 말을 했덨더란다. 그리고 첫 계약을 다이나믹 듀오가 있는 회사에서 하게 되었다고 했다. 물론 거기까지 도달하기 위해 범키는 긍정적인 말과 더불어 행동도 했기에 가능했을 것이라고 본다.(우리는 늘 우리가 해야만 하는 행동들이 있기에) 그리고 범키의 이 말은 애써 감추고 있었던 나의 치부를 떠올렸다.

우리는 흔히 답답한 상황을 고구마 백 개 먹은 것처럼 꽉 막힌 것 같다고 한다. 지금도 사용하는 사람들이 있지만, 그보다 좀 예전에는 암 걸릴 것 같다라는 말이 유행이었다. 나는 그 말이 참 센세이션하고 그럴듯해 보였다. 그래서 답답한 상황에 더도 덜도 아닌 딱 한 번 그 말을 사용해본 적이 있다. 암환자들의 애환과 그들의 간절함을 모른 채.. 그리고 나는 말 그대로 암에 걸렸다. 암에 걸리고 나니 내가 했던 말이 얼마나 부끄럽고, 무지한 말인지 알게 되었다. 아마 암환자가 되지 않았더라면, 암에 걸리지 않았더라면.. 나는 여전히 그 말의 문제를 모르고 있었을 것이다. 어리석게도.

마지막은 세 번째와 비슷한데 아빠가 아프기 직전에 한 말이다. 자세히는 기억이 안 나지만 그때 당시 나는 또 뇌에 재발이 될 것 같아서, 뭐 하나 쉽게 돌아가는 것이 없어서 좌절한 때였다. 무너진 마음을 다잡고 겨우 붙잡고 살아가고 있는데, 또 한 번의 시련이 왔던 것이다. 그때 나는 울면서 아빠한테 얘기한 적이 있다. 왜 나에게만 이런 시련이 몰리는지 모르겠다고, 하나님이 내 목숨줄 가지고 장난치는 것 같다고. 이 아픔을 나눠가지면 좋은데 왜, 대체 왜 나에게만 몰아서 주시냐고 원망의 말을 내뱉은 적이 있었다. 그리고 역시나 얼마 후 아빠는 암에 걸렸다. 물론 내 말 때문만은 아닐테지만, 그 말을 내뱉은 것이 너무나도 후회됐다.

말은 양날의 검과 같아서 용기나 위안을 줄 때가 있고, 누군가를 구할 수도, 상처를 줄 수도 있지만, 우리는 주로 상처를 주는 것 같다. 그것이 의도하지 않았든, 고의적이든 간에. 나 역시도 그러하다. 여전히 말로 상처를 줄 때가 있고, 말이 곱게 나가지 않을 때가 있다. 다만 그리스도의 자녀들이 두 가지 마음을 가지고 있듯(죄성과 그리스도인으로서의 본성) 나 역시 그러하다. 그저 나의 말이 상처보다는 위안이 될 때가 더 많았으면 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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