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만자의 신앙일기
우리는 삶을 살아갈 때 어떤 것을 바라보고 사는가. 누군가에게는 돈이 될 수 있고, 누군가에게는 관계가 될 수 있고, 또 누군가에게는 명예가 될 수 있지만, 나에게는 그것이 아픔이었다.
나는 늘 나의 아픔에 시선을 두었다. 만 24살부터 지금까지 아파왔고, 또 아직도 아픔을 겪고 있기에, 크고 작은 시련의 강들을 건너왔기에 자연스럽게 나의 시선은 나의 아픔에 집중되었다. 그래서인지 늘 두려웠고, 늘 불안했다.
목사님과 상담할 때도 사건만 다를 뿐, 내용은 같았다. ‘나는 아프기 싫고, 그래서 기도하지만 간절함이 부족한 것 같다. 내 간절함이 부족해서 나는 계속 낫지 못하고 아픈 것이다.’ 목사님은 사실 간절함이란 결국 하나님께서 내 기도를 들어주셨으면 하는 내 바람이고, 지금도 충분히 간절한 마음으로 기도하고 있다고 말씀해주셨다.
하지만 나는 그 얘기를 듣고도 여전히 간절함이 부족하다고 생각했다. 나는 새벽예배나 수요예배도 나가지 않고, 기껏해야 매일 정해진 양의 성경을 읽는 것 정도밖에 하는 것이 없었다. 아픔을 겪은 다른 유튜버들이나 사람들을 보면 가족들이 다 나서서 새벽예배를 나가고, 눈물로 기도하는데 나는 여전히 그렇게 행동하지 못했기에 스스로 간절함이 부족하다고 생각했고, 그래서 내가 아픔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죽어가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렇다. 나는 내가 죽어가고 있다고 생각했다. 내 시선은 나의 두려움에 머물러 있었기에 주변의 것들과 하나님의 뜻을 왜곡해서 바라보았다. 나는 나를 향한 하나님의 뜻이 고난과 죽음이라고 무의식적으로 생각했었고, 내 간절함이 하나님의 그 뜻을 돌려놓을 수 있을 줄 알았다. 그렇기에 나는 간절함이 절실했다. 그 사실을 깨닫고 그 때부터 하나님과 그 뜻을 왜곡해서 바라보지 않기 위해 성경을 읽으면서 하나님에 관한 부분을 표시하며 읽었다.
내가 성경을 읽으며 하나님의 성품에 대해 큰 힌트를 얻은 말씀이 있는데 “여호와께 감사하라 그는 선하시며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시편 136:1)”이다. 이 말씀은 시편에 반복적으로 나오는데, 처음 말씀을 접했을 때는 그렇구나 싶었지만, 반복될수록 ‘아, 하나님은 선하시고 인자하심이 영원하시구나’라는 걸 깨달았다. 하나님께서 선하시다는 것은 우리에게 고난을 주거나 우리가 죽기를 바라지 않으신다는 것, 우리가 행복하고 하나님을 믿기를 바라신다는 것이고, 하나님께서 인자하시다는 것은 어려운 자들, 소외된 자들을 사랑하고 품으신다는 뜻이다.
내 두려움이 아닌 선하시고 인자하신 하나님께 시선을 두니 난 죽어가는 것이 아닌 여태까지 살아남은 것이었고, 내가 걸어온 모든 시간 속에 하나님의 은혜가 늘 곁에 있었다. 물론 그렇다고 그 시간들이 힘들고 괴롭지 않은 시간들이었던 건 아니지만 어떻게든 살아남을 수 있었다. 정신 승리따위와는 다르다. 정신 승리는 괴롭고 만족스럽지 않은 상황에 만족스러운 척 살아가는 것이지만, 시선을 하나님께 둔다는 것은 절망적인 상황들 속에서도 소망을 바라보며 나아간다는 것이다. 그것도 예수님의 부활의 소망을.
그러니 나도, 다른 어려움을 겪고 있는 많은 사람들도 함께 시선을 하나님께 두며 나아갔으면 좋겠다. 물론, 시선을 하나님께 두는 것도 어렵고, 두다가도 좌절하기도, 절망하기도, 넘어지기도 하지만 그래도 서로 위로해주고, 기도해주며 그렇게 함께 나아갔으면 좋겠다.
모두에게 하나님의 평안과 평강이 있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