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답과 오답

아만자의 일기

by 한나

사람은 언제나 정답을 찾고 싶어 한다. 관계의 문제이든, 상황의 문제이든 누구나 정답을 찾고 싶어 한다. 그것이 우리가 갈 수 있는 가장 쉬운 길이기 때문이다. 물론, 정답을 찾기까지가 어려운 길이지만 지금 나를 괴롭히는 문제의 정답을 찾을 수만 있다면 그 어려움을 기껍게 받아들일 수 있으리라.


하지만 아쉽게도 인생에 있어서 정답은 없다. 상황적인 정답도, 관계의 정답도, 또 그 외의 직면한 다른 문제들의 정답도 없다. 정확하게는 과거의 답이 지금의 답과 같을 수도 있지만 다를 수도 있고, 지금 찾은 답이 현재에는 정답일 수 있겠지만, 그것이 미래에는 오답일 수 있으며, 나에겐 과거에도 현재에도 정답이었던 것이 다른 누군가에게는 오답일 수 있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작년에 나는 엄청난 신앙적 어려움이 있었다. 언젠가 한 번 얘기한 적이 있었지만 교회 유년부 교사 봉사를 하다가 만난 선생님이 있었다. 선생님께서는 나보다 더 많은 세월을 살아오신 만큼 더 많은 고난과 역경을 겪어오셨다. 그것은 나와는 다른 어려움이었다. 나는 신앙을 얘기할 때면 특히 어른들과 이야기가 더 잘 통할 때가 많았는데(또래와는 얘기를 나눌 기회조차도 많이 없었기에), 그 선생님과도 그러했다. 초반에는.

선생님과 지내면 지낼수록 나에게 은근하게 강요되는 것들이 있었다. 몸이 안 좋으니 일을 전부 그만둘 것, 모든 것을 단절하고 예배와 찬송에만 집중할 것, 아프더라도 어떻게든 주님의 바짓가랑이를 붙잡고 예배의 자리로 나아가는 것. 직접적으로 강요하신 적도 있고, 어떻게든 함께 하기 위해 노력하시고 나를 위해 진심으로 기도해주신 것도 아주 잘 알고 있다. 하지만 일을 전부 그만두는 것 그 첫 번째부터 하기 힘들었다.


나는 일을 굉장히 좋아하는 사람이다. 단순히 돈을 버는 것도 좋지만, 생산적인 일을 하며 어디에선가 필요하고 1인분 그 이상을 하는 사람이고 싶었고, 인정받고 싶었다. 그리고 모든 일을 그만두기에는 나의 경제적 사정이란 것도 있었다. 우리 집은 주님이 보호해주신 덕분에 가난한 것까지는 아니었지만 부유하지 못했고, 나는 계속 치료를 받아야 했으며, 집에만 있을 수 없었다. 놀고도 싶었고, 사고 싶은 것도 있었다. 부모님의 손을 빌리기엔 부모님의 양손에도 짐이 한가득이었기에 언제까지나 부모님에게 의지할 수도 없었다. (의지한 적도 거의 없긴 하지만) 그래서 일은 나에게 있어 즐거움이자 자랑이자 생활의 필수였다.


하지만 그런 일을 전부 그만두고 예배와 찬송만 하는 것은... 나에게는 고역이었다. 하지만 건강을 최우선으로 생각해야 한다는 선생님의 말씀이 맞는 것 같기도 해서 늘 마음이 심란했다. ‘정말 일을 그만둬야 할까? 이것이 나의 즐거움이기도 한데? 나는 즐거움 마저 빼앗기며 몸도 아픈 채로 주님만을 섬겨야 하나? 내가 대단한 돈을 버는 것도 아니고 고작 몇십만 원인데.. 아닌가 겨우 그 정도를 버릴 수 있어서 다행인 걸까?(몇십만 원이 적은 돈이라는 것이 아니다. 나에게도 몇십만 원은 큰돈이다.)’ 여러 가지 질문이 잇따랐고, 늘 괴로웠다. 괴로움에 눈물을 흘린 적도 많았다. 솔직히 말하자면 선생님께 그만두었다고 거짓말을 하고 몰래 일을 하기도 했다.


예배 역시 마찬가지였다. 나는 잠을 거의 못 잔다. 지금은 약을 먹어서 잠을 조금이라도 자지만 어떤 때는 한숨도 못 잘 때도 종종 있기에, 그리고 뇌전이 때문인지 아니면 다른 이유인지 자주 어지러웠기에 최대한 몸을 사리는 편이었다. 게다가 밖에 나가면 가발도 써야 되고, 또 혹여나 내가 아픈 상황에 나를 케어해줄만큼 나를 잘 아는 상황도 없었기에 나가는 것 자체가 나에겐 큰맘 먹고 해야 되는 일이었다. 하지만 그런 나에게 모든 예배를 다 드리는 것, 물론 좋고 해야 되는 일이지만... 그것을 우러나오는 마음이 아닌 억지로 해야 된다는 것 역시 괴로운 일이었다. 그래서 신앙적으로 크게 흔들었다.


선생님께서 내게 해주신 그 말씀들은 나에게 있어서 부분 정답일 수 있지만 온전한 정답은 아니었던 것 같다. 나도 모르게 하나님의 말씀보다 선생님의 말씀을 더 의지했던 걸 보면, 그리고 선하신 하나님을 왜곡해서 바라보았던 것을 보면 아마 완전한 정답은 아니었을 것이다. 하지만 분명 그 말씀들은 선생님께 있어서는 확실한 ‘정답’이었을 것이다. 어쩌면 선생님께는 유일한 정답이었을지도 모른다. 장황하게 일화를 썼지만 결국 인생을 살아가면서 확실한 정답이라는 것은 아쉽게도 없다. 있더라도 아마 흔치 않을 것이다.


성경 속에서도 비슷한 상황이 나온다. 바리새인들에게는 성경을 연구하고 그것을 따르는 것만이 하나님을 믿는 유일한 정답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과부나 고아, 가난한 자, 소외된 자들에게는 성경을 몰라도, 연구하지 않아도 예수님의 말씀이 정답이었다.


이렇듯 인생은 정답과 오답 두 가지로 이루어지지 않다. 사람 역시 그러하다. 요즘에는 단편적으로만 사람과 세상을 판단하는 시각이 많아졌지만 사람도, 세상도 모두 입체적이다. 정답은 늘 애매모호하다. 그리고 그렇기에 우리는 누군가에게 섣불리 조언을 하거나 그 사람의 상황을 함부로 판단해서는 안 된다. 우리가 이 사실을 알고 있다면, 타인을 이해하는 데 더 도움이 되지 않을까? 그러면 함부로 대하거나 매도해서 자살하고 우울해하는 사람들이 적어지지 않을까? 그런 세상이 오기를 나는 바랄 뿐이다.

작가의 이전글시선의 방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