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만자의 일기
비비의 밤양갱이라는 노래가 한때 유행했었는데, 그 때 들으면서 참으로 공감했던 가사가 있다. ‘떠나는 길에 니가 내게 말했지. 너는 바라는 게 너무나 많아. 아냐 내가 늘 바란 건 하나야. 한 개뿐이야. 달디단 밤양갱’ 이 가사가 난 참 와닿았다.
25살의 내가 상처받았던 것도 다 저 때문이다. 내가 바란 건 공감 단 하나였는데, 늘 나에게 바른 말만 해줬기에 늘 서운했다. 물론 그 때는 다들 어려서 그렇다고 이제는 웃으며 넘어가고 더 이상 상처가 되지 않는다. 그런데 그 서운함은 하나님한테는 아직 남아 있다.
사람이라면 늘 기도할 때 자신의 안위를 위해서 기도하고, 나 역시 그러했다. 하지만 하나님은 내가 원하고 바라는 모든 것을 욕심으로 만드셨다. 아프지 않는 것, 머리가 자라는 것, 이를 닦을 때 아프지 않는 것, 면역력이 오르는 것, 취업을 하는 것, 밥을 잘 먹을 수 있는 것, 걷는 게 아프지 않는 것, 냄새도 아닌 향에도 오심이 일어나지 않는 것 등등. 어쩌면 내가 잃어버린 평범함을 다시 바라는 것. 그것이 모두 내 욕심이라고 말하시는 것 같았다. 물론 머리로는 이해한다. 지금의 순간들은 과정일 뿐이고, 절대 끝이 아니라는 것, 그리고 우리에겐 예수님의 부활의 능력이 임하셨다는 것을.
하지만 그래도 내가 원하던 것은 그저 평범한 밤양갱이었다. 최고급 팥으로 만들어진 밤양갱도, 장인의 손맛이 들어간 밤양갱도 아닌 그냥 1,500원짜리 밤양갱. 그거 하나였다. 근데 그 1,500원 밤양갱이 나에겐 욕심이었다. 언젠간 더 좋은 것을 주실 것을 머리로는 알았다. 머리로는. 근데 모든 걸 잃은 욥이 그것을 대체할 만한 더 많고 좋은 것을 얻었다고 해서 욥이 겪은 것도 사라지는 것도 아니고, 무엇보다 대체할 수 없는 큰 상실감이 있었을 것이다.
나는 여전히 궁금하다. 하나님이 바라시는 것은 대체 무엇일까? 나는 왜 1,500원짜리 밤양갱도 욕심으로 생각하며 비우고 비워야 할까? 왜 나에겐 늘 모든 것을 원하실까? 한 때는 하나님을 너무 사랑해서 그 1,500원 짜리 밤양갱도 내려놓을 수 있었는데, 어느순간부턴가 다시 슬금슬금 욕심이 되어 기어오른다.
하나님, 좋은 양갱 주시기 전에 제가 원하는 밤양갱 하나만 주시면 안 돼요? 저 고생했잖아요. 밤양갱 1,500원짜리 하나만 주세요. 여태까지 주시지 않아서 기대는 없지만 그래도 기도하고 바랍니다. 밤양갱 하나만 사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