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탈한 오늘 (문지안) | 21세기 북스
"오늘 하루도 건강해줘서 고마워."
밤마다 테오 머리 쓰다듬으며 건네는 말이 된 건 테오가 열다섯 살이 된 올해부 터였나 보다.
지난해 열한 살 된 토끼 나무를 보내며 당연한 일상들이 자고 나니 거짓말처럼 사라져 버려서 자주 멍했다.
그 해엔 너무 많은 것들이 내 일상에서 그렇게 사라져 버렸다.
정성을 다해도 기한이 있어서 소중한 것들이 곁이 되어주는 시간은 하나도 당연하지 않았다.
지난해 나무의 일을 겪었기 때문에 자고 일어나면 테오가 사라져 버릴까 문득문득 두려워질 때마다
나는 손님을 맞이하는 주인의 마음으로 아이를 바라본다.
잠시 우리 집에 온 손님.
맡겨 둔 시간 동안 정성껏 살뜰히 사랑하고 보내줘야 할 시간에 그동안의 시간에 감사하며 보내주자고.
그렇게 마음먹어도 익숙하고 단단하게 사랑했던 것들이 이제 없다는 것을 받아들이는 데는 제법 긴 시간이 필요하다는 걸 이제는 안다.
문지안 작가님의 문장들이 내 맘 같은 이유는 내가 테오의 누나, 나무의 엄마이기 때문이다.
읽으면서 무탈한 오늘에, 평화롭고 연약하지 않은 너의 존재에 감사하게 된다.
그것이 마음 아픈 건 아끼던 나무가 부러진 것도 있지만
작년 가을 그 나무 아래에 우유를 묻어 주었기 때문이다.
아픈 시간들이 지나는 동안 몇 배의 감정을 담게 되는 것 같다.
우유와의 이별은 담담하게 얘기할 때도 아직 아프고,
웃으며 말할 때도 역시 아프다.
이별은 늘 응집된 형태로 일상에 파장을 일으키기에
그 여파에 휩싸여 있을 때는 남은 것들이 하찮아 보이기도 하고
일상을 꾸려가는 작은 노력이 무의미해 보이기도 하지만
밥 한 그릇 퍼주는 아침,
머리 한 번 쓰다듬는 저녁,
아무 일 없다는 듯 곁에 머물러 있는 오늘이
언젠가 가슴 아리도록 그리워할 일상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
늘 당연하다고 여기는 평화,
그 평화를 지켜주는 존재들 위로 흐르는 비가역적인 시간.
그 시간에 대해 할 수 있는 일이 아무것도 없기에
일상의 평화는 참으로 연약하고 당연하지 않다.
수국은 내년을 기약하고
보리는 늘 사랑하는 것으로.
마당에 구덩이를 파든, 잔디를 다 뽑든,
나무를 부수든, 무엇을 하든,
네가 주는 평화는 결코 연약하지 않기에
보리는 늘 사랑하는 것으로. p.60/61
무탈한 오늘 (문지안) | 21세기 북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