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유주얼을 덮으며 (8호, 퇴근 퇴사 퇴짜)
책장을덮으며
'오늘도 맑음, 어제처럼'의 상황에서 이 책을 받아
진지하게 '퇴사'를 고려하는 상황에서 이 책을 덮었다.
퇴사하는 날에 타임루프에 걸려 퇴사일을 무한 반복하는 만화가 감자의 이야기로 시작하여 언유주얼의 소소한 재미인 합법적 하극상 '나만 아니면 돼' 코너의 이선용 디렉터의 물뽕으로 책을 덮기까지 파도 같은 희로애락을 경험하게 된다.
5호 도덕 책부터 언유주얼과 리뷰 인연을 맺게 되어 어느덧 6개월, 이 잡지는 이번 호로 일 년을 맞았다.
매 번 참신한 기획으로 많은 품을 들여 준비하는 잡지라 크리에이터로서도 배울 점이 많았다.
필진들의 글도 좋고 에디터님들의 글도 더없이 좋다.
짧은 꼭지들은 호불호가 있을 것 같다.
짜임새와 분명한 메시징을 선호하는 내겐 꼭지들이 조금 더 길어도 좋을 것 같다.
개인 창작자들의 업무 효율과 멘탈 관리를 위해 실질적인 가이드를 제안한 이랑의 글,
치열하고 긴 기다림의 이십 대를 지나 간절히 쟁취하고 싶었던 건 지루하고도 사랑스러운 일상이었다는 윤진서 배우의 글이 참 좋았다.
중간중간 좋은 글들은 짧은 꼭지로 인스타와 브런치 피드에 공유했다.
퇴근, 퇴사, 퇴짜 후에 이어지는 건 OFF의 시간이다.
권위적이고 소통에 미성숙한 상사의 폭언은 퇴근 후 나의 일상을 무너뜨리고,
퇴사와 퇴짜 후에 긴 공백을 지배하는 건 (좋은 의미든 나쁜 의미든) 함께 할 때의 기억과 시간이다. 잔향이 사라지려면 그만큼의 시간이 필요하다.
다양하고 무겁고 위트 있고 안온한 사연들 사이사이 그 시간의 공백을 채우는 건 언유주얼 특유의 감각적인 사진과 그림들. 이번 호는 특히 이 부분이 좋았다.
글보다 많은 말을 하는 이미지들에 기대어 갈 수 있었다.
시선이 좋아 글도 좋은 이슬아 작가의 [시간과 몸과 마음과 돈과 노래]는 천천히 읽어보길 권한다.
당신이 어떤 공백을 견디고 있다면 다시 한번 에너지를 모아 미약한 시작을 하고 싶다는 마음이 싹틀 것이다.
이 Honest Fund 꼭지는 언제나 언유주얼의 한 방이다.
'잘 알기 위해서 뿐 아니라 잘 잊기 위해서도 시간과 몸과 마음과 돈을 들이며 살아간다'는 마무리에 다시 기운을 내본다.
지속적인 퇴짜에 자존감이 바닥을 친다면
박미선 님의 [살아남기 위해 강해진 사람] 꼭지가 당신의 무릎에 힘을 실어줄 것이다. 역시 좋아서 짧게 공유했던 꼭지인데 칠전팔기로 계속 나아가는 사람의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다.
그런 사람들을 보면 용기가 난다. '그렇다면 나도..'라고 마음먹게 된다.
김유라 에디터님의 [파도타기]는 이번 호 나에게 '한 방'이었다.
서두에 언급했듯 자고 나면 잘 까먹는 나는 대체로 '오늘은 맑은' 하루하루를 보낸다.
그런 내 에너지가 다해 지금의 일상을 정리하고 사직서를 내고, 내 개인 사업도 접고 다시 새로운 곳으로 떠나고 싶었던 시점에 이 글을 만났다.
그 위로가 좋아서 인용하며 마무리한다.
'무언가 죽어가면서 태어나고 있었다'라는 문장은
출근과 퇴근, 입사와 퇴사, 승낙과 퇴짜의 반복을 통해 우리가 그저 소진되기만 하는 것이 아님을 말한다.
한 차례의 파도를 타고 돌아왔을 때
오늘 내가 뛰어들었던 바다를 바라보면서 이 사실을 되뇔 필요가 있다. (파도타기, 김유라) p.1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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