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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토너를 덮으며

해나의 책장을 덮으며

by 해나책장




몇 년 전, 이 책을 처음 읽고 덮었을 때 나는 울음 같은 마음을 삼키고 또 삼켰다.
그의 삶에 깊이 공감하고 연민했다.
하지만 다시 이 책을 읽으며 나는 울지 않았다.
단단한 시선으로 그의 삶을 마주할 강단이 생겼다.

스토너의 삶은 전쟁과 가까이 있었다.
학부시절의 1차 세계대전, 교수가 된 후의 2차 세계 대전을 전부 겪는다.
그리고 그의 삶에도 전쟁은 내내 이어진다.
아내 이디스와의 전쟁으로 자신의 분신 같은 서재와 사랑하는 딸을 잃게 되고,
찰스 워커와 로맥스와의 전쟁으로 강의를 잃게 된다.
마치 창살 없는 감옥을 견디는 사람처럼 인내하며 생기를 잃고 삶을 견뎌낸다.
머무르지도 나아가지도 못하는 감옥을 견뎌본 사람들, 감옥 같은 고립을 아는 사람들은 스토너에게 깊은 연민을 느끼게 된다.

이 슬픈 소설에서 내게 위안이 된 건 그의 영혼의 메이트인 캐서린과의 사랑이었다.
스토너는 캐서린으로 인해 처음으로 깊은 사랑을 받는 대상이 된다. 지성과 공감으로 맺어지는 그들의 사랑과 연대는 두 사람을 함께 성장시킨다. 사랑과 학문이 분리되어 있지 않다. "그가 걷고 있는 지금 이 순간만으로 충분해서 더 이상 많은 것이 필요하지 않은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p.236" 말하는 그를 보며 스토너에게 사랑은 생명이라는 생각을 한다.

사랑. 모든 순간 스토너는 사랑을 할 때 충만했다.
그는 사랑만으로 충분한 사람이었다.
학문의 세계에서도, 연인을 향해서도, 딸을 향해서도.
대상을 향해 마음을 기울이는 그의 열정에는 불순물이 없었다. 스토너를 움직이고 나아가게 한다.

왜 많은 사람들이 스토너를 인생 책이라고 할까?
나는 또 왜 그렇게 이 소설을 깊이 사랑하는걸까?
.
.
그것은 아마도 고독과 뚝심, 그리고 그의 순도 높은 사랑의 마음을 동일시하기 때문일 거라 짐작해본다.
내 모든 견딤속에 스토너는 나의 연인이고 벗이었다.
그가 견디는 마음을 응원하며 나도 견뎌갔다.

그의 사랑과 뚝심이 이 책을 읽는 내게 위안이었다면,
한 가지 위로가 더 있다.
이 책을 서술한 화자는 왜곡된 사람들의 비난 속에서도, 악당 같은 그들이 승승장구할 때도, 스토너가 창살 없는 감옥을 견디며 시체처럼 살아가는 그 모든 순간에도 공정하고 애정이 깃든 시선으로 스토너에 대해 서술해간다.
세상이 아무리 굴곡지고 부당한 이들이 승승장구해도 나는 당신을 알고 있고, 당신의 진심과 노력과 견딤을 모두 바라보고 있다고 화자는 말하는 듯하다.
그의 시선에는 주인공 스토너에 대한 깊은 애정과 신뢰가 있다.

화자의 그러한 시선은 내게 위안이었다.
나 역시 스토너 당신을 알고 있다고, 이해하고 있고 공감하며 응원하고 있다고, 당신의 비탄과 부당함 속에 던져진 침묵과 깊은 고뇌를 전부 보았고 그걸 견뎌내는 당신의 단단함을 사랑하고 있다고 내내 말을 건넸다.
그래서 다시 책장을 덮을 때 나는 더 이상 울지 않았다.

그의 학문, 그의 사랑 캐서린, 그의 사랑 그레이스, 그의 미안함 이디스, 그의 벗 고든 핀치와 데이브 매스터스.
그가 가장 사랑했던 것들은 그의 최후에 여전히 연결되어 있다.

사랑하는 헤세의 시 [홀로]에는 이런 구절이 있다.

말을 타고 갈 수도, 차를 타고 갈 수도,
둘이 갈 수도, 셋이 갈 수도 있지만
맨 마지막 한 걸음은 홀로 걸어야 한다.

스토너는 죽음의 문 앞에서 인생의 본질적인 질문 앞에 홀로 대면한다.

"넌 무엇을 기대했나?"

전쟁 속에서 전쟁 같은 삶을 견뎌온 나의 소중한 벗에게 나는 가만히 말을 건넨다.
당신이 사랑을 향해 달려온 여정이 고되고 무엇을 기대했냐는 질문 앞에 빈주먹을 가지고 서 있는 듯해도 나는 당신의 모든 견딤을 보았다고.
그동안 애썼다고. 당신의 그 견딤과 애씀을 나는 진심으로 무척이나 사랑했다고.

'세월의 뒤안길에서 돌아와 거울 앞에 선 누이 같은 소설'

1965년에 출간되어 거의 50년이 지난 후에 큰 주목을 받게 된 이 소설을 역자는 이렇게 표현했다.
주인공만큼 고독과 뚝심을 잘 견뎌낸 소설이었다.
세월의 뒤안길에서 돌아와 거울 앞에 선 나의 벗 같은 소설.
다시 읽어도, 여전히, 마음 깊이 울림을 주는 소설이었다.

스토너가 있어 나는 참 행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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