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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사를 권할 수는 없겠지만(언유주얼 8호 기획 리뷰)

지금 우리 여기서, 해나의 책장 2

by 해나책장
퇴사를 꿈꾸고 있다면


몇 번의 이직 후에 지금은 프리랜서가 되었다.

직장인들의 퇴사 이유 중 가장 큰 부분은 인간관계와 부당한 업무들.

나는 강압적이고 독단적인 상사들과의 소통이 가장 힘들었다.

그리고 결론을 내렸다.

'아 나는 회사 체질이 아니구나..'

그래서 프리랜서가 된 건 아니지만 (흘러 흘러 그리 되었다) 퇴사 이후에는 더 큰 위기가 기다리고 있다.


퇴사를 하든 이직을 하든 자리를 잡고 안전해질 때까지 끊임없이 '퇴짜'와 싸워야 한다.

그래서 퇴사를 꿈꾼다면 충분히 준비된 후에 나와야 한다. (그러고 나와도 힘들겠지만)


그래서 오늘 준비한 리뷰는 언유주얼 8호 기획 리뷰


"퇴사를 권할 수는 없겠지만

내가 있는 곳에서 퇴사 이후를 준비할 수는 있습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sS27fiJqA8o







언유주얼 8호 퇴근, 퇴사, 퇴짜


언유주얼 8호의 주제는 [퇴근, 퇴사, 퇴짜]이다.

이번 호에서는 일하는 마음, 퇴사하는 마음, 그동안의 소속과 이별하는 마음,

그리고 지금의 자리에서 하루하루를 견디는 마음에 대해서 다양한 필진들의 글을 읽을 수 있다.



| 지금 잘 살아야 퇴사 후에도 잘 살 수 있다




첫 번째 꼭지는 결혼 후 5년째 제주도에서 살고 있는

배우 윤진서 님의 [일상과 사랑]이다.

윤진서 배우는 20대를 누군가의 콜을 기다리는 사람처럼

준비만 하고 살았던 시간이라고 회상한다.

캐스팅을 기다리며 불안한 미래와 싸우고

또 일을 하다 보면 번아웃이 오고 그런 시기였던 것.

그 빡빡한 시간을 통과해서 닿은 지금의 일상에

만족하고 행복해하고 있다는 내용이다.


그녀는 아침에 일어나 조깅을 하거나 새벽 서핑을 다녀오고,

커피를 마시고 정원을 손질한 뒤 청소를 하고 오전 요가 수업을 한다.

남편과 점심을 차려 먹고 책을 읽거나 낮잠을 잔다.

저녁 요가 수업을 하고 저녁을 차려 먹고 책을 읽다 잠이 오길 기다린다.


굉장히 단조롭다.


그녀는 이런 생활을 5년이나 반복하면서 만족스럽게 생활하고 있다.

'지난 몇 년간 같은 일상을 살면서 깨닫게 된 한 가지는

일상을 사랑하는 것이, 자신을 사랑하는 일이라는 것을 깨달았다'는 말이 너무 공감이 되었다.

지금의 일상을 행복하게 생각하는 건 이전의 삶이 있었기 때문이리라.


불안하고 힘든 일상 가운데 나만의 뿌리를 내릴 곳을 찾기 위해

안간힘을 쓰며 지나온 후 얻게 된 행복에 대해 이렇게 표현한다.





"매일 같은 일상이지만 새로운 순간을 발견한다.

발견된 새로운 순간을 느끼고 또 다른 내일을 기대할 것이다.

그것이 어쩌면 우리가 아는 '삶'이리라.

반복되는 일상을 살지 않았다면 삶의 의미를 몰랐을지도 모른다.

파티 같은 특별함이 계속되길 바랐던 20대의 나,

배우로서 카메라 앞에 서기 위해 대본을 기다리던 날들,

그 안의 불안에서 나만의 뿌리를 내릴 곳을 찾기 위해 안간힘을 쓰며 쟁취한 것은

지루하고도 사랑스러운 일상이었다.

나는 어쩌면 그 '누구'로서가 아닌,

단지 한 생명으로서의 의미가 절실하게 필요했는지도 모른다.

나는 비로소 나만의 일상을 찾았고,

일상이 이어지는 삶을 사랑하게 되었다.

그리고 그곳에 내가 알던 환각 따위는 없었다." (일상과 사랑 | 윤진서) p.67




직장에서의 괴로움은 유통기한이 있다.

문제는 그 시간이 지나면 다른 장르의 문제가 또 온다는 거다. ㅋㅋㅋ


그럼에도 내가 배운 건 힘든 시간에도 일상을 잘 유지해야

다른 환경이 주어졌을 때도 잘 살아갈 수 있다는 거였다.


내가 건강하게 이어갈 수 있는 루틴을 만들고

이를테면 독서모임이라거나 운동, 취미, 자기 계발 등등

힘든 시간들에도 긍정적인 일들에 시간을 쓰면서

다음 단계를 준비해 가면 좋을 것 같다.






나만의 무기를 만드는데 네 가지를 투자하자



두 번째 꼭지는 이슬아 작가의 [시간과 몸과 마음과 돈과 노래]이다.


이슬아 작가님에게 어느 날 페이스북 메시지가 온다.

말소리를 탐구하고 치료하는 사람인데 이슬아 작가님께 트레이닝을 제안하고 싶다는 내용.

사람들 앞에서 말하고 낭독하고 노래할 일이 많아졌기 때문에

작가님은 꾸준히 레슨을 받기 시작한다.

작가님은 이 꼭지에서 잘하고 싶은 일에는 네 가지를 써야 한다고 말한다.

시간, 몸, 마음, 그리고 돈.



"하지만 언제나 성공하는 것은 아니다.

훈련이란 건 장르가 달라도 비슷한 구석이 많다.

별수 없이 꾸준히 계속할 수밖에 없다는 것.

정성 들여서 반복하는 것만이 왕도라는 것.

나는 매주 지하의 레슨실로 가서 목 선생님의 피아노 반주에 맞춰 소리 내는 연습을 한다.

어떤 날에는 잘하고 어떤 날에는 못한다.

레슨을 받은 지 1년째인데 글쓰기가 그렇듯, 사랑과 우정이 그렇듯,

노래를 알다가도 모르겠다.

종종 너무 많은 가르침을 머리로 기억하느라 몸이 경직되고 만다.

구강의 모양도 신경 쓰고 발성의 투명함도 신경 쓰고

발음이 튀지않도록 신경 쓰고 소리를 온도감 있게 유지하도록 신경 쓰다가

결국 아무것도 제대로 되지 않는 노래를 부른다.(...)


나는 생각하지 않고도 잘하는 경지가 되기 위해,

어떤 것을 몸으로 외워 버리기 위해 목 선생님의 레슨을 듣는다.

잘 알기 위해서 뿐 아니라

잘 잊기 위해서도 시간과 몸과 마음과 돈을 들이며 살아간다."

(시간과 몸과 마음과 돈과 노래) p.97



작가님의 본업은 작가이고 출판사 대표이다.

일하다 보면 사람들 앞에 설 일이 많아서 잘 말하고 잘 노래하기 위해

이 트레이닝을 받았다고 한다.

그리고 무언가를 잘하기 위해서는 시간과 몸과 마음과 돈을 사용해야 한다.

이 꼭지를 읽으며 자신의 본업이 아닌 일에

에너지를 정성껏 쏟는 모습에 감명을 받았다.

나는 늘 본업을 잘하기 위해서만 투자를 했던 사람이니까.


본업을 잘하기 위해 노력하고,

그리고 나만의 무기를 만들기 위해서도 투자하는 것이

진정한 퇴사 이후를 위한 준비가 아닐까?

이 투자를 위해서 시간, 몸, 마음, 돈을 써야 한다.

당장 퇴사가 힘들다면 이슬아 작가님처럼 해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회사를 버티는 시간 동안 경력과 통장 잔고도 쌓이고

또 제가 투자한 분야에 능력도 쌓이고 그러는 동안 저는 힘든 환경을 견뎌냈으니

마음의 내력도 쌓이겠지.



퇴짜 앞에 지지 말자



강명석 님의 [살아남기 위해 강해진 사람]에서는 코미디언 박미선 님의 이야기를 다룬다.

박미선 님은 1988년에 데뷔해 올해로 32년째 활동 중인 엔터테이너이다.

그녀의 경력이 초장기 근속처럼 보일 수도 있지만

사실 수많은 퇴직과 재입사의 역사라고.


특히 2000년대엔 여자 코미디언은 남자 중심의 리얼 버라이어티 쇼에도 출현하기가 어려웠다.

그녀는 방송사 바깥으로 활동 반경을 넓혀 나간다.

인스타그램을 시작해 운동을 통해 달라지는 몸을 보여주고,

유튜브 채널 '미선 임파서블'을 개설해 15만 명 이상의 구독자를 확보한다.

박미선은 생존하기 위해 누구보다 빠르게 새로운 미디어에 진출한다.

박미선의 역사를 읽으면서 마음이 엄청 뭉클했다.



"흔히 강한 자가 살아남는 것이 아니라

살아남은 자가 강하다고 말한다.

그러나 살아남은 자들 중에는 생존했기 '때문에' 강한 것이 아닌,

생존하기 '위해' 강해진 사람들이 존재한다.

박미선은 살아남기 위해

누구보다 새로운 미디어에 빠르게 진출했다.

<까칠 남녀>와 <거리의 만찬>을 통해

사회의 소외받은 이들을 이해하고 감싸 안았다.

새로운 미디어를 향한 도전이 완전히 자의적이라고 볼 수는 없다.

그는 자신이 10년 이상 진행했던

KBS <해피투게더 3>에서 하차당하고,

<거리의 만찬>의 정규 편성에서는 제외되었다.

그렇게 수없이 잘리고, 다시 새로운 프로그램을 시작하고,

다시 잘리고, 그래도 다시 도전하면서 조금씩 자기 생각을 알렸다.

그러는 사이 그의 뒤에는 스탠드업 코미디부터 유튜브에 이르는

수많은 여정이 쌓여 재미있고 새로운 길이 만들어졌다.

박미선은 KBS <스탠드 UP!>으로

오랜만에 방송사의 스탠드업 코미디 무대 위에 올랐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33년 일하면서 딱 두 달 쉬었습니다."

입사는 내 마음대로 하지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퇴사는 내 의지로도 가능하지만

예상치 못한 때에 당할 수도 있다.

하지만 박미선을 볼 때면 이런 생각을 한다.

누구도 나 자신만큼은, 일을 하겠다는 나의 마음은, 꺾을 수 없다고."

(살아남기 위해 강해진 사람 | 박미선) p.113




프리랜서로 사업을 하고 있는 나는 존버 기간의 불안과 어려움을 잘 안다.

이직을 하든 퇴사를 하든, 영업을 하든 그 이후에는 수많은 "NO"와 부딪혀야 한다.

그런 과정이 반복되면 자존감이 낮아지고 자신의 미래에 대해서도 불안해진다.

하지만 정말로 에너지를 내고 나아가야 할 때가 그 순간들일거다.

스스로도 자신에 대한 믿음이 생기지 않을 때

그때에도 한 번 더 힘을 내서 나아가기 위해선 강단이 필요하다.

이런 마음도 훈련인 것 같다. 요즘 많이 느낀다.

"퇴짜 앞에 지지 말자"라는 마음과 "안 되면 다른 거 하지 뭐"라는 마음으로

계속해서 유연하게 앞으로 걸어가야 한다.


이불 뒤집어쓰거나 책 속으로 회피하지 말고 계속해서 새로운 콘텐츠를 기획하고 만들어내면서

세상에 나의 목소리를 내리라!! (비장)



용기를 내고 정한 것을 하자


황유미 작가님의 [다시 쓰는 사직서]라는 꼭지로 사직서를 쓴다.

이 꼭지 읽으시면 진짜 현실적인 직장인의 애환이 적나라하게 느껴져서 되게 공감이 된다.

인정받기 위해 노력하고 살아남기 위해 노력했지만 상사가 내리는 명령에만 반응하고

나의 자아가 완전히 말라버리는 것 같은 날들 앞에서 화자는 퇴사를 결심한다.

견디다 견디다 한계에 왔을 때 내 마음이 딱 이랬었다.

앞으로의 미래가 불안하지만, 그럼에도 나를 지키기 위해서,

더 이상 나를 망가뜨릴 수 없어서 퇴사를 결심한 사람의 마음이 고스란히 느껴지는 글이다.


당신의 표현을 빌리자면, '유감이지만' 바로 그날 직감했습니다.

당신이 설계한 터널 안에서 헤매고 있을 때가 아니라고.

컴컴한 눈으로 불안해하기엔 나에게 주어진 시간이 너무나 짧다고.

이제는 견디는 방법을 궁리할 때가 아니라, 벗어날 용기를 내야만 한다고.

쉽지는 않을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터널 밖으로 나가면 4차선 도로의 중앙선을 외줄 타기 하듯 내달려야 하는

아슬아슬한 상황이 올 수도 있을 거라고요.

불빛을 보고 내려왔다가 영문도 모른 채 바퀴에 깔리는 산짐승 꼴이 날 수도 있다고도.

이토록 참담한 결말을 그리더라도 덤덤히 받아들일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네, 비록 괜찮지 않더라도 불행하지는 않으리라 그렇게 확신했습니다.

그게 당신의 손에 이끌려 들어온 터널이 아니라, 바깥에서 맞이하는 결말이라면 그게 무엇이든.


상기 이유로 사직하니 처리해 주시길 바랍니다. (다시 쓰는 사직서 | 황유미) p.135








퇴근, 퇴사, 퇴짜 후에 이어지는 건 OFF의 시간이다.

권위적이고 소통에 미성숙한 상사의 폭언은 퇴근 후의 나의 일상을 무너뜨리고,

퇴사와 퇴짜 후에는 이전의 기억과 시간이 떠올라 그 잔향이 사라지게 하는데 또 시간이 필요하다.

시간과 정성, 마음을 들여서 살아온 시간들은 절대로 헛되지 않다.

반복되는 일상과 반복되는 갈등, 반복되는 회복과 반복되는 퇴짜 속에서도

우리는 조금씩 자라 가고 나아지고 있다.


김유라 에디터님의 [파도타기] 꼭지의 문장은 이번 언유주얼 8호에서

내게 가장 뭉클하고 위로가 되었던 문장이다.


"바다만이 아니라 우리, 우리를 둘러싼 그 모든 것들이 순환과 반복의 연속이다.

반복에 매몰되지 않기 위해서는 거대한 순환의 고리 안에서 조금씩 바뀌는 것도 있다는 것을,

물 밖에서는 똑같아 보이더라도 사실 그 바다 안에서는 다른 파도가 치고 있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무언가 죽어가면서 태어나고 있었다'라는 문장은 출근과 퇴근, 입사와 퇴사, 승낙과 퇴짜의 반복을 통해

우리가 그저 소진되기만 하는 것이 아님을 말한다.

한 차례의 파도를 타고 돌아왔을 때 오늘 내가 뛰어들었던 바다를 바라보면서 이 사실을 되뇔 필요가 있다.


(파도타기, 김유라) p.141





해나의 한 줄 요약 :



퇴사를 권할 수는 없겠지만

내가 있는 곳에서 퇴사 이후를 준비할 수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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