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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토너.. 가장 사랑하는 책을 한 권만 고르라면

지금 우리 여기서, 해나의 책장 2

by 해나책장

가장 좋아하는 책을 한 권만 고르라면...?

쉽지 않지만 나는 스토너를 고를 것 같다.

최근 스토너 초판본이 나왔다. 1965년에 출간되어 50년 후에야 주목받은 소설.

주인공을 닮아 고독과 뚝심을 견뎌낸 이 책의 표지는 무척이나 아름다웠다.



https://www.youtube.com/watch?v=Iza-COoEGwQ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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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성


1. 줄거리 소개

2. 책을 읽으며 좋았던 점

- 스토너의 세계관

- 스토너의 역경과 견딤

- 스토너의 사랑과 성장




줄거리 소개



가난한 농부의 아들이었던 스토너가 농업대학에 가게 된다.

하지만 대학에 그는 영문학에 매료되고 그의 평생의 스승인 아처슬론의 조언과 격려로

영문학자로서의 삶을 선택한다.

학부시절에 1차 세계대전으로 전쟁에 나가야 한다는 분위기가 캠퍼스에 만연하지만

그는 자신이 있어야 할 곳은 대학이라고 마음을 정하고 비난을 견디며 할 일을 한다.

그의 평생에는 두 번의 사랑이 있다.

첫눈에 반한 이디스와의 결혼은 실패하지만 둘 사이에 태어난 딸 그레이스는

스토너의 인생에 가장 중요한 부분 중 하나가 된다.


그리고 직장에서 만난 강사이자 제자인

또 한 명의 사랑 캐서린은 그의 진정한 연인이 되지만

가정을 가지고 있는 스토너는 캐서린의 미래를 위해 그녀와 이별한다.


그의 평생엔 두 명의 진실한 친구가 있었다.

한 친구인 데이브 매스터스는 1차 세계대전에서 목숨을 잃고,

다른 한 명의 진실한 친구 고든 핀치는 그의 친구이자 동료로서 그의 마지막까지 함께 한다.

이 책을 읽는 분들에게 (아마도) 위안이 되는 인물이 둘 있다면 고든 핀치와 캐서린일 것이다.


스토너의 인생은 전쟁과 가까이 있었다.

학부시절의 1차 세계대전, 그리고 교수가 된 후 2차 세계대전을 겪게 된다.

그리고 그의 삶에도 내내 전쟁 같은 나날들이 이어진다.

아내 이디스와의 전쟁으로 자신의 분신 같은 서재와 딸을 잃게 되고,

제자인 찰스 워커와 동료인 로맥스와의 전쟁으로 강의를 잃게 된다.

그는 창살 없는 감옥을 견디는 사람처럼 인내하며 생기를 잃고 삶을 견뎌낸다.

이 과정에서 그의 고독과 뚝심, 그리고 견디는 마음은

이 책을 읽는 많은 사람들에게 슬픔과 위안이 된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스토너를 인생 책이라고 말하는 게 아닐까.

감옥 같은 고립감과 막막한 마음을 견뎌본 사람들은 스토너에게 깊은 연민을 느끼게 된다.


그의 인생에는 두 번의 사랑, 세명의 친구, 그리고 한 명의 딸이 있었고

그의 평생을 바친 학자로서의 삶이 있었다.

그리고 죽음 앞에서 그는 생의 본질적인 질문을 마주하게 된다.


"넌 무엇을 기대했나?"



스토너의 세계관


이 책을 읽으며 내게 인상 깊게 다가왔던 첫 번째는 스토너의 세계관이다.

그는 학문에 대한 사랑과 학자로서의 진지한 태도를 가지고 있다.

그리고 학문이 가지는 영향력에 대해 주의하는 마음이 있다.

그래서 자신의 교수로서의 커리어가 위협받을 걸 알면서도

찰스 워커라는 학문적인 이단아가 논문 심사를 통과하지 못하도록 반기를 든다.

그가 교육자가 되는 건 재앙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일로 그는 아주 오랜 기간 괴로운 대가를 치르게 된다.


스토너의 역경과 견딤


그는 여러 번의 위기를 겪고 배척되는 동안

자신의 서재와 연구실에서 학문을 연구하는 일에 집중하며 견뎌나간다.


또 하나의 나의 인생 소설인 호프 자런의 [랩 걸]에서

호프 자런이 삶을 견뎌내는 방식과 비슷하다.


https://brunch.co.kr/@hannahbookshelf/82


아무도 망가뜨릴 수 없는 자신의 견고한 세계를 가지고

그것을 지켜나가며 자신을 견뎌내는 삶은 숭고하다.


이 책의 표지는 1965년에 발행된 초판본 표지이다.

스토너가 평생을 보낸 대학에 있는,

화재로 모든 게 스러지고 폐허가 된 자리에서도 기둥만 불쑥 솟아 있는 모습을 상징한다. 아름다운 그림.

이 그림은 스토너가 삶을 받아들인 삶의 방식을 상징한다고.

묵묵히 자신의 인생을 걸어간 한 남자의 인생은 아름답다.

그는 전쟁의 열기가 젊은이들을 휩쓸고 갈 때도 자신이 있어야 할 곳을 지키고,

교수로 일하면서도 출세를 위해 정치를 하지 않는다.

고요하게 살아가지만 누구보다 큰 열정에 휩싸여

학문과, 연인과, 아이를 자신의 방식으로 사랑한다.


'그는 집에서 15마일 떨어진 분빌 너머로는 가본 적이 없었다.' p.9


그는 어린 시절엔 자신의 마을 너머로 가본 적이 없었고

교수가 되어서는 평생 한 곳에서 살아간다.

하지만 그의 세계는 문학을 통해 확장되고 단단해진다.



스토너의 세 가지 사랑



스토너를 읽다 보면 사랑이 사람을 어떻게 성장시키는지 그 일렬의 과정들을 발견하게 된다.



첫 번째는 학문에 대한 사랑이다.



"슬론은 앞으로 몸을 기울여 얼굴을 가까이 들이댔다.

스토너는 길고 갸름한 슬론의 얼굴에 난 주름들이 조금 엷어지고,

상대를 조롱하는 듯한 건조한 목소리가

부드럽고 무방비하게 변하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모르겠나, 스토너 군?” 슬론이 물었다.

“아직도 자신을 모르겠어? 자네는 교육자가 될 사람일세.”

갑자기 슬론이 아주 멀게 보였다.

연구실의 벽들도 뒤로 물러난 것 같았다.

스토너는 자신이 허공에 떠 있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질문을 던지는 자신의 목소리가 들렸다.


“정말이십니까?”

“정말이지.” 슬론이 부드럽게 말했다.


“그런 걸 어떻게 아시죠? 어떻게 확신하십니까?”

“이건 사랑일세, 스토너 군.” 슬론이 유쾌한 표정으로 말했다.


“자네는 사랑에 빠졌어. 아주 간단한 이유지.”


그렇게 간단한 일이라니.

그는 자신이 슬론을 향해 고개를 끄덕이며

뭔가 앞뒤가 맞지 않는 이야기를 하는 것을 인식했다.

그러고는 일어나서 연구실을 나왔다.

입술이 근질거리고 손끝에는 감각이 없었다.

그는 잠든 사람처럼 몽롱한 기분으로 복도를 걸었지만,

주위의 것들을 똑똑히 인식하고 있었다.

복도의 광택이 나는 나무 벽들을 스치듯이 지나갈 때는

나무의 온기와 유구한 세월이 느껴지는 것 같았다.

천천히 계단을 내려갈 때는 자기 발밑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서

미끄러지듯 지나가는 것만 같은 차가운 대리석 계단에 감탄했다.

홀에서는 작게 웅성거리는 소리들 속에서

학생들 각자의 목소리가 또렷하게 구분되고,

그들의 얼굴이 친밀하면서 동시에 낯설게 느껴졌다.

그는 제시 홀에서 오전 풍경 속으로 나갔다.

이제는 캠퍼스가 회색 풍경에 짓눌려 있는 것처럼 보이지 않았다.

캠퍼스가 그의 시선을 밖으로, 위로 이끌어 하늘을 향하게 했다.

그는 아직 이름을 알 수 없는 가능성을 바라보듯이 하늘을 바라보았다. p.29/ 30



이후 모든 역경의 과정을 통과하는 동안

스토너가 진심으로 붙잡고 의지했던 세계는 학문이다.


두 번째는 그레이스에 대한 사랑이다.


스토너의 딸 그레이스는 스토너에게 선물처럼 온 딸이다.

아버지를 닮아 고요한 성정을 가진 그레이스는 아버지와 함께 서재에서 시간을 보내는 것을 좋아한다.

스토너와 그레이스의 관계는 내가 생각하는 가장 이상적인 아버지와 딸의 그림이기도 하다.

자신의 분신 같은 딸 그레이스에게 공부를 가르치는 동안 아이는 스토너의 눈 앞에서 자라난다.

아이의 얼굴에는 아이의 내면에서 움직이고 있는 지성이 드러나기 시작한다.


어느 날 문득 스토너는 직감하게 된다.

그레이스가 자신의 삶에서 중심을 차지하는 중요한 존재가 될 거라는 것과

자신이 훌륭한 교육자가 될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것을.


그리고 스토너의 세상은 변한다.

내면이 단단해지고 자신감이 생긴다.


자신이 쓴 책의 내용을 진심으로 받아들였기에 강의를 할 때도 메시지가 생명력을 가진다.

그렇게 중심이 선 사람의 아우라는 누구나 알아볼 수 있다.


"그레이스는 가끔 동네 아이들과 놀기도 했지만,

그보다는 아버지와 함께 커다란 서재에 앉아

아버지가 채점하거나, 책을 읽거나,

글을 쓰는 모습을 지켜볼 때가 많았다.

아이가 아버지에게 말을 걸면

두 사람의 대화가 시작되었다.

어찌나 조용하고 진지한 대화였는지,

윌리엄 스토너는 전혀 예상치 못했던

그 부드러움에 감동했다.

그레이스는 노란 종이에 서투르지만 매력적인 그림들을 그려

엄숙한 표정으로 아버지에게 내밀었다.

초등학교 1학년용 독본을 소리 내어 읽어주기도 했다.

밤에 아이를 재운 뒤 서재로 돌아갈 때면,

아이가 서재에 없다는 사실이 실감나게 느껴졌다.

하지만 아이가 위층에서 안전하게 자고 있다는 사실이 위안이 되었다.

거의 의식하지 못했지만,

그는 사실상 아이에게 공부를 가르치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자기 눈앞에서 자라나는 아이의 모습을

놀라움과 사랑의 눈길로 지켜보았다.

아이의 얼굴에는 그 내면에서 움직이고 있는 지성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p.155


"그의 말투에 자신감이 붙었고,

그의 내면에서는 따스하면서도 단단한

엄격함이 힘을 얻었다.

10년이나 늦기는 했지만,

이제야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차츰 알게 된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가 발견한 새로운 자신은

예전에 상상했던 것보다

더 훌륭하기도 하고 더 못나기도 했다.

이제야 비로소 진짜 교육자가 된 기분이었다.

자신이 책에 적은 내용을 진심으로 받아들이는 사람,

인간으로서 그가 지닌 어리석음이나 약점이나 무능력과는

별로 상관이 없는 예술의 위엄을 얻은 사람.

그가 이런 깨달음을 입으로 말할 수는 없었지만,

일단 깨달음을 얻은 뒤에는 사람이 달라졌기 때문에

그것의 존재를 누구나 알아볼 수 있었다." p.158


나에게 스토너는 '사랑의 여정을 따라가는 성장 소설'이다.

대가가 없어도 순수하게 달려가는 그의 단단한 열정과 사랑의 방식은 내게 정말 큰 위안이었다.


캐서린과의 사랑


캐서린과의 사랑은 이 슬픈 소설에서 제게 큰 위안이 된 부분이다.

스토너는 캐서린을 만나 처음으로 깊은 사랑을 받는 대상이 된다.

지성과 공감으로 맺어지는 그들의 사랑과 연대는 두 사람을 함께 성장시킨다.

사랑과 학문이 분리되어 있지 않다.

이 둘의 사랑은 내가 연애 감정을 느끼게 되는 포인트와 정확하게 일치한다.

바로 대화와 공감, 그리고 그로 인해 견고 해지는 연대이다.


읽으며 생각했었다.

'이 두 사람 연인이 되겠구나.'

역시나 그들은 연인이 되었고, 그러나 가정을 가지고 있었던 스토너는 캐서린을 지키기 위해 이별을 결심한다.

그리고 두 사람은 그 후로도 오랜 시간 서로를 그리워한다.



마지막으로 이 책에서 내게 큰 위안이 되었던 부분은 작가의 시선이다.

이 책을 서술한 화자는 왜곡된 사람들의 비난 속에서도,

악당 같은 그들이 승승장구할 때도,

스토너가 고립되고 고독하게 오랜 시간을 견디던 그 모든 순간에도

공정하고 애정이 깃든 시선으로 스토너에 대해 서술해간다.


세상이 아무리 굴곡지고, 부당한 이들이 승승장구해도

나는 당신을 알고 있고, 당신의 진심과 노력과 견딤을 모두 바라보고 있다고 말하는 것 같다.

작가의 시선 속에는 주인공 스토너에 대한 깊은 애정과 신뢰가 있었다.


나 역시 오랜 시간 그런 스토너의 삶을 마음에 품고 살아왔다.

힘든 시간마다 이 책을 꺼내서 참 많이도 읽었다.


'넌 무엇을 기대했나'


전쟁 속에서 전쟁 같은 삶을 견뎌온 스토너.

스토너가 사랑을 향해 달려온 긴 여정의 마지막에 이 질문을 마주한다.


학문적인 큰 업적을 이루지도 못했고,

사랑하던 딸과 연인을 떠나보냈고

빈손으로 홀로 서 있다.


그럼에도 나는 말해주고 싶다.

'그동안 애썼다고.

당신의 그 견딤과 애씀을 나는 진심으로 무척이나 사랑했습니다, '라고.


이 책의 역자 김승욱 님은 이 책을 이렇게 표현한다.


'세월의 뒤안길에서 돌아와 거울 앞에 선 누이 같은 소설'


1965년에 출간되어 50년이 지난 후에 큰 주목을 받게 된 이 소설은

주인공만큼 고독과 뚝심을 잘 견뎌낸 듯하다.




해나의 한 줄 요약.jpg




해나의 한 줄 요약 :


스토너의 인생은 사랑의 여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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